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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시편 130
성경본문내용 1. (위로 올라가는 노래) 오 {주}여, 내가 깊음들 속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나의 음성을 들으시고 나의 간구 소리에 주의 귀를 기울이소서.
3. 오 [주]여, 주께서 곧 {주}께서 불법들을 지켜보실진대 누가 능히 서리이까?
4. 용서가 주께 있사오니 이것은 주를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5. 내가 {주}를 기다리고 내 혼이 기다리며 내가 그분의 말씀에 소망을 두는도다.
6. 내 혼이 [주]를 기다림이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나니 내가 말하거니와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은 {주}께 소망을 둘지어다. {주}께 긍휼이 있으며 그분께 풍성한 구속이 있도다.
8.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불법에서 구속하시리로다.
강설날짜 2024-01-04

I. 서론

 

시편에는 탄원의 시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환난의 때에 주님께 드린 탄원의 노래들도 있으며(예를 들어 시 44:74; 79:80), 또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으로서 여호와께 탄원한 시들도 있습니다. (소위 개인적인 탄원의 시들로서, 예를 들어 시 6:13; 22:38:42, 43:143.)

 

이러한 탄원의 시편들은 종종 하나님의 백성이나 시인 개인이 처한 특정한 비상 상황을 그 배경에 두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 어려움의 성격이 무엇인지는 시의 내용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44, 74, 79, 80편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원수의 손과 조롱에 넘기셨기 때문에 탄원하고 있습니다(44:9~14; 74:3~10; 79:1~4; 80:4~6, 12~13). 또한 38편의 시인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으며(1~10절; 또한 시 61:1~5을 보시오), 69편의 시인은 가까운 사람이나 원수나 할 거 없이 다들 그를 모욕하고 미워하므로 탄원하고 있습니다. (4, 8~12, 19~21절을 보시오. 또한 시 13:2, 4; 22:6~7; 42:3, 9~10을 보시오.)

 

주목할 점은 탄원 시들의 대부분이 결론 부분에서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전환된다는 사실입니다. 곤경 중에 있다가 갑자기 여호와께서 자기를 돌보실 것에 대한 기쁨에 찬 확신이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탄원의 소리가 갑자기 찬양으로 바뀝니다. (예를 들어 시 6:8~10; 13:5~6; 22:21~31; 69:30~36을 보시오.) 바로 이러한 갑작스러운 전환을, 일반적으로 탄원의 시로 간주하는 이 시편 130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이 시에서 여호와께 탄원하는 시인이 처한 곤경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곤경에 처할 경우에 130편의 탄원을 우리의 입술에 둘 수 있습니까?”

 

II. 개관  

 

시편 130편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부분(1~4절)은 여호와께 직접 드리는 기도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시인 자신의 간구에 귀 기울이시고(2절) 자신의 곤경을 주목하여 보시기를(3절) 구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자신의 곤경을 돌아보실 것에 대한 확신을 고백하면서 기도를 마칩니다(4절).

둘째 부분(5~8절)에서는 더 이상 여호와께 직접 기도하지 않고, 대신에 여호와를 ‘3인칭’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5절과 6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주님과 주님의 구속의 말씀을 기다리는지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7~8절)에서는 이스라엘에게 그처럼 여호와를 ‘바라도록’ 촉구합니다.

 

III. 본문 주해

 

1

깊은 데서”깊은 곳’이라는 말은 구약 성경에서 오직 물이나 바다의 깊은 곳을 가리킬 때에 사용되었습니다(시 69:2, 14; 사 51:10; 겔 27:34). 따라서 시인은 여기서 자기가 처한 곤경을 가리켜 물에 빠져 거의 죽어 가는 사람의 이미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여기서 시인이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놓인 엄청난 간격을 의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2

귀를 기울이소서” 이 구절에서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귀가 있으므로 당연히) 들으실 수 있는 분이지만 또한 그분이 기도를 들으실 뜻이 있어야 함도 사실입니다. 분명 그분이 기도를 ‘듣지’ 않으실 이유는 충분합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께서 이 기도를 호의로 듣고 응답하시도록 할 만한 것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도 업습니다.

 

3

3절에서 시인은 만일 여호와께서 죄를 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악들을 잊지 않으시며 그것들을 죄인의 머리에 두시고 벌하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여호와 앞에 아룁니다. 만약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아무도 거기에서 피할 수 없습니다. (시 143:2)

이제 여러분은 시인이 여호와께 은혜와 용서를 구할 것이라고 예상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인은 여러 말로 여호와께 그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마치 여호와께서 감히 직접 구할 자신이 없다는 듯이 다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아뢰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모든 사람을 창조하시고 주의 백성의 하나님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이 멸망하는 것을 바라십니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여기에서 믿음의 확신 표출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에게서, 오직 그분에게서만 사유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유하심은 그분께 달려 있으며 그분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그분을 무서워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경외함이란 존경하는 자세로 겸손히 그분의 계명에 순종함을 통하여 그분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유하심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눈에 뜁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에게 그분을 경외함(두려워함)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가장 좋은 방식이 무엇이겠는가’ 하고 물으면, 아마도 우리는 ‘처벌’이 좋은 방식이라고 대답하려 할 것이고 결코 용서를 그 답으로 내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그분이 자신을 경외하게(두려워하게) 하기 위하여 ‘용서하신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목적이 거기에 있다면, 죄 사함이 도리어 죄악 가운데 무분별하게 살도록 조장하게 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죄 사람을 받은 사실은 더욱 근실히 여호와를 섬기도록 할 것이고 또한 실제로 그렇게 하도록 인도합니다.

 

5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여호와 뵙기를 간절히 열망한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곧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고대하는 죄 사함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주시도록 그분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의 기다림은 온통 여호와께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한 6절 상반절과 7절 상반절을 보시오.) 그런데 시인은 여호와를 먼저 이야기하고 바로 이어서 ‘그분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교제하시고 그들을 용서하시며 구원하시는 수단입니다(참조. 삼하 12:13; 시 107:20)

 

6

파순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아가 5:7을 보면 파수꾼들은 밤중에 성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순찰하였습니다. 유쾌하게 않은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이 임무를 그들은 아침이 되어서야 마칠 수 있었습니다.

 

IV.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노래인 시편 130편 

 

특정한 탄원 시들을 보면 시인이 자신의 곤경을 원수나 질병 같은 구체적인 형태로 언급하곤 합니다. 그러나 130편에서는 그와 같은 것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한 곤경에 관하여서는 이 시편에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언급하는 것은 죄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심판입니다(3절).

 

더 나아가 시인은 자신의 죄에만 생각이 머물러 있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전체와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백성의 모든 죄에 깊이 연대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7~8절).

 

죄인인 우리는 모두 시편 130편의 시인과 동일한 곤경 가운데 처하여 있습니다(롬 7:24; 요일 1:8). 따라서 굳이 아프거나 박해를 받지 않더라도 우리는 시편 130편을 우리의 입술에 둘 수 있습니다. “깊은 데서” 부르짖음이 우리 모두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부르짖음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를 바라고 그분을 기다리며 또한 소망해야 합니다. 이는 옛 언약 아래에서만 아니라 (시 130:7 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롬 8:24~25). 오로지 이러한 방식으로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 모든 불의함에서 구속함을 얻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편 130편을 그분의 교회의 입술에 두신 것은 교회가 잘 배워서 여호와를 계속하여 바라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한 데서 우리는 그분의 은혜의 증거를 보게 됩니다

헤르크 크바컬G.kwakel., & 밥 파위크Vujk. (2016).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1판). p88~96 성희찬(번역). 서울:성약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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