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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8:27~30

본문: 마가복음 8:27~30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을 배웠습니다. 제자들은 빵을 가지고 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천 명을 먹이신 후 남은 일곱 바구니를 가지고 오지 않는 것에 대한 책망으로 알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마음이 아직도 굳어 있느냐?”라고 제자들의 깨닫지 못함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제껏 그들이 본 것, 들은 것을 다 나열하고 조립해서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들이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질문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실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제자도를 가르칠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비로소 언급하시며,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실 것입니다. 이는 상당히 깊고 수준이 높은 가르침들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생각이 필요합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제자들이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자들의 생각의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

가이랴 빌립보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나가서 가이사라 빌립보의 고을들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벳새다에서 북쪽으로 25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의 여러 마을로 가셨습니다. 이곳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인 헬몬산이 있었습니다. 이 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이 지역 전체를 적시면서 요단강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이 물로 인해서 이 지역은 매우 땅이 비옥했으며 경치도 장관이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헤롯에게 준 도시였습니다. 헤롯은 이에 감사하기 위해 이곳에 황제의 이름으로 된 신전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이곳을 주전 3년에 자기 아들인 빌립에게 물려주었습니다. 헤롯의 아들 빌립은 이곳을 개발하였으며 이곳에 자기 저택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도시를 로마 황제의 이름인 시이저, 즉 가이사라는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중해 해안에는 "가이사랴"라는 이름을 가진 항구도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헤롯 빌립은 가이사랴 항구 도시와 이 도시를 구별하기 위해서 이 도시를 자기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이 도시의 이름은 "빌립의 영토에 있는 가이사랴"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님은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질문하셨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16:13절에서는 “사람의 아들” 누구라고 하느냐? 물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이는 다니엘서 7:13~14절에 첫 등장합니다. “내가 밤의 환상들 속에서 보는데, 보라,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들과 함께 와서 [옛적부터 계신 이]에게 나아가니 그들이 그를 그분 앞에 가까이 데려가니라. 그분께서 그에게 통치와 영광과 왕국을 주시니 이것은 모든 백성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 그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그의 통치는 영존하는 통치요, 없어지지 아니할 통치며 그의 왕국은 멸망하지 아니할 왕국이라.” 여기서 사람의 아들은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메시아는 통치와 영광과 왕국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유대인들에게는 친숙한 표현이었습니다.

마가복음 2:7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들을 용서하는 권능을 가진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마비 병 환자에게 이르시되,)” 하나님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람의 아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되십니다.

 

또 다른 “사람의 아들”이라는 의미는 인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93번이나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시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었을 때는 이런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모두를 묻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이에 대한 제자들의 대답이이 어떠합니까?

 

(1) 헤롯으로 대표되는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활한 세례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인 후에 계속해서 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으며, 그는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자기를 심판하기 위해서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2)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온 엘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말라기는 메시아 시대에 오면 엘리야가 먼저 와서 그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이 바로 말라기가 예언했던 엘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3)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로 생각했습니다(28). 이스라엘에는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표적을 행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일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들을 보고 들으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해 보내주신 선지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세 가지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대답에 동의하시지 않은 것은 결국 그 대답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생각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었습니다. 여기서 “그러나”라는 단어는 역접입니다. 예수님은 이 단어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제자들의 생각은 어떠하냐고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사람들의 생각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도 세상의 의견에 동의하느냐? 라고 묻고 계십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세상의 관습과 문화에서 결코 자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유대 문화에서 한 사람은 전체를 대표합니다. 베드로 한 사람이 말했지만, 실상은 제자들 모두가 이 베드로의 말에 동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세상이 어떻게 말할지라도 자신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말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가 어떻게 말할지라도, 자신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강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제자들의 확고한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란 사실에는 추호도 망설임이 없습니다.

 

제자들의 변화된 생각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16: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리스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란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도 메시야로 생각했습니다.

(1)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는 세례 요한을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을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35~36 “또 다음 날 요한이 자기 제자들 중의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거니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하니” 이 안드레는 41절에 그의 형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2) “그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니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3) 또한 예수님을 만난 나다나엘은 요한복음 1:49절에서 “랍비여, 선생님은 한나미의 아들이시오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 하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날 때,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앎과 지금 베드로가 고백할 때의 차이는 너무도 다릅니다. 제자들은 이미 많은 사건들과 가르침을 예수님께 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이 변화된 것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 33절 이하에서 제자들은 누가 큰가? 논쟁을 합니다. 급기야 마가복음 10장 35절 이하에서는 요한과 야고보가 어머니를 동원해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요구합니다. 사도행전 1:6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 질문하였습니다. 이상을 볼 때, 제자들의 메시야관은 여전히 유대인들의 메시아 관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 건설될 메시아 왕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생각이었습니다. 여전히 유대인들이 가진 메시야관과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생각이 변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6:16절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본질상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0“ 30~31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다시 그분을 치려 하거늘“ 예수님은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본질상 같은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한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로 알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종교는 유일신 종교입니다. 결코 하나님이 둘 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생각에 깊이 박힌 그들은 아무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신적인 권능을 보이셨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을 바알세붑의 힘을 빌려다고 폄하했습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유일신 사상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두 사람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생각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을 많은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 믿음이 정말 놀라운 변화요, 훈련의 전화점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

제자들의 생각이 변화는 예수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마태복음 16:1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복 있는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깨닫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자는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힘으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자들이 어떻게 그들의 생각이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질문이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읽는다고 하더라도 다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합니다.

 

우리 삶에 적용 및 결론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 심도 깊은 제자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로부터 한 50일 이후의 일이고, 유월절 까지는 7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가 자태를 들어내기 까지는 7~8개월의 시간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제자들의 생각이 서서히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약 교회의 기둥들로서 그들이 이제 성장해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장해야 합니다. 더 높은 수준의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듣고 깨닫지 않고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 신앙생활은 기복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성장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이를 가능케 합니다.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또한 우리에게는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실 때에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26 “그러나 내가 [아버지]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요,” 또한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실 때에 말씀을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6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그리고 말씀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성장하게 됩니다. 더 깊은 신앙훈련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일에 준비된 자로 빚어져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이라는 은혜의 방편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바르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을 때, 사람의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이 영적으로 바뀔 때, 우리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복 된 은혜가 온 교회에 충만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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