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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열왕기하 4:38-44
성경본문내용 38.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라.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대언자들의 아들들이 엘리사 앞에 앉으매 엘리사가 자기 종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대언자들의 아들들을 위해 죽을 끓이라, 하니라.
39.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갔다가 야생 덩굴을 발견하고 그것에서 야생 박들을 따서 무릎 자락에 채워 가지고 돌아와 죽 끓이는 솥에 그것들을 썰어 넣었더라. 그들은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더라.
40.이렇게 그들이 사람들이 먹도록 부어 주었더니 그들이 죽을 먹다가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이 있나이다, 하고 그것을 능히 먹지 못하였으나
41.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그것을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이 먹게 하라, 하매 솥에서 해를 일으키는 것이 없어지니라.
42.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 와서 첫 열매의 빵 곧 보리빵 스무 개와 또 껍질에 싸인 알찬 곡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져오므로 그가 이르되,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이 먹게 하라, 하니
43.그의 하인이 이르되, 무슨 말씀이시니이까? 내가 이것을 백 명 앞에 차려야 하리이까? 하매 엘리사가 또 이르되,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이 먹게 하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먹고 그것을 남기리라, 하시느니라, 하매
44.이에 그가 그들 앞에 그것을 차렸더니 {주}의 말씀과 같이 그들이 먹고 그것을 남겼더라.
강설날짜 2018-01-10

지난 말씀 요약

우리는 지난 시간 수넴 여인의 믿음이 어떻게 연단을 받아 참 경배자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배웠습니다. 여인은 자식을 잉태하지 못하는 것으로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창대한”, “great”이었습니다. 그녀는 주의 종을 섬길 줄 아는 내면을 가졌습니다. 둘째, 그녀는 말씀을 믿는 연단을 받았습니다. 자식을 가지게 된다는 예언은 그녀를 흥분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는 의심이 그녀가 말씀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인이 이 의심을 극복하였을 때, 말씀의 능력이 그녀에게 나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축복을 빼앗기는 것을 통해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축복 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에게서 축복을 빼앗아 가십니다. 이를 통해 여인은 축복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살아 난 아들을 통해, 영원한 축복 그 자체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비로소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전 인생에 걸쳐 이런 하나님의 연단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연단들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참 예배자요, 경배자로 설 수 있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오늘 말씀은 두 기적의 사건입니다. 죽에 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가루를 넣자 독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sign입니다. 성경의 기적은 마치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기적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오늘 두 사건을 통해 기적이 가리키고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두 기적

PART I 치료하시는 하나님(v38-41)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라.

엘리사가 길갈에 돌아왔습니다. 길갈은 벧엘과 함께 대언자의 학교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영적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엘리야가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와 싸우는 믿음과 헌신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들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야는 이들을 길갈과 벧엘에서 가르쳤습니다.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돌아왔다는 의미는 그가 대언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엘리사는 수넴에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엘리사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편하게 먹고 마시며 지내는 것이 그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사의 사명은 북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제자들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행하는 자의 바른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먹고 마시고 취해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명 의식이 있는 자는 결코 세상에 코를 박고 살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그 일을 행합니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어렵고 손해가 될 지라도 그 일을 합니다. 이 점을 우리가 엘리사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라.” 우리도 우리의 사명을 알고 다시 길갈에 이를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구약의 축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이 내려주신 율법을 잘 지켜 행하며,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방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스라엘을 통해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 땅을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안정케 하고, 부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땅에 자손이 번성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근과 전염병이 그 땅에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나 그 반대일 때는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하나님은 전쟁과 자연재해와 전염병과 기근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성시켰습니다.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러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징계하셨습니다.

 

그 땅은 어떤 곳입니까? 북이스라엘 일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땅입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분명한 징계입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았다면 결코 그 땅에 흉년이 들 리가 없습니다.

 

그 땅은 좁은 의미로 길갈일 수 있습니다. “길갈은 대언자들의 학교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모든 것을 버려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신학생들이 있던 곳입니다. 신학생들이 있는 곳은 달라야 합니다. 적어도 그 지역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다움을 들어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기도 모임이 있고, 성경 공부의 모임이 있다면, 그 땅 길갈은 다른 지역보다도 영적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땅길갈에는 적어도 흉년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땅에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구약의 축복과 저주의 관점에서 볼 때, 길갈도 영적으로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대언자들의 아들들이 엘리사 앞에 앉으매

대언자들의 아들들, 곧 신학생들이 엘리사 앞에 앉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앉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학 수업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그 시대 영적인 암흑기에 깨여있던 자들이었습니다. 모두가 바알을 숭배할 때,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단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가족이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학 수업을 때문에 너무도 가난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대언자의 학생 중에서 죽은 과부를 엘리사가 기름으로 빚을 갚게 한 이야기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영적으로 아주 어렸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했을 때, 시체를 찾겠다고 했던 사실을 볼 때, 아직 그 시대를 섬기기에는 너무도 연약하고 부족한 점들이 많았습니다. 엘리사는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도 연약한 열 두 제자를 가르치셨습니다. 너무도 연약하여 수많은 실수를 범하였지만, 감당해 주시고 영적 지도자의 비전 가운데 그들을 섬겨 주셨습니다. 엘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연약하여 수많은 허물과 실수를 남길 수밖에 없지만, 믿음과 소망 가운데 그들을 섬겨 주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 주님께서 또한 우리와 함께 앉아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지 않으시고, 하나하나,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며 가르치고 계십니다.

 

솥에서 해를 일으키는 것이 없어지니라.

엘리사는 영적인 것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들의 육체적 필요를 알고, 솥에 죽을 끊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언자 생도들 중의 어떤 사람이 채소를 캐러 갔다고 야생 덩굴을 발견하고, 야생 박들을 따서 솥에 넣었습니다. 대언자 생도들은 그것들에 독이 있는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아주 무지하여서 박을 따서 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독이 없는 박들과 독이 있는 박들이 거의 구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종종 산에서 독버섯을 따먹고 병원 응급실로 간 기사들을 봅니다. 독버섯과 식용 버섯은 거의 구별하기가 어렸습니다. 그들은 끊인 죽을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단 번에 맛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눈으로는 식별이 안 되는 것이 맛으로 식별이 되었습니다. 이 죽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많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심히도 쓴 맛이 났을 것입니다. 그때야 죽에 독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죽에 독이 들었음을 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가루를 풀었습니다. 그러자 솥에서 해를 일으키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엘리사가 푼 가루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루가 아닌 딴 것이라도 할지라도, 독은 없어졌을 것입니다. 독을 없애 것이, 엘리사가 가진 특별한 가루가 아닌, 하나님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변화시킨 이야기를 상기시킵니다. 이스라엘 민족인 출애굽 한 후, 삼일 째에 물이 없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있던 우물은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그 우물에 한 나무 가지를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물이 단물로 바뀌어 마실 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까?

 

출애굽기 15:25-26

모세가 {}께 부르짖었더니 {}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보여 주시므로 그가 그것을 물들에 던지매 물들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그분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규와 규례를 정하시고 거기서 그들을 시험하시며 이르시되, 네가 {} [하나님]의 음성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고 그의 눈앞에서 옳은 것을 행하며 그의 명령들을 귀담아 듣고 그의 모든 법규를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내린 이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를 치유하는 {}니라, 하시니라.”

 

모세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이 누구인가?“ 다시 한 번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그 백성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때, 그 어떤 질병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떤 질병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길갈의 대언자 생도들이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세상은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독이 교회에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언자 생도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는 엘리사의 기도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엘리사가 기도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이 일을 행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 묻고 기도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44절에 주의 말씀과 같이과 힌트가 됩니다.

 

오늘 교회가 행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땅의 치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보고, 내가 그 기적을 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엘리사가 했으니까 똑같은 성정을 가진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이 바로 이 시대 은사주의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기적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른 해석은 그 기적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떤 독도 제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 교회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의 치유를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PART II 먹이시는 하나님(v42-44)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 와서

바알 살리사는 신학자들에 의하면 벧 살리사란 지명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이곳은 길갈에서 북동쪽으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 지명이 바알 살리사라고 바뀐 것을 볼 때, 이곳이 바알 신앙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첫 열매의 빵 곧 보리빵 스무 개와 또 껍질에 싸인 알찬 곡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져오므로

바알의 세력이 강한 이 곳에 첫 열매를 들고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온 믿음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길갈에는 기근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채소를 죽을 끊여 먹어야 할 정도로 곡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살던 곳, 곧 바알의 세력이 강한 그 곳에 하나님께서 추수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보리빵 스무 개와 껍질에 싸인 알찬 곡식은 추수의 정도가 어떠한지를 말해줍니다. 이 사람의 추수는 참으로 풍요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첫 열매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풍요롭게 추수할 수 있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임을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자였습니다.

 

이 사실이 말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성경 말씀을 잘 배우고, 많이 알고 있어도,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 참 믿음이 없다면 첫 열매를 가져 온 한 사람보다 못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고, 바알의 세력이 강한 땅이라 할지라도, 축복해 주시고, 곡식이 익어가게 하시고, 추수하게 하셨습니다. 길갈의 제자들은 이 사실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믿음의 연약함을 돌아보며 회개해야 했습니다.

 

{}의 말씀과 같이 그들이 먹고 그것을 남겼더라

엘리사는 그가 가지고 온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하인이 엘리사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그들이 먹고 그것을 남겼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신약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나게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떡은 일순간 우리를 배부르게 하지만, 생명의 떡은 영원히 우리를 배부르게 할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가르치는 사실입니다.

 

길갈의 대언자들의 생도들과 백성들이 이 기적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그들 역시 육신의 떡은 곧 사라지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배고프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들을 배부르게 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그들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구약의 축복관이 신약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할지라도, 세상에서 가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우리는 배부를 것입니다. 세상의 주관자가 누군 인줄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인 줄을 우리는 압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님을 아닙니다.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인 기갈을 면케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그 백성을 먹이시는 분이십니다.

 

교회의 역할은 바로 이것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사교 클럽처럼 세상에서 서로의 필요를 공급해 주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가 교회에서 성도들의 사업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어 교회에 출석하고, 성도의 교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곳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는 기관은 없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이러한 특수한 사명을 행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영적으로 먹고 마셔야 합니다. 바른 말씀의 공급함을 통해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을 넉넉히 먹이고 남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백성을 영적으로 먹이실 것입니다.

 

요약과 결론

기적은 sign입니다. 기적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가리키는 대상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두 가지 기적을 배웠습니다. 이 기적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배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 세상에 못 고칠 죄인은 없습니다. 둘째는,”하나님은 먹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그 세우신 교회와 그의 종들을 통해 우리를 영적으로 먹이십니다. 또한 실제적으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적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도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역사가 우리 가운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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