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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시편 149:1~9
성경본문내용 1.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며 성도들의 회중 안에서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2. 이스라엘은 자기를 만드신 분을 기뻐하며 시온의 자녀들은 자기들의 [왕]을 기뻐할지어다.
3. 그들은 춤추며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고 작은북과 하프와 더불어 노래로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4.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즐거워하시나니 그분께서 온유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리로다.
5. 성도들은 영광 중에 기뻐하며 자기 침상에서 큰 소리로 노래할지어다.
6.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을 높이 찬양함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양날 달린 칼이 있으리니
7. 이것은 이교도들에게 원수 갚는 일을 집행하고 만백성에게 형벌을 주며
8.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족들은 쇠 족쇄로 묶고
9. 기록된 심판을 그들에게 집행하게 하려 함이로다. 이런 존귀가 그분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강설날짜 2024-01-24

I. 서론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 표현은 시편에서 아주 빈번하게 등장합니다(예를 들어 시33:2; 100:4; 117:1; 118:1, 29; 135:1~3; 136:1~3, 26). 또한 ‘할렐루야’는 마지막 다섯 시편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시편에는 탄원의 시도 많이 있지만 그 시들도 마지막에 가서는 순전한 찬양의 노래가 강렬하게 울러퍼지면서 마칩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도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는 그분을 경배하고 찬송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혀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항상 찬양하기보다는 그분 앞에 우리의 곤경들을 내놓고 불평하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분명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정말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언제라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어는 정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면 149편과 같은 찬양의 시편을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시인이 이 찬송을 짓게 된 분명한 동기가 있었습니까? 시의 마지막에서 이방 나라들을 향한 하나님의 보복을 언급하는 내용이 이 시의 동기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과 같은 동기가 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열방에 보복하는’(7절)일을 하도록 자기 백성을 부르십니까? 그리고 열방에 보복하는 일과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은 사실 별로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 않습니까?

     II. 개관

149편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부분(1~4)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기쁨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합니다. 4절은 여호와께 찬양을 드려야 하는 이유와 찬양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5~9절)에서는 무엇보다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기를 반복해서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6절에서는 갑자기 반전이 생깁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그 백성은 동시에 여호와께서 뭇 백성에게 내리신 판결을 집행해야 하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III. 본문 주해

1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 말은 시편의 책에서 마지막 다섯 시편들을 각각 열고 닫는 말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것은 곧 공중 앞에서 그가 누구시며 그가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인지를 이야기함으로 그분을 칭송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회중에서” 여기 1절과 5절, 그리고 9절에서도 ‘성도’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한 번역입니다. ‘성도들’ 곧 ‘신실한 자들’은 매일 생활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그분의 자녀를 가리킵니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과 그분과 동행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이 두 가지는 항상 공존합니다.

 

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인류의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참조. 시 95:6~7; 1003; 사 44:2).

시온의 주민’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주시는 ‘죄 사람’에 기대어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시인하는 사람들입니다.

 

4

겸손한 자” 겸손한 자는 자기 안에 하나님께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잘 아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겸손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손을 바라봅니다.

구원으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으로’ 관을 씌우실 것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이 모든 면에서 얻는 완전한 구원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무엇보다 7~9절에서 예언한 내용, 즉 하나님의 친백성이 열방에 대한 심판을 집행할 것을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5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여기서 왜 성도의 침상을 말하는지 그 이유를 알기는 어렸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의 뜻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침상은 여러분이 가장 슬픔에 잠겨 있을 만한 장소이고 여러분은 거기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 나겠지만(참조. 시 6:6; 호 7:14) 그러나 그럴 때에라도 여러분은 여호와를 찬양할 이유가 잇습니다.’

 

6

6절은 다음과 같이 옮기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들의 입은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게 하고, 그들이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을 들게 하라.” 그 뜻은 성도들이 ‘목소리’(6절 상)로만 아니라 뭇 백성에게 보복을 집행하는 ‘칼’(6절 하)로도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이 두 가지 방식은 이 구절에서 서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래 시편에는 종종 서로 다른 표현으로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경두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히브리어 시의 병행법) 이 점은 더욱 분병합니다. 그렇게 보면 6절 상반절에서는 ‘그들의 입은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고 -----‘, 다음에 6절 하반절에서는 ‘그들의 입술은 그 이름을 높이 부르리니--------‘하고 이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 대신에 느닷없이 ‘두 날 가진 칼’이 나옵니다. 마치 그 둘이 거의 동일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IV.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노래인 시편 149편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과 그 의미

특이하게도 149편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표현들이 “성도”(1,5, 9절), “시온의 자민”(2절), “하나님의 백성”(4절), “겸손한 자”(4절)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칫 “이스라엘”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현은 그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반면에 “성도”나 “겸손한 자”는 여호와를 신실하게 섬기는 일부를 가리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시의 의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다양한 표현들은 그러한 의도가 없이 함께 사용된 것이므로 이 표현들은 이스라엘 ‘전체’와 이스라엘 중 ‘일부’(성도들)로 분류할 수는 없습니다. 149편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149편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이 시편의 내용을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서에 속한 각 사람은 여기서 모두 “성도”이자 “시온의 자민”(자녀)이며 “겸손한 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그러한 자들일 뿐 아니라 그러한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할 사명에 참여하는 교회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집행할 사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창 15:16; 신 2:15~17).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할 사명을 지니고 계십니다(사 11:4; 61:1~3). 그런데 그분은 이 일을 위해 그분의 백성을 사용하십니다. 참으로 바울도 로마 교회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에 상하게 하시리라”(롬 16:20)고 썼고, 고린도 교회에는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6:2. 참조 사 41:15; 단 7:22, 27; 마 19:28)고 물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149편의 마지막 구절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여전히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에 참여하고 있음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심판을 시행하시는 일에 우리 모두를 참여시키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심판은 이미 이 세상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고 선언하셨습니다. 모든 기독교회가 이 이름을 세상에 나타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을 전파하는 것을 통해서만 죄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전하는 것을 믿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그것 때문에 이미 지금 하나님의 심판에 넘겨진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통하여 교회는 지금, 이미 하나님의 심판에 참여하고 있습니다(고후 10:3~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2~85문답).

 

하나님의 심판에 참여한 교회의 영광

이런 영광”(9절)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내려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분의 원수들에 대한 판결을 집행하시는 일에 우리를 참여시키십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일에 우리를 불러 사용하신다면 우리는 또한 그 일에서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통하여서 우리는 그분이 어떠한 하나님이신지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곧 그분이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며 만홀이 여김을 않으시고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는 분이심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여호와의 영광을 받는 백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그분을 찬양할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시편 149편에서 우리가 이러한 찬양을 부르도록 불러 모으십니다. 시 전체가 여호와께 드리는 찬양인 이 시편이 ‘명령’의 형태로 되어 있다는 거시 그 점을 잘 보여 줍니다. 즉, 이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부르라’(1절)하고, ‘성도들은 즐거워하라’(5절)고 명합니다. 149편이 하나님의 말씀에 속하기 때문에 여기서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를 불러 그분을 찬양하도록 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찬양할 이유는 항상 넘칩니다!

헤르크 크바컬G.kwakel., & 밥 파위크Vujk. (2016).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1판). p116~124 성희찬(번역). 서울:성약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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