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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잠언 4:1~9

잠언 4:1~9

 

잠언 4장은 3개의 당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비의 자식을 향한 간고한 당부가 4:1~9절에 나와 있습니다. 둘째는 4:10~19절에서 인생에는 두 개의 좁은 길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함을 4:20~27절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4장 첫 번째 당부인 아비의 말을 명심할 것에 대해 배워 보겠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아낍니다.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기를 바라는 부모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로써, 어떻게 자식을 가르쳐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입시 경재에, 치열한 생존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자식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 자식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이 자신을 어떻게 가르치고 훈육하였는지를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입을 빌어 다윗의 교육법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지혜로운 자의 어린 시절의 추억

I. When? 어린 시절부터(v1~3)

v3절을 보십시오. “내 어미의 눈앞에서 연약하고 사랑받는 자였노라.” 어머니는 자식을 특별히 아낍니다. 어린 유아기 시절은 특별히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때입니다.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왕자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서 제일 먼저 신앙 교육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흔히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영어의 조기 교육보다 몇 배, 아니 몇 백배 중요한 것은 신앙의 조기교육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잘 교육된 신앙관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혹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을 떠났다가도 언제 가는 어린 시절 배운 신앙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가 늦은 나이에 잠언과 전도서를 통해 신앙 교육을 강조한 것만 보아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어린 시절의 신앙 교육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너무 신앙 교육이 늦게 이루어지면, 신앙이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장성한 자식은 ‘왜 그렇게 해야 되는가?“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더 심한 경우에는 그들은 부모님의 말을 무시하고 불순종할 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로 배우게 되는 교훈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신앙 교육의 필요성입니다. 이 시대는 불신앙을 권하고 강요하는 시대입니다. 주위에 수많은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불신자 친구들에 둘러싸인 우리 자녀들은 불신자 친구들을 은연중에 따라 갈 위험성이 있습니다. 오늘 날의 학교 교육은 신앙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불신앙이 가득한 과목들을 학교에서 배웁니다. 학교 성적을 위해 너무나도 바쁜 일상에 내몰린 우리 자녀들은 그만큼 신앙적 탈선을 할 위험성이 많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요? 다윗은 솔로몬이 아주 어린 시기, 신앙이 바르게 인도되고 형성될 수 있는 시점부터 철저하게 신앙을 가르쳤음을 봅니다. 어린 시절에 잘 형성된 신앙은 나이가 들어도 잘 변하지 않습니다. 쉽게 스며들어 삶의 일부분이 됩니다.

 

II. Who? 아버지로부터(v4)

어린 솔로몬을 가르친 사람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었습니다. v4절에 “아버지도 나를 가르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써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에서도 그의 아들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서 6:4절에 자식의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책임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또 너희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늘날의 아버지는 너무도 바쁩니다. 이는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습니다. 부모가 자식의 교육에 책임을 질 수는 있는 시간과 기회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한 자식을 신앙적으로 가르칠 자신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주일 학교에 자식의 신앙 교육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이는 보조 수단일 뿐입니다. 결코 자식의 신앙 교육을 다른 것에 떠 넘겨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6:7 “너는 그것들을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네가 네 집에 앉을 때에든지, 길을 걸을 때든지, 누울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그것들을 말할 것이며” 신앙 교육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스며들 듯이 가르쳐져야 합니다. 학교나 교회가 모든 것을 다 공급해 줄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그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아버지가 몸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신앙을 배우는 자는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자녀의 신앙 교육의 책임을 기꺼이 영접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버지는 신앙에 있어 결코 잘못된 것을 자식에게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로부터 말씀을 배우고, 그의 아버지의 신앙적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보다 더 확실한 신앙 교육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까? 다윗과 같은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다윗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이는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살고자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의 자세를 자식들에게 먼저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시편 19:7~11절의 사람과 동일한 신앙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자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은 자식들에게 잘 박힌 못과 같을 것입니다.

 

III. What? 지혜를(v5~9)

v5~6절에 “얻으라”, “잊지 말라” “버리지 말라” 단어가 강조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솔로몬의 간절한 마음, 애틋한 마음,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이 잘 들어나 있습니다. 아마도 다윗이 솔로몬을 향해 이와 같은 심정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향해 그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자식에게 가르쳐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혜입니다. “지혜는 으뜸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으로 명철을 얻을지니라.” 다윗은 돈과 명예와 같은 세상적인 성공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먼저 지혜를 얻도록 가르쳤습니다. 솔로몬이 역대하 1:7~11절에 다른 무엇보다 지혜를 구한 것은 우연히 아닙니다. 이는 그의 아버지 다윗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혜를 얻는 자로써, 그 자식에게 먼저 지혜를 구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혜가 왜 으뜸이 됩니까? 지혜를 높이는 자는 지혜가 그 사람을 높여 줍니다. 지혜를 품는 자는 지혜가 그 사람을 존귀의 길로 인도하여 줍니다. 또한 지혜를 가진 자는 은혜의 장식을 주며 영광의 관을 네게 건네줍니다. 그리하면 삶의 햇수가 길게 됩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지혜를 예수님으로 해석합니다. 지혜를 예수님으로 대치할 때, 우리는 지혜가 다른 무엇보다 더 으뜸인 것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존재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높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 그의 삶은 구원 받게 됩니다. 예수님과의 혼인 잔치에 존귀한 자리로 초청받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산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영광의 관입니다. 또한 영원한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이보다 더 으뜸인 것은 없습니다. 생명의 부귀영화가 아무리 좋다한들 이것과 비교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가장 좋은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으뜸인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는 지혜이며,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의 아버지는 세상적인 성공을 가르칩니다. 자녀들은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으로 돌아다니며 몸이 피곤합니다. 쉬는 시간은 컴퓨터와 핸드폰을 붙잡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이런 모습이 안쓰러워 용인을 합니다. 그들이 하루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우리 자녀들에게 턱없이 부족합니다. 청소년이 된 자녀들은 이제 부모의 말에 잘 순종하지 않습니다. 먼저 신앙을 가르쳐야 할 나 자신부터 자신이 없습니다. 오늘날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이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교회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예수님을 가르치고,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식을 위해 간절한 심정으로 권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가장인 아버지가 먼저 이런 삶을 살 때, 온 가족이 순종하여 따라 올 것입니다. 자녀들이 언제 가는 부모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죄악의 길에서 돌이킬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솔로몬과 같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자신의 자식에게 글을 쓰는 것같이, 우리 자녀들이 그들의 자녀에게 그들이 배운 신앙을 잘 가르칠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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