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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9:38~50

마가복음 9:38~50

 

우리는 지난 시간에 참 된 낮아짐, 겸손에 대해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신 후에, 제자들을 불러 그들이 노상에서 어떤 논쟁을 하였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누구 큰 자인가?“ 논쟁한 사실에 대해 이미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초로 거짓 낮아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을 듣고 유월절 마지막 만찬에서 말석에 앉은 베드로가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진 않는 사실을 통해 상황과 지위가 바뀐다고 해서 진정으로 낮아져 섬기는 것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진정한 섬기는 기꺼이, 자발적으로, 마음으로 우러나 섬기는 것임을 “받아들이며”(마가복음 9장 37절) 단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떻게 이런 낮아지는 삶을 살 수 있는 지에 대한 방법으로,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18:3 “회심”이라는 단어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이 “회심”이라는 단어는 신학적으로 중요성을 가진 단어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생기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낮아짐과 섬김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날마다 자신의 죄악 된 생각과 행동을 인식하며, 기도하며, 고치려고 노력하는 삶을 통해 가능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도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편협한 생각을 버리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힘써야 할 것이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성숙하게 동역하는 제자의 삶

제자들의 편협한 생각

38.요한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는데 그가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나이다. 그가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그를 막았나이다, 하거늘 

“응답하여”란 의미는 질문에 “대답하였다“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받아 들이는 것“에 가르쳤습니다. 특별히 이 말씀이 요한의 내면을 깊이 역사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날 그가 행한 행동에 대해 돌아보게 한 것 같습니다. 요한이 했던 일은 과거 그가 어떤 사람이 마귀를 내어쫒는 것을 보고, 그가 예수님의 무리를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금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내쫒는 것을 본” 사실은 과거시제입니다. 첫 번째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나이다” 과거형이며, “금한” 시간도 과거입니다. 그리고 마귀를 요한의 말하는 현재의 시점에도 여전히 마귀를 내어 쫒고 있으며, 예수님의 무리를 따르지 않고 있음을 현재형 시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요약해보면 요한이 어떤 사람이 마귀 내어쫒는 것을 과거의 어떤 시점에 보았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지만, 여전히 따르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가 하는 사역을 금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어떤 사람은 주석가들에 의하면 아마도 세례 요한의 제자들 중의 하나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메시아의 이름으로” 마귀를 내어쫒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를 아마 요한이 둘씩 짝지어 전도 여행을 할 때 목격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그가 선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일반적인 사람이 가진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사람은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분명히 생각이 틀린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배격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바리새인들의 주장처럼 예수님이 바알세붑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쫒아낸다고 주장하면, 가감하게 이에 대해 경고하게 금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어떤 사람”의 행위는 예수님께 반대되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름”과 “틀림”에 대해 바른 분별력을 가져야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의 생각을 교정함

39.예수님께서 이르시되, 그를 막지 말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서 쉽사리 나를 비방할 사람이 없나니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 편이니라.

 

예수님은 요한의 편협한 생각을 교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 11:23절 말씀과 대조를 이루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와 함께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그러나 이 말씀의 배경은 바알세붑의 힘을 빌려 마귀를 내어쫒는다고 비방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행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선한 행위를 모독하며 비방하며, 여론을 호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악한 말로 예수님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들은 결코 예수님의 편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보문의 이 사람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따르지 않았을 뿐이지,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자였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을 인정하고 있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실제적으로 열 두 사도, 칠십 인의 제자, 무리 들 중에 들지 않더라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산다면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것에 대한 해석을 편협하게 한정된 무리에 국한하지 않으셨습니다.

 

예를 통한 가르침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으므로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을 주면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자기 보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그에게 더 나으니라.

 

예수님 당시 갈릴리와 유대 지방의 온도는 상당히 높았을 것입니다.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시는 예수님의 일행에게 물을 대접하는 행위는 예수님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을 받아들이는 행동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착한 행실은 보상을 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고린도후서 5:10)

예수님 당시 로마 군인들은 반란자들을 여인들이 사용하던 절구를 목에 걸어 바다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자의 사역을 못하게 하는 자는 이와 같을 것이라고 강력한 경고를 하시고 계십니다. 여기서 실족이라는 의미는 “바른 생각과 행동”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을 열 두 제자로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칠십 명의 제자로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가 다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지 편협한 생각으로, 자신의 무리 안에 있지 않다고 해서, 예수님을 위한 사역을 막는다면 이는 예수님이 보실 때, 너무도 중한 범죄였습니다.

 

민수기 11:27~29에서의 예

모세는 한 때 많은 백성들을 인도하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불평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모세가 진 짐을 70인의 장로들이 나누어지고자 하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70인 장로들을 성막 앞으로 소집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모세의 지시대로 회막 앞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성막에 오지 않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 앞에 모인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진에 남아 있던 두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임했습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는 이 광경을 알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모세에게 달려가서 성막에 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임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세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신을 받는 것을 금하라고 요청했습니다(민 11:27-29). 그 때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위해 시기하느냐? {주}의 온 백성이 대언자가 되어 {주}께서 그들 위에 자신의 영을 두시기를 원하노라! "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신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진 짐을 나누어지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신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들이 하나님의 신을 받은 것을 알고 기뻐했습니다. 모세는 성막에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사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음에 기뻐했습니다. 모세의 이 생각은 예수님의 생각과 동일한 것입니다. 결코 편협한 생각이 아닙니다. 자신을 따르는 무리만을 국한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인정하며, 그들의 사역을 인정하며, 오히려 격력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편협함

어떤 사람들은 자기 교단과 자기 교회만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다른 교파나 다른 교회 사람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형제들을 실족하게 하는 악한 일입니다. 이러한 실수는 예수님을 가까운 곳에서 모시는 사람들이 더 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운 곳에서 모시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기 쉽습니다. 특히 이러한 실수는 전통적인 교단이나 교회에 속한 사람이 범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예수님을 섬기는 모든 형제들을 인정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만심에 빠져서 자신과 다른 교파나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로 인해 신실한 형제들이 시험에 들거나 실족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코 한 영혼이라도 잃어버리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거부합니다. 물론 세상에서 남을 실족케 하는 일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타적이고 편협한 마음으로 남을 무시하고 이로 인해 형제를 실족하게 만드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월 의식에 빠져서 형제를 무시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형제를 용납하고 섬길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달라고 성령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노력

만일 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불구가 되어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절뚝거리며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예수님은 편협한 생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의 사역을 못하게 하는 일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신 후에, 강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손과 발과 눈을 언급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죄를 짓는 감각 기관입니다. 형제를 무시하거나 낙심케 하는 도도구로써 손과 발과 눈을 드셨습니다.

 

또한 여기에 쓰인 가정법은 불가능을 의미하는 가정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며”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은 없습니다. 단지 화자는 뒤 이어 올 말에 대한 강조로써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의 구원은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불가능한 사실에 대한 가정의 표현을 사용하고 계신 의도는 그만큼 이 일이 중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은 그 만큼 절심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결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의 사역을 금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맡겨들어야 할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21:21~22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이 사람은 무엇을 하리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머물 것을 내가 원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어떤 교회에 성경의 무오설의 교리를 놓고 의견이 충돌하였습니다. 한 쪽은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른 한 쪽은 성경에 오류가 많이 있지만, 이는 우리의 구원에 방해를 줄 정도가 아닌 경미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어느 쪽도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성경의 오류를 주장하는 쪽이 다른 쪽의 사역을 막고자 했습니다. 교회에서 성경의 무오설을 주장하는 분들을 다 쫒아내고, 그들을 이단이라는 멍에로 정죄하였습니다. 더 이상 신학교에서 성경 무오설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신학교 지원을 끊고 더 이상 신학교에 학생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세상 법정 고소해 모든 재산을 압류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런 일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작은 자”의 사역이 방해 받지 않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사람의 편협한 생각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는 사람마다 불로 절여질 것이요, 희생물마다 소금으로 절여질 것이기 때문이라.

 레위기 2:13 “너는 네 음식 헌물의 모든 봉헌물에 소금을 칠 것이니라. 너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 네 음식 헌물에서 빠지지 않게 할지니 너는 네 모든 헌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라” 희생물마다 소금으로 절여집니다. 이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every sacrifice shall be salted with salt. 여기에서 ” with fire“과 ”with salt“는 ”자기 부인“,”자기 절제“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비록 제자들 안에서도 화목하지 못하고, 제자들 밖에서도 화목하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소금으로 절여질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소망이며, 언약입니다. 이 예수님의 소망과 언약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서로가 화목하여 주님의 역사를 섬겼습니다. 사도행전 3:1 ”이제 아홉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으로 올라갈 때에“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제 짠맛을 잃으면 너희가 무엇으로 그것의 맛을 내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34절부터 계속된 이야기는 50절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 쫓는 것을 보고 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 일을 한 요한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배타적인 행동으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면, 그가 책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시기와 배타심을 과감한 결단으로 다스릴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다 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서로 화목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것은 다툼이 아니라 화목입니다. 이는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툼과 시기를 조장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은 이런 가치관과 다르게 거슬려 사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거룩한 삶이 화목을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편협한 제자들의 생각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과 모세를 통해 성숙한 동역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화목하지 못합니다.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주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다른 영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사실은 우리 주님께서 불과 소금으로 우리를 소금과 같이 절여 주실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신 후에, 우리를 성숙한 동역의 사람을 빚여 주실 소망과 언약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의 언약과 소망이 부족한 우리들로 인해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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