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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8:34

 본문: 마가복음 8:34

 

지난 시간 제자들의 기독교관이 변화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시니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의미는 본질상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교는 유일신을 믿습니다. 이런 믿음 하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믿는다는 것은 혁명적인 변화였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란 의미는 구약의 메시아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메시야에 대한 생각은 당시 유대 사람들과 별반 틀리지 않았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생각했습니다. 메시아가 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유대 백성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싸울 것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누가 큰가?”에 논쟁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0:20~28 세배대의 아이들의 어머니, 예수님의 하나님의 왕국의 좌우편 자리를 요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6b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 이런 사건들을 통해 제자들의 메시아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이 땅에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야 사상에 중대한 결함을 없애주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그리고 삼일 만의 부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 하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메시야가 죽을 수 있다”, “메시야가 죽어야 일이 다 끝날 수 있다”란 생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후대의 메시야 사상 중에는 메시야가 죽더라도 그가 땅에 온 본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메시야 하나가 대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탈무드에서는 “요셉의 아들 메시야‘ 혹은 ’다윗의 아들 메시야”라고 이렇게 둘로 나와 있고, 사해사본에서는 “아론계의 메시야” 또 “다윗계의 메시야” 이렇게 둘인 나타나납니다. 메시아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앞장서서 가다가 지독하게 치열한 싸움에서 죽더라도 메시야가 원래 땅 위에 온 본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뒤에 대기하고 있던 메시야가 그 일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야 사상이었습니다. 결코 메시아가 죽을 수도 없었고, 죽음으로 그의 사명을 끝낼 수도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8:31절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사흘 만의 부활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을 만류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베드로를 보고 꾸짖었습니다. 베드로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을 만류하였습니다. 첫째는 베드로는 메시아인 예수님께서 죽어야 됨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신명기 22:22~23절에 보면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였습니다. 자신이 지난 3년 동안 믿고 따라던 예수님이 하나님의 저주 받아 죽어야 하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생각을 교정하여 주셨습니다. 영화롭게 변한 모습을 보여 주시므로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교정해 주시는 부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제목은

 

제자의 삶

 

34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함께 불러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PART I 자기를 부인하고

“부인하다”란 동사의 그리스어는 주어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부인하는 사람이 강조가 되어 있습니다. 이는 부인하는 사람이 주도적으로 이를 감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부인하는 사람이 부인해야 할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부인하다“는 강한 의무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부인해야 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인해야 할 내용을 각자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반드시 부인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해라“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어떤 보상과 기대를 가졌습니다. 저마다 하나님의 왕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자기 계획, 자기 소원, 자기 야망이 있을 때,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보상 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인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0:17~22절에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21절에서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한 후,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22절에 부자 청년은 그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습니다. 부자 청년은 자기 생각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부인해야 할 것은 재물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각자 각자가 부인해야 할 내용들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 나의 꿈, 인간적인 야망, 예수님 안에서 이루고자 하는 나의 꿈들을 부인해야 합니다. 제자로서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부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자의 삶을 살고자 결단한 자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PART II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제자들이 생각한 십자가

제자들은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장로들과 수제사자들과 서기관에게 버림을 받고, 심한 매질을 당한 후에 십자가에 죽어야 할 것으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들 또한 심한 매질을 당한 후에 예수님처럼 죽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셔야 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그들과는 다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주시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이런 일을 감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까지 십자가에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는 상징

십자가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여기서 십자가는 속죄를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여기서 십자가는 옛사람을 제거하는 삶, 성화의 교리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의 의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있는 살면서 가지게 되는 건강 문제나 여러 인생 문제를 십자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는 믿지 않는 불신자들도 인생에서 겪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 문제를 십자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건강 문제, 마귀 들린 자녀 문제로 나오는 자들을 내게로 오라고 하셨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가복음 8:35절에는 “나와 내 복음으로 인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십자가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살아갈 때, 오는 어려움과 환란과 핍박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도들의 십자가, 나의 십자가

(1)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은 이 땅에 온 백성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형은 당시 유대를 압제했던 시리아와 로마에 의해 실행된 사형 제도였습니다. 이들은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십자가 죽여 길에 세워 두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공포감을 유발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그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 세상의 죄를 위해 죽은 것입니다.

 

(2) 사도들의 십자가

제자들에게의 사명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예수님께서 명령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십자가였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 제자들은 순교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는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3) 나의 십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할 때, 그것은 경건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2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터이나” 골로새서 3:22 “종들아, 육체에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노예는 주인의 눈을 피해 요령을 피울 수 있습니다. 불의한 이익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딴 생각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 노예는 다른 노예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로 인해 수고와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악과 어둠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을 살고자 할 때, 오는 손해와 핍박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의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있는 십자가는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모두가 목회자 일 수 없습니다. 모두가 선교사 일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순교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에게 우리 주님이 주신 사명, 십자가를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이 십자가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는 자원하는 맘으로 지는 것

사도행전 4:18~19 “그들을 불러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결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니라.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눈앞에서 옳은지 너희가 판단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 십자가를 자원하는 맘으로 지었습니다. 거기에 결코 불평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회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삶에는 영광도 기쁨도 보상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PART III 나를 따를지니라

“따를지니라”는 앞서 두 단어, “부인하다”, “지다”와는 다른 현재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계속적인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한 번 십자가를 진 후, 십자가를지지 않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9:23절에는 이를 날마다 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날마다 이 십자가를 질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날마다 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지를 배웠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야망이 있을 때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버려져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부인하는 삶입니다. 둘째, 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삶이 십자가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는 매일 지고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날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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