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두 문답이 "왜 하나님이셔야 했는가"와 "왜 사람이셔야 했는가"를 각각 다루었다면, 제40문은 그 둘을 종합하여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시되, 반드시 한 위격(one person) 안에 있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 화목의 과제가 요구하는 중보자의 조건
중보자의 임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시키는 것(reconcile)입니다. 화목이란 깨어진 관계를 실제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이 과제는 중보자가 화목시켜야 할 두 당사자 모두와 온전히 연결되어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편에만 서 있다면 인간을 대표할 수 없고, 인간 편에만 서 있다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보자는 반드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셔야 했습니다.
2. 왜 반드시 한 위격이어야 하는가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협력하는 방식으로는 안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따로 계시고 완전한 인간이 따로 있어서 둘이 함께 중보의 역할을 나누어 수행할 수는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요리문답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답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각 본성의 사역이 전체 인격의 사역으로 인정받으려면, 두 본성이 반드시 한 위격 안에 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과 인간이 두 별개의 존재라면, 인간의 고난은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위격 안에서 두 본성이 연합될 때에만, 신성의 사역과 인성의 사역이 모두 그 한 분의 사역으로 귀속될 수 있습니다.
3. 각 본성의 사역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Accepted of God for Us)
그리스도의 사역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려면, 그 사역이 온전히 한 인격의 것이어야 합니다. 인성으로 행하신 순종과 고난, 신성으로 행하신 완전한 의와 무한한 속죄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것으로 하나님 앞에 제출될 때, 그것은 완전한 대속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만약 두 본성이 두 존재에 나뉘어 있다면, 인간의 고난은 유한한 가치에 그치고,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위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한 위격 안의 연합이 이 사역을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지게 합니다.
4. 각 본성의 사역을 우리가 의지할 수 있기 위해
(Relied on by Us)
우리의 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지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그 사역이 온전히 한 분의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따로 믿고 인성을 따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믿음으로써, 그분의 신성이 가져다 주는 무한한 속죄의 효력과 그분의 인성이 가져다 주는 실제적인 대표와 대속을 동시에 의지하게 됩니다. 한 위격 안의 연합이 우리의 믿음에 하나의 명확한 대상을 제공합니다.
결론
제38문이 "하나님이셔야 했던 이유", 제39문이 "사람이셔야 했던 이유"를 각각 다루었다면, 제40문은 그 둘을 하나로 묶어 "왜 한 위격이어야 했는가"를 답합니다. 신성과 인성이 두 별개의 존재에 나뉘어 있다면, 어느 쪽의 사역도 완전한 중보의 효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한 위격 안에서 두 본성이 연합될 때에만, 그 사역 전체가 하나님께는 완전한 대속으로 받아들여지고, 우리에게는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신비이며, 기독론의 핵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