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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전도서 3:1~22

말씀: 전도서 3:1~22

 

우리는 전도자가 말년에 쓴 설교집인 전도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첫 시간에는 전도서의 서론 부분인 1~11절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공부했습니다. 전도자는 인생의 허무함의 이유를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 인생, 예측할 수 없는 불행한 일들로 가득 찬 인생,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삶과, 아무리 해도 그 일이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닌 것과, 사람들의 생각에 기억되지 않는 6개의 이유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시간에서 전도자가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고자 했던 노력들 중, 자신의 지식과 지혜로 인생의 탐구한 내용과 결과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전도자는 아무리 열심히 이 세상에 대해 연구해 보았습니다. 전도자의 결론은 인간이 이 땅에서 앞서 언급한 6가지의 이유의 삶을 살게 된 이유는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임을 알았습니다. 인간은 이 범죄로 인해 이 땅에서 죄를 단련 받으며 하나님을 찾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도자는 인생에 대해 알려고 하면 할수록 지혜가 많으면 근심도 많고 지식이 늘어나면 슬픔 또한 늘어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지난 세 번째 시간에서는 전도자가 쾌락을 통해 인생을 탐구한 사실에 대해 배웠습니다. 더 이상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인생의 일을 알 수 없자, 전도자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전도자는 웃음, 곧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을 높임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 포도주로 대변되는 연회, 파티와 같은 육신적 쾌락과 건축 행위, 소유를 통한 쾌락을 추구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24절에서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과 스스로 수고하는 가운데 자기 혼으로 하여금 좋은 것을 즐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도다. 내가 이것도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도다.“

 

오늘 말씀은 지난 두 시간의 결론에 대한 말씀입니다. 인생을 두 가지 방법으로 탐구한 전도자는 이제 유한한 삶을 사는 인생이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며, 바른 삶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은 인생에 대해 어떤 인생의 태도를 가지며 살아야 할 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삶에 대한 바른 태도

PART I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삶(v1~8)

1절을 보십시오.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목적한 것에는 때가 있도다.” 전도자는 모든 일에 시기가 있고, 모든 목적한 것에는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기”는 '정한 때'를 의미합니다. 목적은 “사건”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정한 때'나 '기간'은 특정한 한 시점이나 기간을 가리키며 '영원'과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목적(사건)들이 다 때(시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전도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반대되는 7쌍의 사례(14개의 사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유대인들에게 7은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2-8절에 나오는 14개의 사건들은 서로 대립적인 교차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완전수의 7이 두 번 반복된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1~8절은 하늘 아래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일어나는 사건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없이, 어떤 목적 가운데 일어나고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여기에서 제시된 네 가지 대립되는 사건은 생명과 죽음, 심음과 뽑음입니다. 여기에서 출생은 생명이 시작되는 사건이고,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사건입니다. 또한 식물을 심는 것도 식물에 있어서는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고, 식물을 뽑는 것도 식물의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가 있고 모든 임무를 마치고 세상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곡식이나 식물 역시 심을 때가 있으면 추수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을 포함해서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세상에 존재했다가 목적을 이루고 나면 세상을 떠나 사라집니다. 이 세상에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이 없으며, 언젠가 사라져야 하는 유한한 존재들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무너뜨릴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전도자가 모든 것이 정한 때와 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제시한 두 번째 사례는 죽이고 치료하며, 허물고 세우는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죽인다'는 말은 '매를 들어 징계하는 것'을 의미하며, '고치다'는 말은 '죄를 용서하고 매를 맞아 입은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회개하는 자는 용서해 주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원리를 건물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를 들어 때릴 때와 치료할 때가 있는 것처럼, 건물도 헐 때가 있고, 다시 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건물을 '허무는 것'은 매를 들어 죄인을 징계하는 것과 같고, 건물을 '세우는 것'은 회개한 사람을 용서하고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도자가 모든 일에 때와 기한이 있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 제시한 세 번째 예는 슬픔과 기쁨에 관한 사건들입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슬퍼서 울 때가 있고, 또 기뻐서 웃을 때가 있습니다. 4절에서 “운다”고 번역된 말은 몹시 슬퍼하여 울거나 통곡, 또는 애곡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성도들을 쳐서 울게 하시지만, 그 후에는 기쁨을 주어 그들을 다시 위로해 주십니다.

 

전도자가 모든 것이 때와 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 하기 위해 제시한 네 번째 사례는 돌들을 버릴 때와 돌들을 모을 때, 껴안을 때와 껴안는 것을 금할 때입니다. 이 구절은 기독교 역사상 해석하기에 가장 난해한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명확하게 이 구절을 설명하는 주석은 없습니다. 그리고 수세기에 걸친 주석가들의 의견은 이 구절이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일로 보고 있습니다.

 

'돌을 던져버리거나 거두는 일'은 '안는 일과 안는 일을 멀리하는 일', 즉 '사랑과 미움'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에서 '돌'로 번역된 말은 성경에서 돌, 보석, 또는 저울추 등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또한 '버리다'고 번역된 말은 부정하거나 쓸모없는 것을 버리거나 죄인을 심판을 통해서 약속된 땅에서 내쫓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모으다'고 번역된 말은 사람들을 집회에 모으거나, 귀중한 보석이나 물건을 수집하고, 곡식을 추수하여 거두거나, 또는 재물을 벌어서 쌓아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점을 생각해 볼 때에, 본문에 나오는 '돌을 던져버리거나 돌을 거두는 일'은 '미움과 사랑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돌을 거두는 것'은 돌이나 보석을 귀중하게 여기고 수집하는 것, 즉 '사랑'을 의미하고, '돌을 던져 버리는 것'은 마음이 변해서 돌을 내던져 버리는 것, 즉 '미움'을 의미합니다.

 

'안는다'고 번역된 말은 안다, 포옹하다, 꽉잡다, 끌어안는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왕하 4:1, 잠 4:8). 이 말은 깊은 애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꽉 붙잡거나 끌어안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멀리한다'고 번역된 말은 거리가 멀거나(시 119:150), 사람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욥 30:10), 또는 멀리 떠나는 것(겔44:10)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안는 일은 사랑과 애정을 의미하고, 안는 일을 멀리하는 것은 사랑이 식어져서 사이가 소원해 지거나 멀리 떠나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사랑의 감정이 찾아 올 때도 있고, 감정이 떠날 때도 있습니다. 이는 비단 남녀 간의 애정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애가를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을 하나님과 그 백성의 사랑으로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그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백성이 우상 숭배로 하나님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은 식어질 때가 있습니다.

 

전도자가 모든 것이 때와 기한이 있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 다섯 번째로 제시한 것은 얻고 잃는 것과 관계된 사건들입니다. 전도자는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무엇을 찾을 때가 있고 또 그것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6절에서 "얻다"고 번역된 말은 성경에서 찾다, 구하다, 요구하다, 원하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살다가 보면 하나님을 간절히 구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가진 것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6절에서 "잃는다"고 번역된 말은 성경에서 '멸망하다', '죽다', 그리고 '없어지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는 한 개인의 생애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때로 역사책을 읽어 보면 한 민족이 나라를 잘못 경영해서 멸망할 때도 있고(민 2:29), 사람들이 죽을 때도 있으며(미 4:9), 사람들이 죽은 후에 소멸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전도자는 "지킬 때가 있으며 버릴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지킨다"고 번역된 말은 성경에서 '지키다, 망보다, 보존(보호)하다, 준수하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규례를 따라서 정기적으로 무교절을 지켰습니다.(출 12:17). 하나님은 대적들로부터 성도들의 영혼을 보존해 주셨습니다(시 86:2).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을 버리실 때도 있습니다. 6절에서 "버린다"고 번역된 말(솨라크)은 성경에서 '내던지다(민 19:6), 내동댕이치다'(사 34:3), 또는 '쫓아내다'(왕하 24:20)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부정하거나 쓸모없게 된 것을 버리시고, 죄인을 심판하여 약속된 땅에서 쫓아내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지만, 끝내 거역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포기하고 내던져 버리십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끝내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약속의 땅에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전도자가 모든 것이 때와 기한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제시한 여섯 번째 사례는 진노와 화해(또는 용서)와 관계된 사건들입니다. 여기에서 찢는 것과 꿰매는 것, 그리고 잠잠하고 말하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진노와 화해(용서)를 상징하는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7(상). 여기에서 전도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용서를 여인들의 바느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진노는 영원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다가도 죄인들이 돌아오면 즉시 그들을 용서해 주시고 찢으셨던 상처를 꿰매주십니다.

 

또한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잠잠할 때가 있고 말씀하실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고 잠잠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의인들은 낙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처럼 생각하고 근심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전도자가 모든 것에 때와 기한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제시한 마지막 예는 사랑과 미움, 그리고 전쟁과 평화에 관한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전도자는 개인적인 감정, 즉 사랑과 마움에 대해서 말하고 이것을 국가로 확장하여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절에서 하늘 아래 모든 일, 사건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이 세상의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 간섭하십니다.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요셉의 삶에서, 또한 에스더서에서 비밀스럽게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나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일상사에 슬픔과 기쁨 환희와 좌절이 교차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를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셔서 이 일들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시고 있음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목적한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PART II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전도자는 9절에서 일하는 자가 자기가 수고하는 것에서 무슨 유익을 얻을 수 있는가? 묻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답이 10절에 있습니다. 이는 아담의 범죄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1장 13절의 구절과 같은 내용입니다. 1장 13절에서 전도자가 자신이 가진 지식과 지혜로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의 답으로 아담의 범죄로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삶의 고통과 고뇌를 통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 “단련 받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목적과 행함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는 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우리 삶에 일어나는 것의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게 위해서입니다. 또한 14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게기 위함입니다. 경외는 두려워 떠는 의미도 있지만, 존경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들을 인간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경외감을 표할 뿐입니다.

 

15절은 14절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적인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있던 것이 지금 있으며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어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요구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새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인간은 단지 과거에 했던 일을 오늘 반복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들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창조주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미 과거에 주셨던 것을 다시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연법칙을 따르기를 원하시며, 양심의 법칙을 따르기를 원하시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법칙을 따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사람들에게 원하셨던 일을 지금도 원하시며, 또한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원하십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하에서 살아가야 할 인간의 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 앞에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해 아래에서 자신의 힘과 지혜를 믿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심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간의 태도입니다.

 

PART III 하나님 안에서 성화되어 가는 삶

이제 전도자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16절에 전도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에서 사악함과 불법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불의한 자가 계속해서 잘 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혹 겸손해져서 하나님을 찾을 길을 막으십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죽은 이후에도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18절에 하나님은 사람들의 아들들의 상태를 드러내십니다. “드러내다” 의미는 “깨끗하게 하다”, “정결하게 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살 동안 인간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성화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19~21절은 인간의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짐승이 죽는 것과 같이 인간도 죽습니다. 이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러나 차이는 인간의 영은 하늘로 올라가는 반면에 짐승의 영은 땅으로 갑니다. 인간의 영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의미는 영혼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신자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올라갑니다. 영원한 세상에서 영원한 몸을 입고 살 것입니다. 죄인의 영혼 또한 부활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심판을 받아 타는 유황불 연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반대로 짐승의 영혼은 땅으로 갑니다. 이 영혼은 호흡을 말합니다. 짐승의 호흡이 다 되면 죽어 땅에서 썩게 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누가 그를 데려다가 그의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여 주겠느냐?” 이 말의 의미는 죽은 자가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한 번 죽으면 더 이상 이 세상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남겨두고 떠나게 됩니다.

 

전도자는 이제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죽음 앞에 서 있는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신의 죄를 날마다 깨끗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삶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죽게 되면 더 이상 그런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극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할 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전도서 3장을 통해 유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어떤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는 지를 배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삶입니다. 둘째는, 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 안에 있는 죄를 극복하고 성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가 이 세상에서 찾는 인간의 의미입니다. 이 삶이 오늘을 사는 성도의 바람직한 삶의 태도입니다. 온 교회가 오늘 배운 바른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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