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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9:14~29

본문: 마가복음 9:14~29

 

우리는 지난 시간에 제자들에게 변화 된 모습을 보여준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돕는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영적으로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포기치 않으시고, 초대 교회의 기둥으로 키우시는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 또한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연약한 제자들을 돕는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할 제자들이 어떻게 믿음의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원칙을 우리 삶에 잘 적용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삶의 부딪히는 영적인 문제를 이 원칙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믿음의 능력을 행하는 방법

I.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v14~27)

예수님께서 변화된 모습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여 주고 내려 오셨을 때, 나머지 제자들은 서기관과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논쟁”은 “토론”입니다. 단순한 토론이 아니라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책잡기 위해 공격하는 서기관들로부터 예수님과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토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신 것을 본 무리는 많이 놀랐습니다. 아마 이는 변화된 모습의 영광이 아직도 예수님의 모습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 추측이 됩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내려온 모세를 백성들을 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의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바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 곳에서 하루나 이틀을 더 거기 계셨었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이 된 모습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모습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논쟁하고 있는 지를 물으셨습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이차적으로는 서기관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서기관들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없을 때, 예수님을 대신합니다. 예수님이 없을 때, 악한 영이 들린 소년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서기관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서기관들은 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공격하는 악한 의도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서기관들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무리 중의 한 사람이 나와 예수님께 일의 자초지종을 고했습니다. 이 사람은 악한 마귀 들린 아버지였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신의 아이를 고치고자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들의 원인은 악한 영이 그 영혼을 지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 아들은 아무 데나 데려가서 쥐어뜯으면 그가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또 몸이 파리해졌습니다. 이는 그 아비가 인간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인생 문제였습니다. 이 아버지가 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고 부탁했지만, 제자들은 실패를 하였습니다.

 

이 아버지의 대답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요? 언제까지 너희를 용납하리요?”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를 책망하셨습니다. 첫째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요?” 지난 3년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성장을 촉구하셨습니다.

“언제까지 너희를 용납하리요” 이는 서기관들을 향한 책망입니다. 이 서기관들은 특별히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유대교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의 차이점을 찾아내어 보고하는 임무를 맡고 파견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직접 목격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들을 본 자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제자들의 실패를 통해 예수님의 능력을 부인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유도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그들은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선생님께서 무엇이라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도와주소서, 하매” 가정문에는 실현 가능한 것에 대한 가정과 실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사용한 가정은 실현 불가능한 것을 사용할 때의 가정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아버지는 지금 불가능한 것을 가정할 때의 가정문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가 이제는 예수님의 능력도 믿지 못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의 계속되는 실패에 아이가 고쳐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아이의 아버지에게 믿음을 가지도록 도와주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처럼 가정문으로 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용한 가정문은 실현 가능한 가정문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반드시 명확한 사실로서 그 일이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하는 가정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믿음을 행하기 위해 나가야 자의 바른 믿음의 상태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가 도움을 요청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계속적인 실패가 하나님의 능력 자체를 의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영을 쫒아내지 못한 것은 제자들의 문제이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영적인 세계와 물질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이십니다. 영적인 세계와 물질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는 반드시 이런 마음의 상태를 가져야 합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둡게 보이고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이런 마음의 상태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 아이의 아버지가 곧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불신을 눈물로 회개하며 예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런 자세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바른 자세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바른 믿음의 상태를 가질 때, 예수님께서는 아이로부터 악한 영을 쫒아내셨습니다. 아이에게 있던 악한 영은 가만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악한 영은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찢고 나갔습니다. 심한 반항을 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충격으로 아이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아이는 일어났습니다. 이제 아이는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II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v28~29)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예수님께 은밀히 물었습니다. “은밀히”란 의미는 “개인적으로”, “사적으로”의 의미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왜 자신들이 예수님처럼 악한 영을 쫒아내지 못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과거 예수님이 보내신 전도 여행에서 악한 마귀들을 쫒아낸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왜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실패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실패에서 원인을 찾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을 책망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원원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런 종류는 오직 기도와 금식을 통해서만 나갈 수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실패의 원인을 “기도와 금식”에서 찾으셨습니다. 그러면 “기도와 금식”을 하면 자동적으로 예수님처럼 믿음을 행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한 의도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과거 악한 영들을 쫒아낸 경험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능력을 자신들이 받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믿었습니다. 결국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행하는 능력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그런 능력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실패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 비록 성공하였다 할지라도, 오늘은 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기도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합니다. 제자들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 아들의 처지를 알았다면, 먼저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에게 두신 뜻은 무엇인 지 물어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들린 아들을 고치시기를 원하시는 지를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심을 확신했다면 이를 위해 기도하고 믿어야 했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 주실 줄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이것이 기도와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무엇이야 하는 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결코 우리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보여 주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씨름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금식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이차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과정에서도 기도와 금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이 “기도와 금식”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질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음을 의지하고 묻고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종류”입니다. “이런 종류”는 어떤 종류를 말하는 것입니까? 악한 영을 내어쫒는 일에만 국한됩니까? 아니면 교회와 선교 전도와 같은 특수한 일에만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 삶의 전 영역에 적용될 수 있습니까?

 

“이와 종류“는 영적인 싸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일상이 이런 영적인 싸움 가운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택한 성도들을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알던 모르던 하나님은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와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와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면 둘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는 우리를 통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더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을 이전보다 더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이 더욱더 강화 됩니다.

 

우리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에 대해 배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첫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돕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순종한 하인들, 그리고 제자들이었습니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 강화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자에게는 이런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알던 모르던 이 땅에서 이루어 질 것이지만, 기도와 금식을 통해 날마다의 삶에서 기적을 경험하는 자는 풍성한 영적인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악한 마귀 들린 아이를 고치시는 예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에게 영적인 일을 행할 때는 기도와 금식이 필요함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의 경험적 믿음은 강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을 보고 찬양하며, 그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영적인 축복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임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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