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로마를 향해서 간 이유
그러면 바울 선생은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는 큰 사명을 느끼면서부터, 내가 복음을 전하려면 이방 어디로 향해야 하겠는가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이 아니면 다 이방인이라는 관념에서 보면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지 다 이방입니다. 그러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할 때에 그는 서쪽으로 향해 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가장 중요한 기지로서 또한 복음이 나타내고 있는 바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비교적 잘 갖추어 있는 자리로서 헬레니즘의 찬란한 문화와 로마의 위대한 정치 경제와 군대와 법률 또 질서가 있는 건강한 사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건강한 사회에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슨 까닭이었습니까?
바울 선생은 자신이 전한 그리스도 교회의 복음을 잘 이해했고 따라서 그 역사적인 성격과 인류에게 관계되어 있는 사회적인 성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대인 속죄로 말미암은 구원과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는 이 큰 진리의 사실이 그 속에 들어가서 나타낼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이고, 사람들의 사회적인 결속과 활동을 통해서 거룩한 보편의 교회가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정신적이고 심오한 진리의 내용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 교회는 땅이나 인종이나 언어나 문화 형태나 국가를 넘어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국경을 넘어가는 복음의 능력은 만일 어떤 세력이 국경을 봉쇄하고 넘어오지 못하게 할 경우 그 봉쇄한 것을 뚫고 넘어갈 수 있는 더 큰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쇄국했던 나라에 복음이 들어가려고 할 때는 그것을 부수고 개항을 시키고 개화를 시킨 그 국권이 움직여서 복음이 함께 들어간 것을 여러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이 중국에 복음이 들어올 때의 현상이었고 한국에 복음이 들어올 때의 현상이었습니다.
복음을 든 사람이 국경을 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을 때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국가적인 권위의 배경과 실제 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그의 영민한 추리력과 상상력으로 현실의 문제와 복음이 요구하는 이상을 생각할 때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 사람입니다. 그런 위대한 지도자였고 인물이었습니다. 복음의 보편성에 비추어 볼 때 거룩한 복음은 땅 위에서 널리 퍼져야겠고 또 퍼지기 위해서는 퍼질 수 있는 중요한 본부가 있어야겠고 중심 세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중심 세력이란 기독교인들끼리 많이 모여 앉아서 세력을 만든다는 그런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복음을 실어서 보낼 수레가 되겠는가를 보았습니다. 그는 두말할 것 없이 이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에다 복음을 실어 놓으면 저 북쪽 브리튼(Britain: 브리타니아)과 골 (Gaul 갈리아)로도 나가고 어디든지 퍼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 김홍전 저, 성약 출판사], 제8강 '성신의 가르심과 인도하심의 예(3)' 부분을 요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