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지난 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용서’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하루에 일곱 번 범죄한 형제가 회개하면 그를 받아 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완전한 용서를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를 용서하라(3절). 쓰인 시제는 단호함을 의미하는 시제입니다.
이 시제는 마치 전투 중인 병사들에게 지휘관이 ‘전선을 사수하라’라 명령하는 단호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완전한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이 제자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지킬 능력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찾은 해결책은 ‘믿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가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옵소서” 요청했습니다.
‘용서’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용서’에는 어떤 믿음이 필요한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또한 어떻게 형제를 믿음으로 용서할 수 있는 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용서하는 믿음을 증대하라
1. 용서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사도들이 [주]께 이르되,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옵소서, 하니(5)”
“증대시켜 주옵소서” 시제 역시 앞서 예수님께 사용하신 시제와 동일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 나가 단호한 어조로 믿음을 증대시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서의 ‘믿음’은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닙니다.
날마다의 상황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용서’을 실천해야 합니다.
용서는 매 경우 제자들에게 큰 도전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의 큰 산을 넘을 때, 더 큰 산을 넘을 수 있습니다.
작은 용서의 실천이, 큰 용서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용서하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경우라도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는 것이며, 자신이 죽는 것이며, 자기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31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로 인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 바울은 고난을 상황을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손해를 보고, 양보하며, 용서할 때, 자신을 죽여야 했습니다.
날마다 죽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믿음을 연습하고, 더 큰 믿음에 도전했습니다.
‘용서’을 할 수 있는 해결책은 믿음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자각하고, 예수님께 나가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한국 교회의 자랑인 손양원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사람의 원자탄’이란 별명을 가진 목사님입니다.
평생 가난한 자들, 나병 환자들을 돌보시다, 6.25 전쟁 때 공산군에 의해 순교하셨습니다.
저도 대학생 때 여수 애양원에서 교회 캠프를 하면서,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수 애양원에서 손양원 목사님에 관한 영화를 봤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6.25 전쟁 직전 목사님이 나병환자들을 돌볼 때, 공산주의에 심취한 자들에 의해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로 인해 두 아들이 공산군에 잡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반란은 진압되었고, 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인 친구는 잡혀 죽음이 임박했습니다.
당시 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인 주동자는 다름아닌 아들들의 같은 학교 학생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두 아들의 죽음에 큰 슬픔에 빠지셨습니다.
그러나 한편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의 영혼을 걱정하셨습니다.
‘내 두 아들은 천국에 있지만, 아들을 죽인 자는 지옥에 갈 것을 어이할꼬”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친구를 자신의 양아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보내 목사님의 뜻을 지휘관에게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목사님의 따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따님을 설득해서 지휘관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목사님의 따님이 도착했을 때는 사형이 집행되기 10분 전이었습니다.
목사님의 따님은 아버지의 뜻을 지휘관에게 전한 후에, 책상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군인들도, 두 아들을 죽인 친구도 놀랐습니다.
하나님과 목사님의 용서의 사랑에 감동하여 한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간절한 바램대로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했습니다.
그와 함께 식사를 하며, 친 아들들과 같이 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따님은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용서를 연습하셨습니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아들로 입양하여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목사님의 따님의 현실이 제자들과 오늘 저희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머리로는 용서해야 함을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과 목사님과 같이 예수님께 나가 ‘믿음을 증대시켜 달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2. 용서하는 믿음을 어떻게 증가할 수 있는가?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너희가 이 뽕나무에게 이르기를,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겨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6절).”
본문은 가정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정법에 쓰인 시제가 두 가지 그룹으로 분류됩니다.
“있었더라면”은 현재시제입니다.
가정법에 현재시제가 사용되면 ‘사실’이란 의미입니다.
제자들에게 한 알만한 믿음이 실제로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외 나머지 시제는 과거 또는 단회성 시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정법에 이런 시제가 사용되면,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사실이 아닌 사실을 가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고등학생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라는 문장에서 가정법에 현재 시제를 사용하면, 실제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과거나 일회성 시제를 사용하면, 청자는 고등학생이 아니며, 원하는 대학생 진학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정법에 이렇게 시제를 혼용해서 사용한 이유는 제자들에게 이미 용서하는 믿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자신들의 현실에서 용서하는 믿음이 연단 받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용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르처 주기 위함입니다.
마가복음 11:25-26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구를 대적할 것이 너희에게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너희의 범법을 용서하시리라.
다른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용서에 대한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지만, 마땅히 알 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또한, 용서의 문제로 기도할 때,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때로는 기도하며 너무도 용서할 수 없는 문제로 하나님과 씨름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죄인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믿음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며 용서하는 믿음의 증대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도 빚을 탕감 받은 자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의 빚진 자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통해 기꺼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믿음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떤 자인지를 늘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용서의 가르침에 대해 배웠습니다.
용서는 참으로 하기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도전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 준 자를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엄하고 단호한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믿음을 증대를 요청해야 합니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