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말씀 요약
지난 말씀에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공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 사건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동정녀의 몸에서 오셔야 했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신성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결코 요셉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100%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100% 사람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사역을 위해서입니다. 죄 있는 사람이 죄 있는 사람을 대신해서 대속할 수 없습니다. 죄 없는 자만이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마리아의 몸에서 죄 없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죄 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보내어졌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의하면 가브리엘은 마리아의 꿈을 통해 그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것을 말하였습니다.(마1:21)
v21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천사는 예수님의 이름과 그의 의미에 대해 마리아에게 미리 말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의미는 “야훼가 구원하시다”, “야훼는 구원자”란 의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야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한다는 의미에서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자기 백성의 구원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우리는 지난 시간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의미를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천사는 예수님의 이름을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정해졌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는 예수님이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분명한 목적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위해 오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죄들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첫째, “자기 백성”
요한복음 3:15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사역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성경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요한복음 10:27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은 “내 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을 따릅니다.
마태복음 25:32
“모든 민족들을 자기 앞에 모으고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자기 양들을 갈라내듯 그들을 일일이 분리하여”
반대로 염소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때에 양과 염소는 분리됩니다. 예수님의 백성과 그렇지 못한 백성이 분리됩니다. 구원 받은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이 분리됩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둘째, “그들의 죄들”
둘째,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들 때문에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자기 백성들에게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죄인입니다.
로마서 5: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로운 자가 되리라.”
이 죄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이 땅에 왔습니다. 그 사람은 아담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어는 이를 “반드시, 반드시”라고 두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온 인류의 대표가 됩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 온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온 인류에게 임하였습니다.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 또한 죄인입니다. 성경은 죄의 삵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로6:23) 인간이 죄인이라는 증거는 모든 사람에게 육체의 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죄에 오염되지 않아 보이는 천사와 같은 애기들도 죽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육체적인 죽음 외에도 두 번째 죽음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요한계시록 20:13-15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육체의 죽음 후에,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들에게 두 번째 사망이 있습니다. 이는 불 호수에 던져져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고통에서 도망갈 방법은 없습니다. 이 고통을 회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자살도 할 수 없습니다. 영원히 불타는 호수에서 죄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백성을 어떻게 구원합니까?
첫째로, “칭의로서의 구원”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여전히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있습니다. 인간은 율법의 의를 다 행하면 의롭게 될 수 있고,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은 이 율법의 의를 다 이룰 수 없습니다.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고, 마음으로 살인하는 자도 살인의 죄를 진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간음한 것도 간음한 죄를 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율법을 온전히 지켜 구원 받을 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의가 있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있는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첫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해 온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것 같이,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의를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됩니다. 우리가 의로운 그 어떤 것도 한 일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이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로, “성화로서의 구원”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당신의 양자로 삼으셔서 모든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칭의로 구원 받은 자는 하나님의 아들다운 생각과 행동이 요구됩니다. 왕자였지만, 거지들과 함께 생활했다면, 거지들의 생각과 행동이 몸에 배여 있을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왕궁에 돌아와 왕자로 살게 된다면, 마땅히 왕자로서 요구되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죄 가운데 살다가, 의롭다 함을 입어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여전히 과거와 같을 수 있습니다.
구원 받은 자에게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지적해주시고,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과거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에 대해 혐오하게 하시고, 말씀이 가르치시는 거룩한 삶을 동경하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을 성화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성화에서는 사람의 책임이 따릅니다. 성화의 구원을 잘못 이룬다고 해서, 우리의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칭의로서 구원 받은 자는 성화의 구원을 이룰 책임이 있습니다. 칭의로서 구원 받은 자는 성화로서의 구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이가 태어나면 시간이 가면서도 자라는 것과 같이 자연스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로서의 구원”
로마서 13:11
“또한 때를 알거니와 지금이 우리가 잠에서 깨어야 할 바로 그때이니 이는 지금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
우리에게 영화로운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 제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몸도 영광스럽게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연약한 육체와 죄책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이 영화로운 부활체를 입고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 하나님과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때에는, 칭의로서의 구원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칭의로서의 구원”은 출발점입니다. 이 칭의로서의 구원에서 성화로서의 구원, 영화로서의 구원을 목적하시고,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로부터 그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이유는, 그 백성을 영화로서의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약과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정해졌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그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할 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그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오늘 저와 우리가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자기 백성삼아 주셨습니다. 이는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에 오직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화의 구원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구원, 죄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자의 마땅한 삶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