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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갈라디아서 5:22-23
성경본문내용 22.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중생의 증거인 그리스도적인 품성

 

믿는 사람이 구속의 은혜를 받고 새로운 생명을 받아 새사람이 된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성신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주장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가르쳐 주시는가에 대한 도리입니다.

 

중생한 사람이 새로운 생명에 의해서 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될 때에 그는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적인 사명을 각성하고 사는 생활을 지향하고 나갑니다. 그 결과 인간의 여러 가지 불완전과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그의 인격이 차츰차츰 고귀하게 변화해 갑니다. 이런 점이 믿지 않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만약 그가 매일매일 변화하고 성장해서 더 나은 인간성이 발휘되는 모습을 보이지 아니한다면 새로운 생명을 받았다는 아무 증거도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예배당에 다니는 이런 종교적인 행사로는 자기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를 비기독교인이라고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것만으로는 새생명이 정상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증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증명을 하지 못하고 자기 혼자서 예수 믿었느니라 할 때에는 스스로 속는 일이 많은데 이것은 심히 위험한 일입니다. 일부러 나를 봐 달라고 할 필요는 없지만, 자기 스스로는 증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생한 사람의 생활이라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 멀리 있는 굉장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 주변의 생활 습관에서 드러나는 시시하고 너절하고 비천한 인간성부터 고쳐 나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단지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면서 왔다갔다 한다고 저절로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처럼 자기가 각고면려하고 노력해서 수신을 하라는 것이냐 하면 그것이 아니지요. 스스로 반성을 해서 의식적으로, 여기에 나의 큰 잘못이 있구나, 하고 알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성신을 의지해서 그가 이끄시는 대로 자꾸 따라가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성신의 열매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나’를 늘  인식합니다. 예컨대 무엇을 잘 해 보려고 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내가 드러나는가? 나는 다른 사람 보기에 못된 인간성을 툭하니 발휘하는 사람은 아닌가? 혹은 나는 얼마나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인가, 하는 문제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돌아봐야 합니다. 비록 어떤 이가 기독교 교리에 관한 것을 도도히 얘긴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성의 장성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깨달을 바탕이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을 배우는 것이 다른 과학을 하는 것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과학은 인간성은 못됐을지라도 지적 기능이 우수하면 잘 기억하고 외워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도리를 깨달으려면 그 사람이 성신님의 조명을 받아야 하고 성신님이 주장하시는 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의 품성에서 자연히 성신의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을 보면 “오직 성신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해서 ‘성신의 열매’라는 말로 아홉 가지 속성을 표시했습니다. 성신의 열매라는 말은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즉 성신의 열매들은 아홉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고 한 성신의 열매에는 이런 아홉 가직의 속성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있으되 희락이 없다 하는 법은 없습니다. 성신께서 열매를 내게 하실 때에 사랑이라는 열매를 하나 맺게 하시고 그 다음에 희락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시며 또 화평이라는 열매는 그 다음날 맺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조화 있게 하나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신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하는 말씀을 보면 이런 열매를 한꺼번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의란 바른 것,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것 즉 자기의 당위를 뜻합니다. 그 의가 있고 기쁨과 평안이 있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그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그 다음에 인내, 자비, 양선과 같은 대외적인 것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에 성신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어야 그것이 대외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1. 사랑은 옛날에 춘원이 말한 '사랑하기 공부'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쓴 글 어디에 보면 인도주의적인 논제를 가지고 "사랑하기 공부를 랬다"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그전 같으면 성을 발끈 내어 그 사람하고 다투고 내가 잘했다고 주장할할 텐데 이제는 사랑하기 공부를 하는 까닭에, 아서라, 내가 사랑을 하려면 그래서야 되겠는가, 하고 꾹 참고 될 수 있는대로 그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하면서 자기 할 일을 한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인도주의자라면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신께서 열매를 내게 하실 때에 사랑이라는 열매를 하나 맺게 하시며 또 화평이라는 열매는 그 다음날 맺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조화 있게 하나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쪽을 보면 사랑이고 다른 쪽을 보면 희락이고 또 다른 쪽을 보면 화평입니다.(편집자 주; 사랑은 다른 성령의 열매 8가지를 다 포함하는 열매라고  이해 함)

 

2.오래 참는 것은 그 대상이 사람만이 아니고 일을 맡았으면 오래 참아 가면서 버티어 나가는 것도 포함됩니다.

 

3. 양선이란 인간관계에서 남 보기에 거세고 따지기만 하고 억세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항상 부드럽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친절이라는 말과 대단히 가까운 말입니다.

 

4. 그 다음에 온유란, 사람이 부드럽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줏대도 없이 흐믈흐물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특별히 하나님이 무슨 명령을 하실 때 그 명령에 대해서 반항하지 않고 잘 따라간다는 의미입니다.

 

5. 희락은 주님 앞에서 주님의 약속을 믿고 마음에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6. 화평은 히브리 말로 샬롬입니다. 그것은 헬라어의 평안이라는 말뜻과는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평안이란 끝없이 자꾸 전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것을 번영이라는 말로도 씁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향상해 나아갈 때에 가지는 안정을 의미합니다. 그냥 아무것도 않고 은둔하고서 조용히 앉아 있으면 걸릴 게 없으니까 그 때 얻는 것은 정적이겠지만 샬롬이란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보다는 충만한 가운데 목표를 향해서 자꾸 나아갈 때 얻는 그런 평안입니다.

 

7. 그리고 자비라는 것은 사람에 대한 바른 동정, 불쌍한 사람의 불쌍한 정형을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일같이 생각하고 적어도 자기와 관계있는 일과 같이 생각할 때 갖게 되는 측은한 심정입니다. 또 거기에 대해서 나도 무엇을 좀 해야겠다는 긍휼이라는 것이 잇습니다. 산상보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고 가르치셨는데 그 긍휼이 거기에 잇습니다.

 

8. 충성은 하나님 앞에 맡은 것을 끝까지 잘 봉사해 나가는 것입니다.

 

9. 절제는 자기 인생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좋은 일이라면 덮어놓고 돌아다니면서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자기 일을 충성스럽게 하되 절제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에너지나 자기의 모든 기능 즉 시간과 정력과 자기 생활을 항상 잘 저축해 두고 보존해 두었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에 적응하게 쓰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신의 열매가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것인데 그 열매를 우리가 맺고 살아가려면 성신께서 우리 안에서 충만히 역사하셔야 합니다.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 김홍전 저, 성약 출판사] 제2강 '성신의 내주' 부분을 요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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