지난 말씀 요약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신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모님과 동행해서 고향 나사렛으로 동행하지 않는 것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대답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로는 그녀는 예수님의 모든 말들을 간직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여 예수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아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우리 또한 이런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교훈으로 받았습니다. 이런 노력이 있을 때, 더 풍성한 깨달음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만 히 은혜만 기다리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열심히 말씀을 받고자 하는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오순절 성령님이 강림하셨을 때, 그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깨달아 안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의 때에, 은혜가 임할 때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강조했습니다.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다섯 제자를 부르시는 사건입니다. 이 다섯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들의 고백이 바른 지식에 기초한 고백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비록 부족하지만 우리를 부르시고 소망 가운데 자라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다섯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삼십 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마3:13-17, 막1:9-11, 눅3:21-23) 이후에 사단이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하였습니다. (마4:1-11, 막1:12-13, 눅4:1-13) 이 두 사건은 우리가 마가복음에서 이미 배웠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의 정치 상황
누가복음 3:1
“이제 카이사르 티베리우스의 통치 제십오년에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사분영주로, 그의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사분영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사분영주로,”
로마의 초대 황제는 카이사르 시저입니다. 그의 양아들 카이사르 아우쿠스투스가 2대 왕입니다. 그는 누가복음 2장에서 세금 징수를 위해 인구조사를 시행하였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로 인해 베들레헴까지 가서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제 3대 황제가 바로 카이사르 티베리우스입니다. 카이사르 티베리우스는 주후 12년부터 황제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가 15년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서기 3년 전에 탄생하신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자라시고 사역하시던 때는 로마의 세력이 아주 강해지던 때였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배운 것과 같이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에 헤롯 대왕이 유대와 사마리아 갈릴리 베레아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에돔 자손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하스모니안 왕조에 의해 에돔 지역이 점령 되었을 때, 헤롯의 아버지는 재빨리 유대교로 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세력에 접근하여, 신임을 얻어 유대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두 아들 가운데 다툼이 시작되었고, 결국 둘째 아들 헤롯이 첫째 아들을 물리치고, 그의 아버지가 통치하는 지역을 물려받았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세 아들에 의해 영토가 나뉘어졌는데 첫째 아들이 아켈라오가 유대와 사마리아를 통치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이 북쪽 갈릴리 지방을 통치하였습니다. 이 둘째 아들이 요한의 자신의 형제의 부인을 자신의 부인으로 맞이한 인물입니다.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고 죽인 자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 전에 예수님을 심문한 자입니다. 셋째 아들은 헤롯 안디바스로 베레아 지역을 통치하였습니다. 이들은 로마의 허락 하에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분 영주였습니다. 첫째 아들 아켈라오가 실정을 거듭하고 악행을 행하였기 때문에 백성이 로마의 황제에게 탄원을 했습니다. 아켈라오는 재판을 받고 지금의 프랑스의 고올 지방으로 유배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유대와 사마리아는 로마의 황제가 직접 파견한 로마 장교가 통치하였습니다. 빌라도는 로마 군정의 다섯 번째 통치자였습니다. 이들은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떠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대로 백성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고자 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의 종교적 상황
누가복음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니라.”
예수님 때에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두 사람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원래 아론 계열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두 사람이 대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이는 당신의 종교의 타락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직은 로마에 의해 사고 팔렸습니다. 안나스는 주후 7년에 구레뇨가 임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발레리우스 그라투스가 총독이 되자 즉시 안나스를 파면하였습니다. 이에 안나스는 자신을 대신해서 그는 다시 그의 다섯 아들과 사위를 대제사장직에 오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실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비선 실세였습니다. 안나스는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 쪽에 상점을 내서 제사드릴 때 쓰는 제수 물자를 팔았습니다. 그 출장소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을 성전 경내에까지 차려 놓고 양과 비둘기 등을 끌고 들어와 거기서 팔았습니다. 아주 비싼 값으로 팔았습니다. 또한 외국에서 온 유대인들이 돈을 바꾸어 제사에 필요한 물건을 사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전 내에는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환전상들의 꾸짖고, 성전
메시아 대망 사상
누가복음 3:15
“백성이 기대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마음속으로 요한에 대해 그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가 와서 그들의 착취하는 세력들을 물리쳐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들의 고단한 삶의 유일한 소망은 메시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바로 직전에 메시아 오기를 대망하는 분위기가 폭발직전에 있었습니다.
다섯 제자들을 부르심
1.하나님의 어린양”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시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한 제자는 안드레입니다. 한 제자는 언급이 없지만 요한으로 추정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해 죽어야 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2.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안드레는 그의 형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메시아는 왕과 대언자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스도”란 의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 제사장으로, 대언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3.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대언자들이 기록한 그분”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신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27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과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
4.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보다 열등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only begotten Son”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오신 유일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성부 하나님의 계획을 이 땅에 실현하시고자 오신 성삼위 일체의 하나님 중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오,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는 은혜 왕국의 백성들입니다. 이 백성들을 주님께서 지금도 당신의 은혜로 다스려주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메시아관의 이해
다섯 제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바른 것이지만 그들의 이해는 미숙하였습니다. 그들의 메시아관은 유대교의 메시아관에 기초해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메시아 왕국을 구했습니다. 이 땅에서 메시아 왕국이 설 때에, 좌우편을 구했습니다.(마태복음 20:21)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려고 가는 도중에도 누가 큰 자인가를 다투었습니다.(누가복음 9:46-48)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소망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를 때, 이런 부족하고 연약함 모습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미래에 그들이 사도행전에서 주님과 복음을 증인으로 살다, 순교하는 모습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소망 가운데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의 부족하고 연약함을 감싸주시며,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저희들 또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훈련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목적하신 뜻에 따라 우리를 쓰시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우리 주님의 부르심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바라보지 말고, 나를 부르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