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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6:45~52

마가복음 6:45~52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전 예수님을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제자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맥 전개를 염두에 두고 예수님의 제자 훈련에 초점을 맞추어 마가복음을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훈련으로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제자들에게 숙제를 주시고, 생각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직접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배우게 될 본문 말씀에도 예수님의 이런 제자 훈련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은 폭풍우 치는 갈릴리 호수에서 사투를 벌어야만 했습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런 상황으로 몰아가셨을까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예수님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예수님의 의도를 잘 이해할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가가고자 노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환란 가운데 있는 성도의 믿음의 자태

I. 우연이라고 말하기 힘든 정황들 (v45~52)

예수님의 제자들이 폭풍우를 만나는 것은 우연히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 훈련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여러 정황들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해 볼 부분은 45절에 “강권”이라는 단어와 “보내고” 두 단어입니다. “강권”이라는 단어는 긴급성을 가지고 재촉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긴급한 상황 속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미합니다. “보내고”는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분리하다”와 “보내다”의 두 합성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오병이어를 맛 본 백성들을 분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단어들을 볼 때, 어떤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서둘러 보내셔야만 했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 본 사람들과 분리해야만 했을까요? 요한복음 6:15절에 오병이어를 맛 본 백성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는 것을 아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잡으려고 했다”는 의도는 “낚아채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호한 생각을 가지고 순식간에 이를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 본 사람들의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이미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 본 백성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 줄 분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굶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로마의 압제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로서 자신들을 보호해줄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경제적인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실 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사탄적인 생각입니다.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이 세상의 왕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시고, 자신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모든 율법을 다 이루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세대의, 모든 민족의 메시야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백성들과 급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본 낸 예수님은 백성들을 해산시켰습니다. 이는 강제적으로 해산시킨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흥분한 백성들을 해산시켰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자들이 없을 때, 예수님은 백성들을 더 해산시키기 쉬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해산하신 후에 홀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는지는 잘 모릅니다. 예수님도 육신의 몸을 입고 계셔서 백성들로부터 받은 유혹을 억누르고자 기도하셨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는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육신의 연약함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할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복음 사역을 감당할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두 번째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제자들의 항해입니다. 47절에 제자들은 저녁이 되었을 때, 바다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간 개념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저녁부터 아침으로 계산되고, 아침이 저녁이 됩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금요일 해가 지고 난 뒤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입니다. 이 저녁은 두 번째 저녁일 것이라고 주석가들은 말합니다. 첫 번째 저녁은 9시부터 12시까지의 시간입니다. 두 번째 저녁은 12시부터 해 질녘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낮 동안에 보내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저녁에 홀로 산에서 기도하실 때, 어둠이 찾아왔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 45절은 예수님께서 뱃새다로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17장에는 가버나움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뱃새다 평원에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를 탈 수 있는 지역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자들은 가버나움을 향해 항해를 했습니다. 요한복음 19절에 바다 한 가운데 갔을 때의 길이가 삼십 스타디온쯤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km 단위로 환산하면, 대략 11km입니다. 그러니까 뱃새다부터 가버나움까지는 대략 22km입니다. 22km는 멀다는 멀지만, 그렇게 멀지도 않습니다. 가버나움의 동네가 뱃새다에서 눈에 선명히 들어옵니다. 그들 중에는 뱃새다가 고향인 빌립, 베드로, 안드레와 같은 숙달된 어부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부 일 때, 수도 없이 벳새다와 가버나움을 생선을 팔기 위해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음만 먹는다면 쉽사리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폭풍이 오기 전에 건널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밤 사경에 그들을 찾아왔습니다. 밤 사시는 우리의 시간으로 하면 새벽 3시~6시 사이의 시간입니다.

 

왜 제자들이 대략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11km 밖에 못 갔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는 생각에 배를 천천히 가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항해를 지체시킨 분명한 이유 중 하나는 48절에 바람이 그들에게 반대로 불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힘겹게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힘겹게”는 고문 수준을 말합니다. 얼마나 힘든 일이었으면, 제자들이 고문당하는 수준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갈릴리는 호수이지 바다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폭풍우가 불기 때문에 마치 바다와 같다고 해서 갈릴리 바다라고 불립니다. 이런 폭풍우가 치는 이유는 갈릴리 호수의 특이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지중해 바다보다 210m가 낮습니다. 헬몬산의 찬 기운과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더운 기운이 호수에서 만날 때, 순간적으로 폭풍우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본문에 일어나는 폭풍우는 상당히 심한 경우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경험 있는 어부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폭풍우입니다. 이스라엘의 기학 학자가 이 사건이 일어난 겨울 5년 동안 이런 폭풍우를 관찰해 번 결과, 두 번 정도가 이런 규모의 폭풍우가 불었습니다. 물론 작은 규모는 많이 관찰되었지만, 이런 정도는 흔치 않은 경우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 예수님의 우연이 아닌 예수님의 의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은 예수님께서 48절에 “보셨다”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이 언제부터 그들을 보시기 계셨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사물을 실별하는 적외선 망원경보다 더 확실하게 어둠 속에서 예수님의 눈은 마치 매의 눈으로 제자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이 극도의 피로와 탈진 상태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오는 방법도 특이합니다. 48절에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은 영인 줄 알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거의 패닉 상태였습니다. 마태복음 14장에서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물에 빠지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 상황은 그 이전의 상황으로 추정됩니다. 왜 예수님은 그냥 지나쳐 가려고 했을까요? 누가복음 24:28절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신 후에, 일부러 마음을 지나가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을 보려는 의도입니다. 지금 이 상황도 그와 같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려는 지를 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상에서 우연 같지만, 우연 같지 않는 여러 정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잘 짜인 각본 가운데 제자들을 폭풍우 속으로 강권하여 보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시며, 제자들이 폭풍우를 만날 것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폭풍우를 만날지 모르고 보냈다고, 제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구해주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입니다. 미래의 일을 예언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하셨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이 제자들이 폭풍우를 만날 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이는 다분히 예수님의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II. 예수님의 의도(v50~52)

이 사건이 우연히 아닌 예수님의 의도가 있다면, 우리는 이 예수님의 의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50절에 제자들은 불안해하였습니다. “불안해”의 의미는 내면을 휘젓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폭풍우로 심히 지쳐 있었습니다. 이제는 극도의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향해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셨습니다. 이에 바람이 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심히 놀라며 이상히 여겼습니다. 52절에는 마가의 이 사건을 바라보는 독특한 멘트가 나옵니다. 마가는 이 사건을 해석하면서 그들이 마음이 굳어져서 빵의 기적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굳어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부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깨닫는 것이 느리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본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신성에 놀라고 있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폭풍우를 잠잠케 하신 일도 가능합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한 것이 이 번 만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4장에서도 그들은 폭풍우를 잠잠케 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은 놀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마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의 믿음을 볼 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순간순간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셨는지를 잊어버립니다. 상황에만 매여 요동하는 우리 자신을 바라봅니다. 지금 이 순간만이 중요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는 믿지 않는 자의 믿음의 자태입니다. 유다서 5절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믿음의 자태가 나와야 합니다. 처음에는 유야기적 신앙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야 합니다. 광야에서 처음 나올 때의 신앙과 40년 뒤의 신앙은 달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동일한 신앙을 보인다면, 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것이요, 구원 받지 못한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폭풍우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이 폭풍우 치는 상황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행해야 하는 지를 체험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면의 폭풍으로 감정이 요동치지 않고, 지난 시절 예수님의 기적을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깨닫고, 실천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질 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제자들에게 심히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대 교회에 이 사건은 많이 언급되었던 것 같습니다. 환란과 핍박 가운데 있던 초대 교회는 이 사건을 돌아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부활 후,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들은 패닉 상태가 아니라, 기도하였음을 사도행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환란과 핍박,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를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건도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주님이 우리가 겪는 상황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주님께서 이 상황도 주님 뜻대로 이루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처음 신앙 생황에서 이런 환란을 만나면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죽겠다고 하며 요동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많은 시간을 보낸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운 상황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믿음의 자태를 보여야 합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여전히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 연약합니다. 환란과 핍박, 어려운 상황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었던 오병이어의 기적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기도하며 행동할 수 있습니다. 패닉 상태가 아닌, 고요한 마음 상태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가 있습니다. 마치 사도행전에서 폭풍우를 만난 사도 바울이 배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가르친 것과 같습니다. 환란 중에서도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있는 모든 어려움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허락해 주시 것을 알고, 더욱더 믿음으로 행동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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