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시편 137:1~9
성경본문내용 1.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에서 거기에 앉아 참으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우리가 그것의 한가운데 있는 버드나무들에 우리의 하프들을 걸었나니
3. 우리를 포로로 끌어간 자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요구하며 우리를 피폐하게 한 자들이 우리에게 희락을 요구하여 이르기를, 우리를 위해 시온의 노래들 가운데 하나를 노래하라, 하였도다.
4.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의 노래를 부르리요?
5. 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자기 솜씨를 잊을지로다.
6.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보다 예루살렘을 더 좋아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어다.
7. 오 {주}여, 예루살렘의 날에 에돔 자손이 말한 것을 기억하소서. 그들이 말하기를, 그것을 무너뜨리라. 그것을 무너뜨리라. 그것의 기초까지 무너뜨리라, 하였나이다.
8. 오 멸망 받을 바빌론의 딸아, 네가 우리에게 베푼 대로 네게 갚는 자가 행복하리로다.
9. 네 어린것들을 들어다가 돌에 메어치는 자가 행복하리로다.
강설날짜 2024-01-22

I. 서론

 

시편 137편은 성도들이 그다지 애호하는 시편이 아닙니다. 우리의 입에 담기가 쉽지 않은 시편입니다. 그 주된 이유는 7~9절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에돔과 바벨론을 형벌하기를 구하는데 그 내용은 소름끼칠 정도로 끔찍합니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이와 같이 보복을 구하는 기도는 다른 여러 시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시 5:10; 35:4~8, 26; 58:6~11; 59:5, 12~14; 69:22~28;79:6, 10, 12; 83:9~18; 109:6~20, 29.)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보복의 시편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에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참조. 행 7:60)라고 기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신약 교회의 성도들인 우리는 시편 137:7~9에 나오는 것과 같은 기도를 더 이상 드러서는 안 된다고 해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원수들을 벌하시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의 구원과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이 시편을 제쳐 둔다면 우리는 여호와께서 친히 이 시편을 주님의 교회에 주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됩니다. 137편은 그저 어떤 한 사람이 좌절 중에서 보복의 감정을 쏟아낸 그러한 시가 아닙니다. 이 시는 그리스도의 성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르쳐 주신 노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전히 137편을 찬송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왜’ 우리에게 그러한 시편을 주시고 배우게 하셨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은 여전히 필요한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형벌을 바라는 기도와 죄인의 회개와 구원을 바라는 기도를 어떻게 병행하여 드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서도 숙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II. 개관

137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할 때에 있었던 한 가지 일을 기술하면서 시작됩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시온의 노래 중에서 하나를 불러 자신들의 흥을 돋우라고 요구하였습니다(1~3절).

4~6절에서 시인은 그러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심지어 시인은 만일 자신이 예루살렘을 잊는다면 하나님의 형벌이 자신에게 임하기를 구하기까지 합니다. 즉, 시인은 자신이 바벨론 사람들의 요구를 따른다면 그것이 곧 예루살렘을 잊어버리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8~9절에서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보복이 있기를 염원하고 있고 그에 앞서 7절에서는 에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벌이 임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III. 본문 주해

 

9

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어린아이를 메어치는 것’은 고대 세계의 전쟁에서 곧잘 벌어지던 잔인한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호 10:14; 13:16; 나 3:10). 장차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실 때에도 이러한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맥락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점은 바벨론의 미래가 그 성의 아이들에게 달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아이들이 내일은 바벨론의 군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 부모들처럼 세상을 지배하고 훼파하는 그 일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사 14:21). 따라서 9절의 섬뜩한 표현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소원이 담겨 있습니다. “여호와 주님, 다시는 저들이 예루살렘을 파과하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IV.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노래인 시편 137편

 

 

시편 137편의 중심에는 예루살렘 혹은 시온이 있습니다. (1,3,5,7절을 보시오.) 예루살렘을 기억하는 것이 이 시편의 주제입니다. 시인에게는 예루살렘이 지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습니다(6절 상).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이 땅에 거하시려고 정하신 곳이었기 때문입니다(시 74:2). 거기에는 성전이 있었고 그 성전에서 여호와의 백성은 그들의 죄를 사함받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모든 것은 오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구원의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갈 때에 그 일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었습니다(사 2:1~4; 눅 24:37). 137편의 시인은 바로 그러한 예루살렘을 항상 ‘기억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오직 여호와의 구원 사역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며 오직 그것에 대하여서만 말하려 합니다.

 

7~9절에서 말하려 하는 내용도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며, 다시 말하면 이 땅에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이루어지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에돔 사람들은 지상에서 예루살렘이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랐고 ,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무너뜨리려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시인은 이들과 바벨론, 바벨론의 어린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보복이 임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8~9절에 표현된 간구의 이면에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에다시는 영영 파괴하지 못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시편 137편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선 시인은, 만일 자신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시는 구원 사역을 최우선의 자리에 놓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형벌이 ‘자신에게’ 내리기를 구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야 시인은; 에돔과 바벨론’에 하나님의 형벌이 임하기를 구합니다. 하지만 또한 그러한 형벌을 열망하는 데서도 그는 하나님이 구속 사역이 진행되어 가는 것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따라서 137편은 개인적인 복수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복수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과 그분의 심판, 하나님의 행하심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옛 언약의 신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사역과 그분이 이 땅에서 행하시는 구원의 일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일이 곧 우리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역과 그분의 심판이 거둘 승리를, 또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저항하고 그 사역을 ‘훼파하려는’ 자들에게 임할 주님의 형벌을 대망할 수 있고 또한 마땅히 대망하여 합니다(계 18:2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2문답).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오늘 우리의 입술에도 피연 137편을 두십니다.

 

시편 137편으로 찬송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신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내용과 상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사도 요한에게, 이미 죽은 신약 시대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보복하심을 구하며 기도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계 6:10).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기를 위하여서, 또한 그분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하여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이 멸망하는 것은 이 두 기도가 응답되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대적을 벌하시기를 구하는 기도와 죄인들이 구원받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할 때에 우리는 이 두 가지의 기도가 결국 동일한 주제 곧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두 기도의 주제가 동일하므로 이 두 기조는 사실 병행할 수 있습니다.

헤르크 크바컬G.kwakel., & 밥 파위크Vujk. (2016).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1판). p102~111 성희찬(번역). 서울:성약출판사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416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찬송] '형통'과 '열매' 시편 1:3 박정일 2023-12-21 191
415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제3강] 성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오해 시편 23:1-6 박정일 276
414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제2강] 성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오해(1) : 성신 충만으로 비상한 신통력을 얻는 것이 아님 에베소서 5:18 박정일 326
413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1강] 교회가 성신의 인도를 받아가야 할 필요성 박정일 297
412 [하나님에 대한 묵상 제3강] 은혜의 방도로서의 성경 디모데후서 3:16-17 박정일 276
411 [하나님에 대한 묵상 제1강] 의의 결과에 이르게 못 하는 지식욕은 정욕 디모데후서 3:1-17 박정일 268
410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에게 주신 찬송 시편 23편] '평안'의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시편 23:1~6 박정일 2024-01-02 142
409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 왜 시편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가? pp. 14~26 박정일 2023-12-16 235
408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시편 1:1 박정일 2023-12-18 225
407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 복음을 포함한 율법 시편 1:2 박정일 2023-12-20 201
406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 시편 26편] : ] '무죄'의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시편 26:1~12 박정일 2024-01-03 116
405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 시편 1편] '지혜'의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시편 1:1~6 박정일 2023-12-22 225
404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 시편 130편] '탄원'의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시편 130 박정일 2024-01-04 117
403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 149편] '찬양'의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시편 149:1~9 박정일 2024-01-24 18
»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 137편] '보복'의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시편 137:1~9 박정일 2024-01-22 19
401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찬송 시편 2편] 어리석은 반역 시편 2:1~12 박정일 2023-12-22 214
400 [열하기하 4장] 믿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 열하기하 4:8-35 박정일 2018-01-03 227
399 [열왕기하 9장, 10장] 배도에 대한 심판 열왕기하 9:1-37, 10:1-36 박정일 2018-02-28 178
398 [열왕기하 8장] 날마다 경험하는 하나님의 섭리 열왕기하 8:1-6 박정일 2018-02-07 402
397 [열왕기하 7장] 말씀의 능력 열왕기하 6:24-7:20 박정일 2018-01-31 21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