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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전도서 7:1~29

본문: 전도서 7:1~29

 

지난 시간에는 어떻게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세 가지 유형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돈과 명예가 많으면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둘째는 자식이 많고 장수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질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 앞에 사람답게 걸을 수 있는 지식이 있는가? 질문이었습니다. 이 세 질문에 대한 답은 전도서는 No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공상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것을 해주지 않는 가에 대해 하나님과 따지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다고 여기는 것들이 실상은 우리에게 독이 되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도서 1~6장 까지 말씀을 공부하면서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빠질 때 허무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배웠습니다. 이제 7장부터는 설교자는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오늘 7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통해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한 남자", 예수 그리스도

I. 나는 누구인가? (v1~14)

(1) 죽음을 늘 묵상하는 나 (v1~4)

v1~4절에서는 설교자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생의 끝이 있음을 알게 하고 있습니다. 1a절을 보십시오. “좋은 이름이 귀한 향유보다 낫고” “좋은 이름”은 그 사람이 남긴 평판을 말합니다. “항유”는 죽은 자에게 바르는 기름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는 시체에 이런 기름을 바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평판을 남기는 것이 부하게만 살다가 죽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1:39“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되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히브리서에 소개된 믿음의 조상들은 심한 조롱과 채찍질과 결박과 옥에 뿐 옥에 갇히는 시련과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시험을 받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으며 사막과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떠돌아다녔느니라.(히브리서 11:36~38) 그러나 그들은 좋은 이름을 얻었습니다.

 

1b절을 보십시오. “죽는 날이 사람의 태어난 날보다 나으니라.” 설교자에게는 “죽는 날”이 배가 만선을 하고 돌아오는 날과 같습니다.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나은 것은 인생의 모진 풍파를 끝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애곡하는 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이는 그것이 모든 사람의 끝이기 때문이라. 살아 있는 자는 그것을 자기 마음에 두리라.” “애곡하는 집”은 초상집을 의미합니다. 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좋습니까? 이는 우리 모두가 죽는 사실을 마음에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인지하고,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인생의 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것은 짐승의 삶과 같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슬픔이 웃음보다 나으니 이는 얼굴의 슬픔으로 인하여 마음이 더 나아지기 때문이니라.” 이 구절은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서 나온 구절입니다. 결코 웃음을 폄하하고자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을 정직하게 바라볼 때, 인생은 고통입니다. 생노병사의 고통 속에서 사는 인생입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이 고통의 바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통찰할 때 슬픔이 웃음보다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이 슬픔이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합니다. 자신의 창조주를 찾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애곡하는 집에 있으나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희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희락”은 쾌락을 의미합니다. 인생에서 먹고 마시면서 앞서 언급한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없는 삶입니다. 이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지혜로운 자들의 마음은 늘 “애곡하는 집”에 있습니다. 늘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이 가야 곳을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함을 생각합니다.

 

(2) 치명적인 실수를 범할 수밖에 없는 나 (v5~7)

5~6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사람에게 나으니라 가시나무가 솥 밑에서 우지직 소리를 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의 웃음도 그와 같나니 이것도 헛되니라.” 솔로몬 시대 중동에는 땔감이 부족했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땔감의 재료들을 사용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가시나무입니다. 가시나무는 불에 던져지면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마치 화력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쉬 꺼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실속이 없는 땔감의 재료입니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자들은 사람들의 사탕바림과 같은 칭찬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에는 실속이 없습니다. 진정한 실속은 지혜로운 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에서 어리석은 자들만이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7절을 보십시오. “참으로 학대는 지혜로운 자를 미치게 하며 뇌물은 마음을 파멸시키느니라.” 지혜로운 자도 때로는 인생길을 걸을 때, 부에 대해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학대”란 의미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의를 통해 재산을 축적하는 것을 말합니다. 뇌물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공정한 기회를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5~7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실수를 범하고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자들도 어리석음에 빠져 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자임을 가르쳐 죽고 있습니다.

 

(3) 인생의 역경을 견디며 살아가는 나 (v8~10)

8~9절을 보십시오. “일의 끝이 일의 시작보다 낫고 영 안에서 참는 자가 영 안에서 교만한 자보다 나으니 네 영이 조급하여 분노하지 말라. 분노는 어리석은 자들의 품에 머무느니라.” “일의 끝이 일의 시작보다 낫고”의 의미는 지혜로운 자는 일의 끝과 시작을 생각하는 자입니다. 그 과정에서 올 어려움과 고난까지도 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 속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인내하는 자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결코 인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가는 자는 인생의 길에서 넘어져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의 인생에는 인생의 쓴 뿌리, 분노가가득합니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립니다. 또한 과거지향적인 삶을 삽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르기를, 이전의 날들이 지금의 날들보다 더 나은 이유가 무엇이냐? 하지 말라. 네가 이것에 대하여 지혜롭게 묻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의 의미는 옛날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다고 한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는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인생의 길을 자신의 힘으로 삽니다. 그리고 넘어진 후에는 분노와 불평, 그리고 과거에 매여 삽니다. 이런 삶은 지혜로운 자의 삶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자는 인생의 모든 일들을 다 예상합니다. 그리고 인내합니다. 뒤에 남겨진 것을 보지 않고 앞을 보고 전진합니다. 이런 삶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인내합니다.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 모두 가 인생의 역경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차이점은 누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차이입니다.

 

(4)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나 (v11~14)

11~12절을 보십시오. “지혜는 상속 재산과 더불어 좋은 것이니 그것을 통하여 해를 쳐다보는 자들에게 유익이 있도다. 지혜는 방벽이며 돈은 방벽이니라. ”지혜는 상속 재산과 더불어 좋은 것이니“ 상속 재산을 받을 때, 그 재산을 지혜롭게 사용할 지혜를 함께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받은 재산을 잘 지키고, 크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지혜“는 사람의 인간적인 지혜를 의미합니다.”방벽“이라는 의미는 ”안식처 또는 ”피난처“란 의미입니다. 돈이 인생의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돈을 잘 관리하는 재능 또한 인생의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삶에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하는 돈과 그를 잘 관리하는 지혜가 언제나 영원할 수 있을까요? 13~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깊이 생각해 보라. 그분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우리 인생이 항상 탄탄대로만을 달릴 수는 없습니다. 굽은 길도 걸어야 가야 합니다. 그리고 굽은 길을 가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14a를 보십시오. ”형통하는 날에는 기뻐하되 역경을 당하는 날에는 깊이 생각하라.” 하나님은 형통한 날과 역경을 통해 우리의 삶을 쭉 뻗은 길로도 가게 하시고, 굽은 길로도 가게 하십니다. 인생이 형통할 때는 우리는 기뻐합니다. 그러나 역경이 오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이 두 가지를 주신 것은 인생을 겸손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II.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v15~18)

(1) 지나치게 의로운 인생

“나의 허무한 날들 속에서 내가 모든 일을 보았는데 자기의 의로움 속에서 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사악함 속에서 자기 생명을 길게 하는 사악한 자가 있도다. “지나치게 의로운 자가 되지도 말며 스스로 지나치게 지혜로운 자가 되지도 말라. 어찌하여 네가 네 자신을 멸하려 하느냐?” 인생을 살아갈 때 악인이 득세하고 장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럴 때에 의로운 마음이 가득하여 악인과 싸우려고 하는 의인이 있습니다. 이 불의한 사회를 개조해 보고자 사회 운동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악한 자들의 반격과 덫에 빠져 자기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2) 지나치게 악과 타협한 인생

또한 17절에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너는 지나치게 사악한 자가 되지도 말며 어리석은 자가 되지도 말라. 어찌하여 네가 네 때가 이르기도 전에 죽으려 하느냐?” 악인과 결탁하여 사는 것입니다. 악인과 결탁하여 이 세상에서 악한 일을 하는 의인은 하나님께서 그 목숨을 강제로 거두어 가십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

또 다른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입니다. “네가 이것을 붙잡고 참으로 네 손을 이것에서 거두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것들 모두에서 벗어나리라.”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26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제 설교자는 그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III.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가? (v19~29)

19절은 지혜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지혜로운 자를 도시 안에 있는 열 명의 용사보다 강하게 하느니라.” 하나님은 지혜를 얻은 자가 열 명의 용사 열 명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인생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과 같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열은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또한 ‘용사’는 통치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열 명의 용사는 세상의 권력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권력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왜 지혜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까? 지혜는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땅 위에 하나도 없느니라.” 설교자는 이 땅에서 의로운 자는 그 누구도 없다고 말합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네가 들을까 염려하노라. 너도 그와 같이 다른 사람들을 저주하였음을 네 마음도 종종 아느니라.” 21~22절은 이 세상에 의로운 인간이 없다는 하나의 일예가 됩니다. 누구든지 그 마음에 다른 사람을 향한 저주가 있습니다. 이는 종과 주인이 같습니다. 차이는 누가 덜 하느냐의 차이뿐입니다.

 

설교자는 인생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의로운 인생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의롭게 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23~24절에서 설교자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찾고 또 찾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혜가 멀리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내게서 멀리 있었도다” 또한 24절에서 지혜를 자신의 힘으로 찾을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멀리 있고 지극히 깊은 것을 누가 능히 찾아내리요?” 솔로몬은 지혜를 실체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가 무엇인가?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깊게 알고자 하면 알수록 그는 더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안다는 것은 그에게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렴풋하게나마 그가 알게 된 지혜는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시시오. 음녀의 존재입니다. 음녀가 사람을 유혹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창녀가 젊은이를 속여 꾀여 내듯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속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그 여자의 꾐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하나씩 하나씩 세어가며 전말을 알아내어 이것을 알게 되었노라.” 전도자는 우리 인생에 구원자가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내 혼이 아직도 찾고 있으나 내가 알아내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곧 내가 천 명 중에서 한 남자를 찾았으나 그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명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솔로몬은 “한 남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여자가 지혜롭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열은 완전수입니다. 열이 두 번 곱한 수가 1000입니다. 3 또한 완전수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인류 중에서 한 남자만이 의로우며, 그 분을 통해 의로워질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 “한 남자”는 누구냐? 여기서 솔로몬은 막혔습니다. 도저히 그가 누군지를 더 이상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이 누군지를 압니다. 그 분은 천하 만민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29절은 “한 남자“ 구원자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발견한 것은 오직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사람을 곧바르게 만드셨으나 그들이 많은 창안물을 찾아냈다는 것이라.” 29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곧 바르게, 의로운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안물'의 의미는 '생각, 계획, 계략, 또는 계책' 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을 구별하고 스스로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기 위한 여러 가지 생각과 계략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이 세상에는 악이 들어오게 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더 복잡하게 악한 일에 연루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인간은 선을 알면서도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변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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