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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전도서 6:1~12

전도서 6:1~12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숙제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불행히도 행복하고자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행복과는 멀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이 주제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전도서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답을 통해 행복해지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을까?

 

PART I 행복을 추구하는 유형들(v1~8) 

설교자는 먼저 행복을 추구하는 세 가지 유형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내가 해 아래에서 본 한 가지 악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 가운데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라.” 설교자는 한 가지 ‘악‘을 보았습니다. 이는 ’폐단‘, 혹은 ’불행한 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공통적‘이라는 의미는 우리 인생 가운데 흔하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우리 삶에 목격되는 불행한 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와 명예가 행복을 줄 수 있는가?

2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와 재물과 명예를 주셨으므로 자기 혼을 위해 자기가 바라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을 권능을 그에게 주지 아니하셨으므로 낯선 자가 그것을 먹나니 이것은 헛된 것이며 그것은 악한 병이로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부와 재물과 명예를 주셨습니다. 부와 재물과 명예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복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 단어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주신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복을 주시되 부족함이 없도록 주셨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 주시지 않는 것이 있는데 먹을 권능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먹을 권능’은 즐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진 것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충분히 가지고도 그 가진 것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폐단이 우리 인간에게 너무나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흔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비참한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일생 열심히 일해 쌓아 둔 것을 즐겨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생면부지의 사람이 이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부와 명예가 있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부와 명예가 있더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에서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가지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둘째, 자식의 많음과 장수가 행복을 줄 수 있는가?

3절을 보십시오. “비록 사람이 백 명의 자식을 낳고 또 여러 해를 살아 그의 햇수의 날들이 많을지라도 그의 혼이 좋은 것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또 그가 묻히지도 못하면 내가 말하건대 유산된 자가 그보다 나으니라.” 두 번째 사람들은 인생의 행복을 자손의 많음과 장수에서 것으로 찾는 것 같습니다. 자손이 많은 것은 행복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식이 많을지라도 ‘그의 혼이 좋은 혼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자식이 많고 화목하며, 이를 통해 인생의 낙, 즐거움을 누릴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나고 근심할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더욱더 비참한 경우는 이렇게 자식들이 많지만, 죽은 부모를 장사해 줄 자녀가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불행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런 일들이 우리 인생에 자주 일어납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큰 기쁨의 원천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자랑이요 희망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헌신합니다. 헌신하고 사랑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이런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것이 부모로서의 행복입니다. 히브리 수 10은 완전수입니다. 100은 10를 10으로 곱한 수입니다. 이는 자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꼭 100명의 자녀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자녀들로부터 부모가 응당 누려야 할 기쁨과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는 정말 불행합니다. 그의 말년에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면 너무도 불행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많은 사람이 오래 살기를 기원합니다. 장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복 중의 하나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할지라도 인생의 낙, 즐거움,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는 유산된 자보다 더 비참한 인생입니다. 성경은 어떤 점에서 유산된 자가 비참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첫째, 그는 헛되이 온 자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왔지만,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둘째, 그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유산된 자보다 더 비참한 자가 있습니다. 오래 살 지만 인생의 기쁨, 낙,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 사람은 천 년을 두 번, 즉 2천년을 살지라도 ‘여전히 좋은 것을 보지 못한 자’입니다. 이런 자는 유산된 자보다 더 못한 자입니다. 유산된 자는 차라리 ‘안식’이라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2천년을 산 자는 이 세상에서 인생의 즐거움도 모른 채, 고통과 번민과 후회로 인생이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마음의 안식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비록 2천년을 살아도 그의 마음은 지옥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지식을 많이 쌓으면 행복한가?

7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모든 수고는 그의 입을 위한 것이나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식욕’은 우리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구를 말합니다. 사람은 오늘 아무리 많이 먹어도 내일 다시 먹어야 합니다. 이런 식욕 외에도 성욕, 미적 욕망도 다양한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욕망에 끌려 살 때,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이 무엇이냐? 산 자들 앞에서 걸을 줄 아는 가난한 자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그러나 이런 사람 중에도 사람답게 사는 것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산 자들 앞에서 걸을 줄 아는 자’는 무엇이 옳고 그릇을 아는 자입니다. ‘조문도면 석사가의’란 말이 있습니다.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란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공부를 합니다. 지식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도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 지혜로운 사람도 인간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도 역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염려할 수 밖에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아담의 죄로 인한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PART II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 (v9)

9절을 보십시오. “눈으로 보는 것이 욕망으로 인해 헤매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9절에는 우리 인간이 진정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욕망으로 인해 헤매는 것”은 공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이 가질 수 없는 상상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지금의 것에서 낙을 찾고 기쁨을 찾는 것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전도서 4:6 “한 손에 가득하고 평온한 것이 두 손에 가득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보다 더 나으니라.” 자신이 가진 것이 진정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전도서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것에서 낙, 기쁨,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몫이며, 선물이며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5장 18~19 “내가 지금까지 본 것에 주목할지어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그의 생명의 모든 날 동안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행하는 자기의 모든 수고의 좋은 열매를 즐기는 것이 선하고 마땅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부와 재물을 주시고 또 그에게 그것을 먹고 그의 몫을 취하며 그의 수고한 것을 기뻐할 권능을 주셨나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로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나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삶과 시간과 기회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가 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결코 만족을 모릅니다. 더 좋은 것, 더 멋있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것을 가지게 되어도 곧 싫증을 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가치를 잊고 또다시 욕망의 노예가 되어 더 나은 상황을 상상합니다. 이런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만족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몫과 권능과 선물을 주실 때, 인생에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형편과 처지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작은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음을 잊지 마십시오. 1절에서 가지고도 ‘낙’을 누리지 못하는 자가 너무도 흔하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PART III 인간에게 요구되는 겸손한 태도(v10~12)

만족이 없을 때, 인간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불평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아뢰고 상황과 형편을 바꾸어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행동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되었습니다.

 

첫째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지금까지 존재한 것에는 이미 이름이 붙어 있고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도 알려졌나니 그는 자기보다 강하신 이와 다투지 못하느니라.“ ‘사람’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아담’입니다. ‘아담’이라는 단어의 ‘먼지’라는 의미입니다. ‘다투지 못하느니라.”에서 ’다투다‘는 ’판단하다‘란 의미입니다. 인간은 먼지와 같습니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창조물인 인간이 창조자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는 교만입니다.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는 우리에게 최선이 무엇인지를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헛된 것을 증대시키는 일이 있음을 보거니와 무엇이 사람을 더 낫게 만들리요?” 이 말의 의미는 더 많이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헛된 말들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현재의 삶 곧 사람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처럼 보내는 삶 속에서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 누가 알리요? 해 아래에서 사람의 뒤를 따라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우리 인간은 무엇이 좋은 줄 모릅니다. 무엇이 최선인 줄을 모릅니다. 우리는 부유하면 행복할 줄 압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부유해서 불행할 수 있습니다. 돈 때문에 더욱더 삶이 비참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면 행복해 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닐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무너져 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있는 최선을 아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최고를 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무능력한 자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의 안녕과 행복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베스트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다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계속해서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헛된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는 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은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만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요 선물입니다. 이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최고의 인생으로 빚어 가심을 알고 기뻐하며 낙을 누리게 됩니다. 이런 삶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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