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사야가 대언한 말씀들을 중심으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목자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의 탄생의 의미를 전한 천사들의 메시지를 통해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누가는 의사입니다.
또한, 뛰어난 역사가입니다.
누가를 통해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누가를 통해 참 된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가 로마의 황제와 시리아의 총독 구레뇨를 언급한 것은 그 시기가 로마에 의한 평화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힘에 의해 평화가 유지되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사람들의 삶은 각박했습니다.
임산부에게 방을 내어 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의 삶은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누가는 이런 평화와 대비되는 평화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한 평화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님으로 인한 평화를 살펴볼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아기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를 통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
1. 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1) 예수님께서 구원자 오셨기 때문
천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가져왔노라.(10)
천사는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자 왔다고 말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이 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해 [구원자] 곧 그리스도 [주]께서 태어나셨느니라.
For unto you is born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ur, which is Christ the Lord.
영어에 “For”는 여기에서 ‘왜냐하면’이라는 ‘원인’,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접속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2) 어떤 구원자인가?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점에서 구원자가 되십니까?
마태복음 1:21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다는 의미입니다.
“죄”란 ‘하말티아’입니다.
‘과녁에서 화살이 빗나갔다’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났다’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의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알고 그 뜻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더 이상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쥐고 살아갑니다.
자기 인생을 계획하고 경영합니다.
자신의 힘과 경험을 믿고 살고자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순종하고 경배하는 삶은 없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께 나갈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이 죄로부터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2. 왜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인가?
이 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해 [구원자] 곧 그리스도 [주]께서 태어나셨느니라.(11)
11절에서는 “구원자”라는 말 뒤에, 수식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주”라는 단어입니다.
‘구원자인데 어떤 구원자인가?’ 하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약속된 그리스도 보내주셨기 때문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그리스어입니다.
‘메시아’의 의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창세기 3:15장에 구원자,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구절이 처음 등장합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여자의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이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계시를 더욱 풍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성취하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약속된 왕을 보내어 주셨기 때문
주는 ‘Kurios;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가 사람에게 사용될 때는’다스리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요, 만 백성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십니다.
예수님은 그 백성을 다스려 주십니다.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놀라운 섭리로 이를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이 땅에 구원자가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받은 자,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백성을 다스릴 왕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천사들은 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3. 땅에 임하는 평화
1) 평화는 누구에게 임하는가?
땅에서는 평화와 사람들을 향한 선하신 뜻이로다, 하니라.(4b)
이 구절을 그리스어 원문에 맞게 직역하면, ‘땅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임한 평화”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임한 평화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에게 임한 평화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자들의 내면에 임한 평화입니다.
2) 평화는 무엇인가?
이 “평화”는 그리스어 ‘에이레네’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샬롬’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사야서 9:6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평화의 통치자입니다.
3) 우리에게 임한
a) 죄로부터의 평안
누가복음 7:48, 50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들을 용서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분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에이레네) 가라, 하시니라.
우리 인간에게는 죄로 인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심어준 양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죄로 인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b) 보혜사가 주는 평안
요한복음 14:26~27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내가 너희에게 평안(에이레네)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보혜사의 의미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도록 곁에 부름받은 자'로 '변호사, 조력자, 위로자, 상담자, 친구'를 뜻합니다. 또한 이 단어는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을 변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로도 쓰였습니다(요일 2:1).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보혜사였습니다.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들의 집요한 공격에도 제자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지치고 힘든 제자들을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셔서 쉼을 주셨습니다.
많은 기적들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에 큰 기쁨과 격려를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거칠고 위험한 세상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으로 인한 평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 가신다는 말에 제자들에게 평안이 없었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 와서 그들에게 평안을 주실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면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c) 부활의 소망이 주는 평안
요한복음 20:21
이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에이레네)이 있을지어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두려워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죽음을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은 죽음의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더 이상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평안을 줍니다.
오늘 우리는 성탄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대적하는 자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으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은혜를 알 때,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