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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태복음 15:21~28

2015년 가을 초청 예배 I

마태복음 15:21~28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음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에 이 단어가 사용된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교회 이름으로 이 믿음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서 적은 믿음에 대해 책망하셨고 큰 믿음에 대해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폭풍우 가운데 두려워 떨며 예수님을 깨우던 제자들을 향해서 그들의 적은 믿음을 책망하셨습니다. 또한 수로보니게 여인과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칭찬한 큰 믿음은 무엇일까? 의문이 듭니다. 저는 이 시간 수로보니게 여인이 가졌던 믿음은 어떤 믿음인지를 추적해보고, 큰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린 후, 이를 우리 삶에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무엇이 큰 믿음인가?

열악한 상황 속에서의 믿음(v21~22)

v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지명에서 보면 두로와 시돈 지방은 오늘날의 레바논입니다. 이 지역은 해안가인데 갈리리 지방에서도 상당한 먼 거리입니다. 마가복음 7:24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할 것을 찾아 계속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트집을 잡았습니다. 제자들이 빵을 먹을 때 손을 안 씻는 것을 트집 잡아 예수님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 종교 지도자들로서 백성들을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는데 보다는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개혁적인 가르침에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을 죽여서 그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계속 스파이처럼, 스토커처럼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이 싫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목적 가운데 그들로부터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숨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숨을 곳이 바로 두로 지방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두로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레바논 지역에서도 상당히 위쪽으로 올라가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작정하고 숨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님의 인기는 절정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숨겨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중에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V22절에 보면 가나안 여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이기 때문에 가나안 여자라는 말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여인을 그리스 사람이며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족속(Syrophenician) 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알렉산더 대왕 이후 분열된 네 나라 중 하나였던 시리아와 토착민인 페니시아계의 혼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해보면 이 여인은 바닷가 해안 도시 출신이며, 부모가 그리스 문화와 토속 신앙을 섬겼던 가족 출신임을 추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주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입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 속에는 언약 가운데 오실 메시아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믿는 믿음이 없다면 결코 이런 호칭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유대인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호의적이었던 니고데모 역시 예수님을 선생님,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그 많은 신적인 기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고 강대국으로부터 구출해 줄 왕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을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믿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둘째,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불쌍히 여기소서는 ’mercy’입니다. 이 단어는 심판 받아 마땅하고, 처벌 받아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의미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여인은 결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좋은 형편에 있지 않았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해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바른 믿음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라합이 여리고성에서 가진 믿음처럼 참으로 신기합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이런 믿음을 가질게 되었을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는 믿음(23~24)

예수님은 이 여인을 만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여인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피하자 더욱더 큰 소리로 예수님께 외쳤습니다. 보다 못한 제자들이 이 여인을 어떻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조를 지경까지 이르렀음을 볼 때 예수님이 이 여인을 의도적으로 무시했음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가복음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라는 표현은 유대인에게 이방인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생각하며 정말 어렵게 결심하고 예수님께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자신의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소리 지르며 따라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속적인 거절에 심히 낙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에 크게 상처를 받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수도 있습니다.

 

말씀에서 지혜를 얻는 믿음(25~27)

그러나 이런 예수님의 말에 대한 여인의 답변은 어떠합니까?”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여인은 이 예수님의 말 속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실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개’라는 말과 ‘’먼저‘라는 단어 속에서 그 힌트를 찾았습니다.

 

첫째로, ‘빵’입니다. 유대인들은 빵을 주식으로 먹었다. 식사를 할 때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커다란 빵을 잘라 빵 안에 야채를 넣어 먹기도 했고 올리브나 소스를 찍어 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손에 기름이나 소스가 묻게 되는데 지금처럼 휴지가 넵킨이 없었기에 이것을 닦기 위해 빵을 사용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손에 묻은 것을 닦아 내기 위해 먹던 빵을 찢어 닦았다. 그리고 그것을 상(식탁 개념이 아니라 넓게 편 멍석정도로 식사하는 자리만 구분했다) 아래로(밖으로) 던졌다. 그것은 개가 먹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빵 부스러기가 아닙니다. 그 역시 찢어진 빵입니다. 주인과 그 자녀들에게는 용도 폐기된 빵일지라도 빵은 빵입니다.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주인이 먹는 빵을 동일하게 먹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먼저’입니다. 먼저가 있다는 말은 뒤에 나중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유대인의 농사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첫 열매’를 따서 먼저 하나님께 받쳤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전국적인 추수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그 후에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 그 이면을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이 지혜 속에서 가장 합당한 답변을 예수님께 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이방여인을 무시한 것은 이방인들의 구원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 28:19절에서 예수님은 모든 민족에게 가르치고 세례를 주며 말씀을 지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의 일하심의 우선순위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선순위를 따라 일하셨습니다. 먼저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 다음이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여인에게 예수님의 거듭된 거절은 큰 낙심이 되었을 것이고 예수님에 대해 큰 실망감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말씀 속에서 깊은 통찰력으로 예수님의 숨어 있던 의도를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칭찬하신 큰 믿음(v28)

이 여인의 답변에 예수님은 놀랐습니다. 그래서 여인을 칭찬하였습니다. “여인아 네 믿음이 크도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을까요?

 

첫째로, 그녀의 출신과 지역을 생각할 때 여인의 믿음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여인이 사는 두로 지역은 해안 지역입니다. 해안 지역은 바다에 나가는 일이 빈번함으로 인해 바다와 관련된 우상 숭배가 많습니다. 이 여인은 그리스인이며 또한 시리아와 페니키아의 혼혈입니다. 그러므로 그 조상들의 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인 자체가 굉장히 논리적이고 지성적입니다. 믿음은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두 개는 굉장히 대립적인 것이요 물과 기름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이 예수님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거의 희박합니다.

 

둘째로, 여인의 예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 여인은 정확하게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언약대로 오신 메시아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선생’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중에 있는 선생, 현명한 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개’와 ‘’먼저‘에서 유대인들의 관습과 신앙을 한 순간에 파악할 정도로 상당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이는 이 여인이 단순히 소문만 듣고 예수님을 찾아다닌 게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나름대로 성경을 잃고, 묻고 배우며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한 마디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불가능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여인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크게 이 여인의 믿음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칭찬하신 여인의 큰 믿음이었습니다.

 

적용과 결론

믿음은 크게 두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 구원 얻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은혜로 주어진 믿음입니다. 두 번째 믿음은 우리가 가야 할 길, 사명, 믿음의 순례길에서 마주치게 될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할 때 필요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신 여인의 믿음은 후자에 해당됩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을 돌아볼 때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 일들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믿음의 길을 가며 그 과정 속에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있는 문제들 앞에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바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낙심하지 찾고 두드린다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를 향한 계획을 발견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믿음이야 말로 예수님이 여인을 칭찬하신 큰 믿음인 것입니다.

 

저는 이제 목회자로서 첫 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고 낙심이 됩니다. 하루 종일 낙심된 마음으로 쓰러져 있다가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주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큰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낙심하지 말고 전진해 나갈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제가 오늘 말씀과 같이 큰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칭찬하신 큰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어렵고 낙심되는 상황일지라도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지며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세미한 음성을 듣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다 주님께 칭찬 받는 큰 믿음을 소유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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