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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요한일서 3:19~24
성경본문내용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그분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확고히 하리로다.
20. 이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할진대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니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확신을 갖고
22.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것을 그분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눈앞에서 기쁨이 되는 그 일들을 행하기 때문이라.
23. 그분의 명령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24.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는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은 그 안에 거하시나니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강설날짜 2026-04-22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십니다

 

서론

지난 시간 우리는 사랑의 기준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까지 내려왔습니다. 형제의 필요를 향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말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나서 예배당 문을 나서면서 이런 생각이 드셨습니까? "

나는 잘 못하고 있다."

"형제에게 충분히 하지 못했다."

"나는 진실하게 사랑하지 못했다."

"나는 자격이 없다."

만약 그런 마음이 드셨다면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요한이 오늘 그 마음을 향해 말합니다. 오늘 본문 19절부터 24절까지 함께 여정을 걸어가겠습니다.

 

1부. 그럼에도 당신은 진리에 속해 있습니다 (19-20절)

요한이 1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그분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확고히 하리로다."

"이로써"가 무엇입니까? 지난 시간 배운 것입니다. 말이 아닌 행함으로 사랑하려 했던 것입니다. 형제의 필요를 향해 마음을 열려고 했던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았어도 그 방향으로 살아온 구체적인 삶입니다. 요한이 말합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이 진리에 속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내 마음이 나를 정죄하는데요. 나는 충분히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떻게 담대할 수 있습니까?"

요한이 20절에서 답합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할진대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니라."

결정적인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크시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판단이 우리 마음의 판단보다 높습니다.

우리 마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은 우리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만 봅니다. 실패만 봅니다. 못한 것만 봅니다. 그리고 정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십니다. 우리 마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려 했던 그 마음도 보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그분께 속해 있는지도 보십니다. 우리 마음의 정죄가 최종 판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최종 판결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이 여기서는 심판이 아니라 위로입니다. 우리 마음은 내가 못한 것만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가 사랑하려 했던 것도 아십니다. 내가 연약해서 넘어진 것도 아십니다. 내가 그분께 속해 있다는 것도 아십니다. 우리 마음이 아는 것은 "내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정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시는 것은 내가 못했다는 것과 동시에 내가 사랑하려 했다는 것, 내가 그분께 속했다는 것, 내가 연약하다는 것 모두입니다. 우리 마음은 일부만 보고 정죄합니다. 하나님은 전부를 보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정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자신을 정죄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당신 마음보다 크십니다. 당신 마음의 판결이 최종 판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데 그 아심이 정죄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2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21-22절)

그러자 무언가가 바뀝니다. 21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확신을 갖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죄받는 자와 담대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전혀 다릅니다. 정죄받는 자는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구하기 어렵습니다.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눌려 있습니다. 기도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실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배가 무겁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담대한 자는 다릅니다. 고개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아버지 앞에 서는 자녀처럼 섭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이 됩니다. 하나님이 마음보다 크시다는 것을 알게 된 자는 이렇게 바뀝니다. 정죄에서 확신으로 바뀝니다. 움츠러듦에서 담대함으로 바뀝니다.

담대함이 생기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22절입니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것을 그분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눈앞에서 기쁨이 되는 그 일들을 행하기 때문이라."

이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담대하게 구합니다. 그리고 받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여기서 조건을 붙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눈앞에서 기쁨이 되는 그 일들을 행하기 때문이라." 기도 응답은 자동이 아닙니다. 명령 안에 있는 자의 구함이 응답됩니다. 그 명령이 무엇인지는 23절에서 나옵니다.

 

3부. 믿음과 사랑이 명령의 전부입니다 (23절)

23절입니다. "그분의 명령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명령이 두 가지입니다.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이 두 가지를 하나의 명령으로 묶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입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이 여기서 하나로 모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이 감정의 요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그분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사랑을 낳고 사랑이 믿음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과 사랑 안에 있는 자가 담대하게 구합니다. 그리고 받습니다.

 

4부.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가 목적지입니다 (24절)

담대함이 있습니다. 명령 안에 있습니다. 믿고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어디로 향합니까?

24절에서 요한이 놀라운 결론을 내립니다.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는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은 그 안에 거하시나니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상호 내주입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시작이 어디였습니까? 마음의 정죄였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다." "나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 그 정죄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마음보다 크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구했습니다. 받았습니다. 믿고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른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입니다.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마지막에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압니까? 성령으로 압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이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느낌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이 그 증거입니다.

 

결론

오늘 요한이 우리를 하나의 여정으로 초대했습니다. 그 여정은 마음의 정죄에서 시작했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다." "나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한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마음보다 크십니다. 당신 마음은 부분만 보고 정죄합니다. 하나님은 전부를 보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말이 정죄를 가라앉혔습니다.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고개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담대하게 구했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 안에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정의 끝에 이른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입니다.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이 내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증거하십니다.

오늘 마음이 자신을 정죄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눌려 있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 마음보다 크십니다. 당신 마음의 판결이 최종 판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최종 판결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이 얼마나 그분께 속해 있는지를 아십니다.

오늘 그 확신 위에서 고개를 드십시오.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믿고 사랑하십시오. 그 자리에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설교 핵심 한 문장: 사랑하려 했지만 부족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마음보다 크신 분으로 확신을 주시고 그분과의 완전한 교제로 이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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