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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7:24~30

본문: 마가복음 7:24~30

 

지난 시간에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배웠습니다. 게네사렛 지방에서 예수님이 기적들을 베푸신 일들이 예루살렘에까지 알려졌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대적할 꼬투리를 잡고자 파견되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 먹는 것을 유대인의 정결례에 위반된다고 문제를 삼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에게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시고, 고르반의 예를 들어 그들의 위선을 들어내셨습니다. 참으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씻지 않고 먹는 음식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이 죄의 결과로 나오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피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따라 올 수 없는 곳으로 가서 제자들을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지역에서도 예수님과 일행은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곧 부정한 영이 들린 어린 딸을 둔 어떤 여자가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여자는 어린 딸의 인생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바른 믿음을 가지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5:28절에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큰 믿음의 의미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큰 믿음은 나와 관계없는 것이 아닙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특별한 사람만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예수님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큰 믿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믿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자신이 큰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줄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도 큰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가진 큰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큰 믿음으로 칭찬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큰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큰 믿음이 정리되고 인식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큰 믿음

PART I 예수님께 나오는 데 장애가 되었던 세 가지 요소들

(1) 이방인의 땅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피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시돈이 역사의 무대에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득히 먼 옛날 노아 홍수가 있고 난 직후였다. 창세기 기자는 시돈을 노아의 아들 가나안(함의 아들)의 장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창 10:15).

구약성경에서는 아합 왕의 악한 왕비 이세벨의 고향입니다. 이사벨의 아버지의 이름은 엣 바알인데, 이는 바알에 충실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사벨이 이스라엘에서 바알 신을 믿는 신앙을 이스라엘에서 성행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시돈 출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로는 에스겔 27장에서 두로와 교역하는 수많은 나라들과 그 통상품을 일일이 열거하며 두로가 해상 무역을 통해 얼마나 화려한 경제적인 부를 일구어내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로는 B.C 586년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되자, 그들의 무역 경쟁 상대국이었던 유다의 멸망을 기뻐하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서 26:2~3 “사람의 아들아, 두로가 예루살렘을 대적하며 말하기를, 아하, 백성들의 문이던 그녀가 부서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이제 그녀가 피폐하게 되었은즉 내가 충만하게 되리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바다가 파도를 일으켜 올라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역사적으로 시돈과 두로는 우상이 성행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땅이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에게 환영 받지 못할 지역이었습니다.

 

(2) 부정한 영이 들린 어린 딸

25절에 이 여인은 부정한 영이 들린 딸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정한” 이라는 단어는 유대인들에게 부정의 단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바알세붑의 힘을 빌려 마귀 들린 자를 내어쫒는다고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탄이 자기를 대적하여 분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부정한 영에 사로잡힌 자는 사탄의 세력에 있는 자입니다.

(3) 이방인

26절에 이 여자는 그리스 사람이요, 민족으로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지역은 과거 베니게 족속들이 대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의 수리아, 지금의 시리아 주에 속해 있었습니다. 시리아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에 있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4왕국으로 분열되었을 때, 시라아는 셀라큐스 왕국의 영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두로는 시리아의 영향을 받아 헬라적 문화와 사고가 유행하였습니다. 여자가 그리스 사람이라는 의미는 이 여인이 헬라적 사고를 가진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헬라이즘은 유일신을 믿는 히브리즘과 모든 면에서 달랐습니다.

마태복음 15:22절에 이 여인은 가나안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 때, 가나안 지역에서 이동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옛날식의 명칭대로 가나안 사람이라고 자신을 불렀습니다.

 

이상을 볼 때, 이 여인은 유대인인 예수님께 나올 수 없는 치명적인 제약이 있었습니다. 우상과 교만이 가득한 땅에서 살며, 이방인이었으며, 부정한 영을 가진 딸을 둔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유대인인인 예수님께 나아고자 했을 때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자신을 받아줄 것인지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 같은 자도 받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 믿음이 때문이었습니다.

 

PART II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여인의 믿음

이 여인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는지를 잘 알 수 없지만, 아마 소문으로 듣고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마치 백부장이 예수님에 대한 고귀한 인격과 사역을 듣고, 흠모하며 믿음을 키워 간 것과 같은 동일한 이치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믿음이 있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 “즉시“

원어에는 “즉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마자, 즉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에 “즉시” 반응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평소에 예수님에 대해 듣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에 인격적 신뢰를 가졌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바로 예수님께 나갈 수 있었습니다.

 

(2) “경배하며”

마태복음 15:25절에 “그 때에 그녀가 와서 그분께 경배하며 이르되, 주여 나를 도우소서, 하나” “경배하며“ 시제는 과거에 반복적으로 행하여졌음을 나타내는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인은 이 번 한 번만 예수님을 경배한 것이 아닙니다. 마태는 이 여인이 반복적으로 예수님을 경배했다는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도 믿음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 “다윗의 자손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이 말은 메시야 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올 메시야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오실 메시야가 예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방 땅, 바알 신을 섬기던 땅에서 이 여인이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입니다.

 

PART III 예수님이 여인의 신앙을 바르게 하심

마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그러나 여인을 계속해서 예수님 일행을 따라오며 울부짖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나서서 예수님께 간청하여 여자를 보내주도록 간청했습니다. 이를 볼 때, 이 여인이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24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어지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전에도 이방 땅에서 거라사 광인을 고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이 예수님의 말씀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입니다. 앞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이 허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먼저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시면서 마태복음 10:5 “예수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방인들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어떤 도시로도 들어가지 말며” 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여인이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자신의 딸을 도와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마가복음 7:27절에서 “먼저 자녀들에게 배부르게 할지니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매” 이 말씀은 일면 여인을 무시하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여인을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과 같이 여인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마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어떤 호칭을 사용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들의 도움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당시 제자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의 메시야 사상은 여전히 정치적, 군사적 압제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메시야였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대로 메시야의 도래로 세상 가운데 우뚝 선 나라이기를 원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유대인의 메시야관은 여인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27절에서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부르게 할지니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매” 이 말을 얼핏 들으면 예수님이 여인을 책망하는 듯한 말로 들입니다. 여인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여인의 연약한 신앙을 바르게 교정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자녀와 개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여인은 이방인입니다. 여인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대적 메시야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여인이 가져야 할 바른 메시야관은 무엇입니까? 28절에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밑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의 빵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유대인들의 주식인 빵은 납작하고 펴져서 동그랗게 구워졌습니다. 그리고 먹다 남은 빵은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 개들에게 던져졌습니다. 여기서 개는 광야를 방황하는 개는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무시하는 투로 개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예수님의 그런 의도로 “개”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용한 “개“는 작은 강아지를 의미합니다. 애완용 강아지를 의미합니다. 애완용 강아지는 주인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이 예수님의 표현에 여인이 깨달음을 얻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종”이라던가, “하인”이라는 표현을 쓰셨다면, 주인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용하신 애완용 강아지는 주인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래서 여인은 자신을 개라고 겸손히 인정을 합니다. 자신도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스러기 은혜를 구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역사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특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가능합니다. 비록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셔서, 율법을 주시고, 세상의 빛으로 사용하셨지만, 여전히 이방인에게도 그 은혜의 역사가 임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비할 수는 없지만, 부스러기 같은 은혜일지라도, 이는 이방인들에게는 차고 넘치는 충분한 은혜입니다.

 

여인의 대답에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28절에서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말씀하시며 여인의 믿음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믿음을 칭찬해 주신 두 사람은 이방인 백부장과 수로보니게 여인입니다. 예수님이 이들을 칭찬하실 때, 이방인이면서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인에게 임할 은혜의 역사를 알고 믿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신약의 역사가 이방인에게 충만한 은혜가 임하엿을 알고 믿습니다. 지금은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비단 로마서가 아니더라도 우리 자신이 이방인이었지만, 지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고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충분한 경험적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다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여전히 이방인들의 전도에 머뭇거림을 알고 있습니다. 세 번이나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서야 고넬료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인의 믿음은 시대를 앞서가는 믿음이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바른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실 때, 큰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큰 믿음을 큰 역사를 가능케 하는 믿음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남들이 이루기 어려운 일들을 해 내는 믿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 산을 옳기는 믿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큰 믿음의 개념은 우리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예수님이 큰 믿음이라 칭찬하실 때는, 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른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혹여 약간의 연약한 믿음이라 할지라도, 바르게 인도하셔서 바르게 믿게 하시고, 큰 믿음이라 칭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믿음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참 하나님의 자녀요,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원의 역사는 은혜로 이루어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성경이 말하는 바른 가르침에 서고자 노력합니다. 그럴 때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셔서 바른 지식에 기초한 바른 믿음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이 큰 믿음입니다. 큰 믿음이라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께 큰 믿음이라 칭찬 받을 수 있습니다. 비록 작은 교회지만 큰 믿음을 가진 교회로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진리 위에 서 있다면, 우리는 인식을 못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큰 믿음이라 칭찬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제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고 가르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가 게으르지 않고 이 일에 마음과 시간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또한, 온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바르게 배우고,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이런 역사가 올 한 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교회가 큰 믿음 가진 자요, 교회로 칭찬 받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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