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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잠언 8:22~31

본문: 8: 22~31

우리는 이제껏 지혜에 대해 배워 왔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는 금은보화보다 더 귀한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지혜를 얻기 위해 힘쓰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는 잠언 3강 3:14~35절에서 지혜는 예수님임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혜가 예수님임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4세기 기독교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삼위일체에 반대하던 자들은 이 말씀, 특별히 22절을 근거로 예수님께서 피조물임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결국 기독교 이단으로 정죄를 당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지혜가 피조물이 아닌 창조자임을 배우고자 합니다. 지혜가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잠언의 지혜는 예수님

PART I 창조주로 임명받은 그리스도 (v8:22-23)

“주께서 자신의 길을 시작하실 때에, 자신의 옛적 일들을 행하시기 전에 나를 소유하셨으며” 여기서 주는 언약의 주(The LORD)입니다. 주님은 언약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그 백성을 위해 태초부터 우주 만물과 인간의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태초 이전부터 “자신의 길”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자신의 옛적 일들을 행하시기 전” 곧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지혜를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22절에서 "나를 소유하셨다"고 번역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이 말은 원래 "소유한다"는 말 외에도 "바로 세운다", 또는 "조성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이 곳에 언급된 지혜는 성자 예수님의 상징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아리우스라는 사람은 "소유하다"라는 말을 "나를 창조하셨다"고 번역하고, 이 구절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며,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의 주장은 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소유하다"는 "바로 세운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 단어는 70인 역본에서 그리스어로 “임명받다“는 의미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므로 22절은 태초에 성부께서 성자 예수님을 창조의 동역자로 세우(임명)셨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영원부터, 처음부터 또는 땅이 있은 이래로 내가 세워졌노라.” 여기서 "영원부터"라는 말은 시간이 존재하기 전을, "처음부터"라는 말은 천지창조 직전을, 그리고 "땅이 생기기 전부터"라는 말은 창조 사역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땅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을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잠언서 저자는 지혜가 창조 이전과, 창조 때, 그리고 그 후부터 계속해서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후에 이 구절은 그리스도가 창조 이전에 계셨음을 강조하는 구절로 간주되었습니다. 또 "내가 세워 졌노라"는 말(니사크티)은 원래 '기름 붓는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혜를 창조 사역의 주관자로 임명하셨으며, 이 직분을 위임하기 위해서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성별하셨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지혜가 우주 만물의 창조자로 기름을 임명되고 기름 부음을 받아 성별되었음을 배웠습니다.

 

PART II 만물보다 먼저 존재한 그리스도 (8:24-26)

"깊음들이 없을 때에, 물을 풍성히 내는 샘들이 없을 때에 내가 드러났으며“ 지혜는 바다와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세상에 바다와 큰 샘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드러났다"고 번역된 말은 원래 "(해산의) 진통을 겪는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성부께서 성자를 낳으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자께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옳지 않습니다. 이 말은 지혜, 곧 성자께서 창조 전부터 이미 계셨다는 말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혜, 성자께서는 창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지혜는 산들이 있기 전에 이미 계셨습니다. 언덕이 있기 전에 이미 계셨습니다. 또한 “세상 흙의 가장 높은 부분”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가장 비옥한 땅의 흙들 중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만물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만물보다 이전에 존재하셨습니다. 바다와 산들과 평야가 있기 이미 이전에 존재하셨습니다. 인간이 있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셨습니다.

 

PART III 창조에 참여한 그리스도 (8:27-31)

지혜는 창조 전에 세상에 존재했을 뿐 아니라, 창조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 곁에서 창조 사역에 함께 참여한 창조주였습니다. 지혜가 창조의 근원이었으며, 신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지혜는 하늘들을 지으시고 깊음의 표면에 한계를 정하실 때에 그 곳에 계셨습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궁창(대기권의 하늘)을 만드시고, 위의 물과 아래 물을 구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궁창의 창조 사역에 참여하였으며, 하나님이 만드신 궁창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지혜는 "위로 구름들을 굳게 세우시며 깊음의 샘들을 강하게 하시고“ 여기에 언급된 "깊음의 샘들”은 궁창 위에 있는 물을 의미합니다. 이 깊음의 물은 대홍수 때 이 지구상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바다의 샘들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원래 "심연의 근원을 안전하게 고정시켰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심연의 근원"은 바다 밑에 있던 지하수를 말합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바다와 땅을 창조하실 때에도 함께 했습니다(29). 하나님께서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그 한계를 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물과 육지를 나누시고 바다가 육지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혜는 그 때에 하나님과 함께 창조 사역에 참여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도 함께 했습니다. 고대인들은 어떤 기둥이 땅을 받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혜는 창조 사역에 있어서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창조자가 되어 창조 사역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였습니다. 지혜는 창조 사역에 참여하고 자신이 만든 것을 보면서 기뻐했습니다. 지혜, 즉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함께 창조 사역에 참여하시고, 만드신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또한 지혜는 땅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만드시고 그들을 보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31절에 언급된 "그 분의 땅의 거할만한 곳“은 피조 세계를 의미합니다.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창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탁월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살 피조 세계와 인간을 하나님과 함께 창조한 지혜는 기뻐하였습니다.

 

이 상에서 우리는 지혜가 태초보다 먼저 존재한 분이심을 배웠습니다. 우주 만물보다 더 먼저 이신 분임을 배웠습니다. 지혜는 우주 만물의 창조에 참여한 것을 배웠습니다.

요한복음 1~2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처음은 시간이 만들어지기 이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역사 이전부터 이미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1절에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에서 하나님은 복수입니다. 또한 1:26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도 “우리가”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우주 만물과 인간의 창조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협력하여 이루어진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과 인간의 창조에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잠언의 지혜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솔로몬이 외친 지혜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구약의 솔로몬은 오실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는 가히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입니다. 그는 구약시대를 통틀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예수 그리스도는 솔로몬이 안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복음서가 있습니다. 이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솔로몬보다 더 풍성히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솔로몬보다 더 그리스도 예수를 더 분명하고, 자세하게 알고 있음에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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