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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시편 23:1~6
성경본문내용 1. (다윗의 시)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분께서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3.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참으로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들의 얼굴 앞에서 내 앞에 상을 차리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긍휼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강설날짜 2024-01-02

I. 서론

 

시편 23편은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시입니다. 이 시편이 이처럼 많은 사람을 받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자녀를 돌보신다는 사실을 이 시편이 아주 호소력 있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온갖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이 시편의 내용에 당혹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목자와 양의 비유가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우리의 속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고개를 쳐들려고 합니다. ‘진짜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정경이 아닌가!’ 이를테면 1절에서부터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리로다” 하는 아주 강한 표현을 맞닥뜨릴 때에 우리는 그러한 당혹감을 갖게 됩니다.

 

정말로 우리가 모든 환난을 면케 되겠습니까?

과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까?

 

II. 개관

 

시편 23편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인 시인이 자신을 신실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입니다.

1~4절에서는 목자가 양 떼를 돌보는 모습을 표상으로 삼아 그러한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5절에서는 같은 내용을 주인이 손님을 돌보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6절 상반절에 이르면 더 이상 비유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6절 하반절에서는 여호와의 돌보심이 언제까지나 항상 있는 것을 확신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III. 본문 주해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표현을 보면, 23편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음이 뚜렷하게 다가옵니다. 여호와께서 온 백성의 목자이시므로 백성들은 각각 그분을 개인적으로 ‘나의’ 목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창 48:15).

 

2

푸른 초장” 팔레스타인 산악 지대에는 목자들이 양 떼와 함께 거닐 수 잇는 신선한 풀이 잇는 장소가 상대적으로 희귀하였습니다. 거기로 인도하는 목자가 없이는 양들이 생존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양들은 적어도 하루 한 차례는 물을 마셔야 했는데, 마실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할 목자가 필요하였습니다.

 

3

내 영혼을 소생시기고” 그분이 나의 생명력을 회복시키십니다. 단지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소생’뿐 아니라, 육체를 포함한 전 생명, 나의 존재 전체를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의의 길” 올바른 혹은 목표에 부합한 길을 의미합니다. 그 길은 목자가 양 떼를 인도하여 그들이 있어야 할 곳, 즉 먹고 마실 적당한 장소나 양 우리로 인도하여 가는 길입니다.

 

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목자가 양을 인도해서 가야 하는 길이 항상 가장 쉬운 길일 수만은 없습니다. 때로는 낮에도 어두운 협곡을 통과해야 하고 때로는 야수의 공격을 물리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목자가 함께한다는 사실 자체가 양들에게는 안심이 됩니다. 그는 필요하다면 자기 생명을 무릅쓰고 양들을 돌볼 것입니다(삼상 17:34~35; 요10:11).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여러 성경 주석들을 보면 여기서의 ‘막대기’는 강도나 야수의 공격을 물리치려고 목자들이 사용하던 뭉둥이를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이 ‘막대기’는 목자가 양들을 바른길로 계속 진행하도록 할 때에 사용하던 긴 막대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4절에서 말하려는 핵심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면서 목자처럼 도구를 사용하여 자기 양 떼를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5

여기서는 시의 표상이 목자에서 집주인으로 바뀝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 표상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즉, 손님은 집주인에게서 충분한 부양과 보호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셨으니”, 기름을 바르면 건조한 기후 속에서 피부를 부드럽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름을 몸에 바르는(붓는) 것은 만찬에서 기쁨을 고양하는 방식이기도 하였습니다(암 6:6; 눅 7:46).

내 잔이 넘치나이다”넘치는 잔’은 여호와께서 넘치도록 주시는 분깃을 상징합니다.

 

6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분의 신실하신 호의 혹은 그분의 신실하고 계속적인 선하심입니다.

여호와의 집’ 우리는 이 표현이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킬더는 반드시 성전을 가장 먼저 떠올릴 필요는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시인인 6절 하반절에서 말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내가 항상 여호와와 함께 거할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영원한 집이 되실 것이며 그래서 집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6절 하반절은 1~5절에서 노래한 여호와의 돌보심이 영원토록 계속되는 일인 것을 보여 줍니다.

 

IV.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노래인 시편 23편

 

시편 23편은 목자와 양의 표상을 가지고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꿈과 같은 나라를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근동에서 목자의 일상은 그저 태평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목자에게는 책임이 있었고 그것을 감당할 때에는 위험한 일들이 자주 동반되기도 하였습니다. 시편 23편은 하나님의 자녀의 인생이 항상 장밋빛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아주 정직하고 진진하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4절)와 “내 원수”(5절)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다음과 같이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시편 23편의 기자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전적으로 확신하며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나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다 그의 인생이 모든 면에서 순풍에 돛 단듯이 형통하였기 때문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순조로운 환경이 낳은 결과가 아니며 그러한 환경에 좌우되지도 않습니다. 오직 성신께서 권능으로 역사하신 결과이자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러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6절은 이 시편의 하이라이트이자 절정입니다. 여기서 시인이 금전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늘 부요하게 살 것을 말하지 않고 그 대신에 “나의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라고 말하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호의를 말해 주는 것들이었습니다. 시인의 관심사는 온통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주신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사랑으로 자기를 주실 때에는 당연히 그 안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항상 부는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모든 것이 그 안에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의 기자는 여호와께서 자기의 목자이심을 이미 말했기 때문에 또한 자기에게 아무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목자시라는 사실은 그에게 아무런 부족함이 있을 수 없다는 확실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물을 소유하시고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랑으로 여러분을 돌보시고 지키시다면 여러분에게 어떻게 부족한 것이 있수 있겠습니까? 오직 넘치도록 부요하게 받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시편 23편의 기자처럼 영화의 변함없는 돌보심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친히 시편 23편을 우리의 입술에도 두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목자와 같은 주님의 돌보심에 대한 이러한 신뢰를 우리도 고백하고 노래하도록 친히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 또한 돌보신다는 사실을 결코 의심할 필요가 없음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게다가 이 일에는 그분의 이름, 그분의 명망이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가 세례받을 때에 약속하셨듯이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우리와 우리의 삶에 긴밀하게 붙들어 매십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하신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그분의 선하신 이름이 손상당하는 일을 결코 허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시 31:3; 42:3, 10; 79:9; 143;11)

헤르크 크바컬G.kwakel., & 밥 파위크Vujk. (2016).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찬송(1판). p28~39 성희찬(번역). 서울:성약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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