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의 배경 (Background)
위치:
시편 113편은 시편 113편부터 118편까지 이어지는 ‘할렐 시편(Egyptian Hallel)’의 첫 번째 시입니다.
이 시들은 유월절(Passover), 오순절(Pentecost), 초막절(Tabernacles) 등 절기 때 낭송되었으며,
특히 출애굽 사건의 해방과 하나님의 구속 행위를 기념하는 찬양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시적 상황: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보좌에 계시지만, 동시에 낮은 자를 돌아보시고 일으키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노래합니다.
즉,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 시적 긴장 속에서 함께 강조됩니다.
예배적 맥락:
이 시편은 유대인들이 출애굽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때 부르는 찬양이었습니다.
신약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유월절 식사) 후 제자들과 함께 부르셨을 가능성이 높은 시편으로 여겨집니다
(마 26:30, 막 14:26 참조).
2. 시의 주제 (Theme)
“높으신 하나님께서 낮은 자를 들어 올리신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며, 그분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을 낮추사 하늘과 땅의 일을 살피시며,
가난한 자를 높이시고, 수태하지 못한 여인에게 생명을 주시는 자비로운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자비로운 임재가 함께 드러나는 찬양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역설은 완전하게 성취됩니다 —
곧, 하나님이 사람의 낮은 자리로 내려오심으로써 사람을 높이시는 은혜의 비밀입니다.
3. 본문 주해 및 그리스도론적 의미
(1)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어 세상을 돌보신다 (v.6)
“자신을 낮추사 하늘과 땅에 있는 일들을 살피시고”
히브리어:
הַמַּשְׁפִּילִי לִרְאוֹת בַּשָּׁמַיִם וּבָאָרֶץ
hamashpîlî lir’ôt bashāmayim ûbā’āre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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הַמַּשְׁפִּילִי (hamashpîlî)
“자기를 낮추시는 분” (from שָׁפַל shaphal, 낮추다, 겸손히 하다).
→ "분사형(participle)"으로,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낮추시며 피조세계를 돌보신다는 의미. -
לִרְאוֹת (lir’ôt)
“보기 위해, 살피기 위해.” 단순한 시각적 관찰이 아니라, 관심과 돌봄의 행위를 내포함.
따라서 하나님은 높은 보좌에서 자신을 낮추어,
하늘과 땅—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모든 것을 친히 살피십니다.
➡ 그리스도론적 의미:
이것은 곧 성육신의 신비를 예표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비우시고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사건,
즉 **그리스도의 낮아지심(κένωσις, kenosis)**을 드러냅니다.
빌립보서 2:6–7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 가난한 자를 일으키시는 구속의 하나님 (v.7–8a)
“가난한 자를 먼지 속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올려”
히브리어:
מְקִימִי מֵעָפָר דָּל מֵאַשְׁפֹּת יָרִים אֶבְיוֹן
meqîmî meʿāfār dal; meʾashpôt yārîm ʾebyô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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דָּל (dal) —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사회적·영적 무력함을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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עָפָר (ʿāfār) — “흙, 먼지.” 인간의 죽음과 연약함(창 3:19)을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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אֶבְיוֹן (ʾebyôn) — “궁핍한 자.” 완전한 의존 상태의 인간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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מֵאַשְׁפֹּת (me’ashpôt) — “거름더미, 쓰레기 더미.” 인생의 밑바닥, 부패와 절망의 상징.
요약하면, 하나님은 흙먼지와 거름더미 같은 인생의 밑바닥에서 사람을 들어 올리십니다.
➡ 그리스도론적 의미: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는 죄와 죽음의 자리, 곧 ‘거름더미’로 내려가셔서
부활을 통해 인류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올려 놓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9 —
“그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3) 낮은 자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 (v.8b)
“통치자들 곧 자신의 백성의 통치자들과 함께 세우시고”
히브리어:
לְהוֹשִׁיבִי עִם נְדִיבִים עִם נְדִיבֵי עַמּוֹ
lehoshîvî ʿim nedîvîm, ʿim nedîvê ʿamm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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נְדִיבִים (nedîvîm) — “귀족들, 통치자들.” 문자적으로 “자유롭게 베푸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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לְהוֹשִׁיבִי (lehoshîvî) — “함께 앉히다, 거하게 하다.” 단순한 자리 배치가 아닌 지위 상승을 의미.
하나님은 낮은 자를 왕과 같은 자리로 올리십니다.
➡ 그리스도론적 의미: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믿는 자들도 그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엡 2:6).
이는 구속과 영화의 언약적 완성을 보여줍니다.
(4) 생명을 회복시키시는 은혜의 하나님 (v.9)
“수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하여금 집을 지키게 하사 자녀들을 거느리고 기뻐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히브리어:
מוֹשִׁיבִי עֲקֶרֶת הַבַּיִת אֵם הַבָּנִים שְׂמֵחָה
môshîvî ʿaqeret habbayit, ʾēm habbānîm śemēḥā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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עֲקֶרֶת (ʿaqeret) — “불임의 여인.” 인간의 절망과 한계를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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הַבַּיִת (habbayit) — “집, 공동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상징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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אֵם הַבָּנִים שְׂמֵחָה (ʾēm habbānîm śemēḥāh) — “자녀를 거느리고 기뻐하는 어머니.” 절망에서 생명으로의 전환.
➡ 그리스도론적 의미:
이 구절은 메시아 안에서의 새 생명과 교회의 탄생을 예표합니다.
불임 여인이 생명을 얻는 것은 부활의 생명과 성령 안에서의 교회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12:24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갈라디아서 4:26 —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의 어머니라.”
4. 결론: 낮아지심 안에 드러난 영광
시편 113편은 하나님이 높으심으로만 찬양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낮은 자와 함께하심으로 영광받으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비우시고 땅으로 내려오셨으며,
죽음의 자리에서 인류를 일으켜 하늘의 보좌에 함께 앉히셨습니다.
이 시편은 결국 성육신–십자가–부활–영화의 구속사를 시적으로 노래한 찬양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을 높이신 그 사랑이야말로,
모든 예배와 목회의 중심이 되어야 할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곳에 거하시며 자신을 낮추사 하늘과 땅에 있는 일들을 살피신다.”
— 시편 113: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