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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8:14~21

말씀: 마가복음 8:14~21

 

지난 시간에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을 통해 시대를 분별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지를 배웠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치적 메시아가 되셔서, 백성들의 선봉에서 그들을 압제하는 세력들을 물리치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보여주신 시대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먼저 생각해야 했습니다. 마태복음 11:5“곧 눈먼 자들이 시력을 받으며 다리 저는 자들이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정결하게 되며 귀먹은 자들이 들으며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하라”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임을 물었을 때,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사역의 성취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절에서 제자들은 종말의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쟁과 자연 재해,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는 것, 배신과 불법의 성행,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거짓 교사들, 이에 미혹 받는 사람들, 유대인들의 민족적 핍박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이 주시는 시대의 표적을 잘 관찰하고 성경에 비추어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종말의 때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바른 표적을 구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하셨습니다. 둘씩 짝지어 전도 여행을 보내셨습니다. 이를 통해 서로 동역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교회를 개척하는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폭풍이 부는 바다를 건너오신 사건과 오천 명, 사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깊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깊이 배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지금까지의 훈련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의 훈련으로 제자들을 인도하시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제자도에 대해 가르치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변화된 영화로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야 죽어야 함을 가르치시고 또한 부활하실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더 깊고 수준 높은 제자 훈련의 단계를 넘어가기 전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예수님은 이 마지막 단계에서 예수님은 영적인 깨달음의 중요성을 제자들에게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이 영적인 눈을 뜨고, 영적인 귀가 열리기를 원하십니다. 듣고 본 것을 깊이 생각하고 깨닫는 제자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듣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이 영적으로 얼마나 무감감한 자인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보고 듣고 깨닫는 자가 되라

PART I 세상적인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

14~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이 빵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배에는 빵 한 개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사천 명을 먹이시고 남은 일곱 바구니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고 조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

바리새인들과 누룩과 헤롯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16장 6절에서는 헤롯의 누룩 대신에 사두개인의 누룩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한 자들은 바리새인파와 사두개파였습니다. 사두개파는 당시 종교적으로 실권을 잡고 있던 대제사장과 수제자들 그룹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두개파라고 불렸지만, 실상은 제사장 사독의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민족을 통치하는 지배자들에게 돈을 주고 제사장직을 매관매직한 자들이었습니다.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로서 갈릴리와 베뢰아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본 부인을 내쫒고 그의 형제의 아내를 빼앗아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고 죽인 자였습니다. 그는 처세술에 능하였고, 예수님은 그를 “여우”라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사두개인의 누룩과 헬롯의 누룩은 세속주의입니다. 이 땅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와 정치의 힘을 빌려 자신의 부귀영화를 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은 경건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세속주의를 경계했습니다. 철저히 율법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 많은 울타리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한 정신은 사라지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과 안 지키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장로의 전통을 따라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고르반”이라는 예를 들어 사람이 만든 장로의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부모를 공경하라“ 계명을 어기는 그들의 위선적인 삶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두개인과 헤롯의 세속주의를 경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서는 안 됩니다. 끝임 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거슬려 살아야 합니다. 사탄은 이를 미끼로 성도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전략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는 신앙생활에서 늘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방편들을 가지고 열심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본질이 빠진다면 형식만 남게 될 것입니다. 기도한 시간이 중요해지고, 성경을 얼마나 읽었는지가, 전도한 숫자가 중요해지며 교회의 성도의 수와 교회의 크기가 중요해집니다. 가진 것이 자랑이 되고,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는 이런 누룩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2) 주의하고 조심하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고 조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잘 관찰하라는 의미입니다. 주의 깊게 육체적인 눈과 귀로 잘 보고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영적인 결과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육체적인 관찰이 영적인 영역에서 해석되어지고 그 교훈이 삶 속에서 나타나게 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을 그리스어로 반복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시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단 한번 지나가는 말로 하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진진하게 목적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자기들끼리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우리에게 빵이 없기 때문이로다, 하거늘” 여기서 “의논하여”의 시제도 계속적인 반복을 나타냅니다. 그 의미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한 사람이 또 다른 혼란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더 깊은 혼란으로 빠져 들어감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를 정리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거듭된 질문 앞에 답을 찾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혼란에 혼란을 거듭한 가운데 “누룩”이라는 단어에만 집착하다 빵을 안 가져 왔다는 엉뚱한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왜 이렇게 예수님의 질문에 사오정 같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그들의 생각이 여전히 먹는 염려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염려가 예수님의 말씀을 빵 문제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관심과 목적대로 해석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선교에 관심이 많은 분은 선교의 관점에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편에서 위로 받고 능력을 얻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본래 의도가 잘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누룩 앞에 있는 바리새인과 헤롯이라는 단어를 같이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단어들은 듣지 않고 자신들이 듣고 싶은 단어에만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답을 도출해 내고 있습니다.

 

PART II 제자들의 영적인 나태를 책망하시는 예수님

제자들이 전혀 영적인 깨달음에 진보가 없음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영적인 안목, 깨달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1) 알지 못하며

이 단어는 어떤 답을 찾기 위해 정신적 노력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이미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영적인 것을 보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당연히 영적인 사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적인 것을 보고 들었다면, 그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왜 그럴까? 생각해 보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2) 깨닫지 못하느냐?

이 단어는 “함께”를 의미하는 단어와 “놓다”의 두 단어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두 단어가 합성되어 “결합하다“, ”합치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많은 사건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많은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런 사건들과 가르침을 다 연결해보라는 의미입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연결해보고, 합쳐보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라는 의미입니다.

 

(3) 아직 너희 마음이 굳어 있느냐?

“굳어 있다”는 의미는 돌과 같이 단단히 굳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영적인 의미로 “깨달음이 둔하다”, “깨달음이 민감하지 않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 쓰인 시제는 다른 시제들과는 다르게 완료시제가 사용되었습니다. 완료시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이 시제를 통해 제자들이 과거부터 현재 지금 이 순간까지 영적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진보가 없는 상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수많은 말씀과 기적의 사건들을 보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처럼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이해하지 못하면 답답해 “머리가 돌이냐?” 라는 말을 합니다. 이는 답답함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답답함을 동일하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직 너희 마음이 돌처럼 굳어 있느냐?”라는 표현을 하시면서, 제자들의 영적 무지함을 질책하시고, 영적 깨달음을 가지도록 촉구하셨습니다.

 

PART III 제자들의 영적 깨달음을 촉구하시는 예수님

18~20절에서 예수님은 이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예로 드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동사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느냐?

 

(2)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3) 기억하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이 말씀들을 하신 후에 결론적으로 21절에서

 

(4) 깨닫지 못하느냐?

 

깨닫는 것은 “함께”와 “놓다”의 합성어로 “조립하다”, “합치다”라는 의미를 가짐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그리고 머리로 기억하는 것들 모두를 다 합쳐서 생각해보라고 제자들에게 촉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16:11절 예수님의 의도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가르침을 주의해야 함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러자 마태복음 12절에서 제자들이 깨닫게 됩니다. “그제야 그들이 그분께서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리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명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제자들은 이제 영적인 깨달음을 가져야 할 시기입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올라가야 하는 시기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수업을 들어야 하는 시기에 수준이 여전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머물러 있다면 보는 이가 너무 답답할 것입니다. 제자도를 가르쳐야 할 시기인데 제자들은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여 영적인 진보가 없는 제자들을 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너무도 답답했을 것입니다.

 

이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가 오늘 우리들의 영적인 상태일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여러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매여 예수님께서 아무리 말씀해도 말씀의 본의는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받아들인다면 영적인 깨달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영적인 진보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마치 빛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 굴절되듯이 주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씀을 받고 행동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둔한 자가 됩니다. 영적으로 이해력이 돌과 같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능력을 사용해서 생각하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에게 임한 영적 경험들을 합쳐서 바른 영적인 결론에 도달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날마다 알아 가야 합니다. 영적으로 깊어져야 합니다. 영적인 실력이 자라가야 합니다. 어린 아기가 먹는 우유가 아닌 장성한 사람이 먹는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온 교회에 임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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