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6:30~44

 본문: 마가복음 6:30~44

 

3번에 걸친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 여행과 예수님의 제자들의 전도 여행을 통해 예수님의 인기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누구신가? 서로가 토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가복음 6:14절에 갈릴리 지역을 통치했던 헤롯 안티바스는 예수님이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널리 쳐졌으므로 헤롯왕이 그분에 관하여 듣고 이르되, 세례자 요한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도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일들이 그에게서 나타나는도다, 하니라.”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대언자나, 대언자들 중의 하나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역사를 통해서 이미 수많은 선지자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요구했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엄중한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본 백성들은 이러한 선지자가 이 시대에 다시 나타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제자들이 이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자들에게 명확히 이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이 오병이어의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요한복음은 6장 전체를 할애해서 오병이어의 사건과 그 의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오병이어 사건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생각게 하고, 깨닫게 하는 좋은 사건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을 훈련하시려는 분명한 의도를 들어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 중 하나는 예수님의 누구이신가를 제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복음서를 기록하고, 가르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의 제자훈련 II 예수님의 신성을 깨닫는 훈련

I. 예수님의 인성(v30~34)

30~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도 여행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조별로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전도 여행 동안 있었던 일들을 보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쉴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먹을 겨를도 없이 일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를 타고 은밀히 외딴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 지역은 벳새다 지역입니다. 벳새다는 어부의 집’이라는 뜻으로 갈릴리 호수로 위쪽, 요단강 하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어 어업이 성행했다. 또한 이 지역은 빌립과 안드레 베드로의 고향이었습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에게 걸어서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목자 양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백성을 목자 없는 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수십일 동안 양을 몰고 다니다가 갑자기 병이나 사고로 죽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양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방황합니다. 양은 50m 앞을 보지 못하고, 500m만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자의 세심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합니다. 만약 광야에서 목자가 없다면 양들은 흩어질 것입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맹수의 밥이 되거나,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당시 백성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신세입니까? 당시 실권을 잡은 사두개파는 아론의 정통적인 계통을 따라 임명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헤롯과 로마가 유대를 점령한 이래로 제사장 제도가 문란해졌습니다. 누구든지 돈을 많이 가져오면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돈으로 제사장직을 산 사람들은 다시 그 돈을 백성에게 빼 먹으려고 했습니다.

당시 바리새파는 이런 썩고 부패한 사두개파와는 대립적이었으며, 보다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율법의 해석에 기인한 전통들을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가르쳤습니다.

 

지도자는 지도이념이나 지도 원리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에 기초해 그 백성이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가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당시 그런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자들, 사두개파, 바리새파 모두 이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분명한 지도이념과 목표를 가지고 그 백성을 이끌 목자는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 정치지도자들과 로마의 교활한 경제 정책은 백성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었습니다. 많은 농민들은 대부분은 소작인이 이었으며, 일당을 받고 일하는 품꾼들이었다. 로마가 유다 지방에 책정한 농지 증세액이 600 달란트였으며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헤롯 1세의 수입은 1,000 달란트를 초과했다. 당시 1달란트는 1만 데나리온이었으 며 1데나리온은 한 가족의 하루 생활비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은 과중한 조세 부담과 극심한 기근으로 심한 빈곤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자들과 로마는 팔레스타인 백성들에게 무자비하고, 약탈적으로 조세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경제적으로 백성들은 착취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당시의 백성들은 참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어떤 감정을 느끼셨습니까? 34절에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단어는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슬픔을 느끼시며, 고통을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인성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4:15~16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위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갈 것이니라.” 예수님의 인성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예수님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느끼십니다. 참으로 불쌍히 여기십니다. 이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은 참 목자요, 그 백성이 믿고 의지하고 따라갈 수 있는 참 목자가 되십니다.

 

II. 예수님의 신성(v35~44)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백성에게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의 도리에 대해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육신의 배고픔보다도 더 갈급한 것은 영적인 갈급함입니다. 이 생의 고단함과 허기는 참을 수가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내세에 대한 소망은 그 어떤 것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먼저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날이 많이 지났습니다. 누가복음은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백성들을 보내 빵을 사게 먹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요한복음 6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절에 보면 예수님은 빌립에게 이를 물어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한 사람이 전체를 대표하는 문화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어보셨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에게 물어보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택하셨을까요? 이는 아마 빌립의 예수님에 대한 고백에 기인한 듯합니다. 요한복음 2:45절에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그에게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대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으니 곧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니라. 하매”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이 오기로 약속된 메시야라는 의미입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 메시야로 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열 두 제자의 대표로서 제자들의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인식이 어디까지 와 있는 지를 들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6:7절에 빌립의 대답이 나옵니다. “빌립이 그분께 대답하되, 그들이 가각 조금씩 받을지라도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빵이 그들에게 충분치 하리이다, 하매” 여기에 빌립을 포함한 제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껏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들을 보아왔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도로 파송되어 그들 스스로도 기적들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전도 여행 중에 있었던 선교 보고도 막 하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이 정도로 예수님을 보고 배웠다면, 빌립을 비롯한 제자들의 생각이 좀 더 영적이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믿고, 답을 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예수님이 모르는 사람도 답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같은 몸을 입고 있지만, 근본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후에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복하시고 빵들을 떼어 자기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성인 남성 5천명이 먹고도 열 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들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백성들에게 이 답을 하셨습니다. 당시 성인 오천 명은 엄청난 수입니다. 그 오천 명의 성인 남성에게 딸린 식구를 계산하면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하고 들은 수는 족히 5배에서 6배로 불어납니다. 거기에는 또한 성인 남성과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과 여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나눈다면, 이 사건은 족히 갈릴리 지역, 유대 지역까지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그 백성에게 만나를 먹인 사건과 같이, 예수님은 그 백성을 먹이셨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 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엘리야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메시야요, 육신의 몸을 입고 온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들어내셨습니다.

 

둘째는, 제자들에게 이 답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백성들을 먹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백성들을 먹일 능력이 없음을 예수님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이유는 그들을 집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학생들이 어떤 문제를 풀 때, 수동적으로 푸는 것과 능동적으로 푸는 것은 그 결과에 있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풀고,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 자들은 그 답을 들을 때, 그렇지 못한 자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더 강렬하게 느끼고,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핵심을 이해하는 데 있어 더 우위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각자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까? 토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선의 답을 도출한 것이 그들을 각자 빵을 사먹게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적어도 이제 예수님이 이 문제를 어떻게 푸실까?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제 그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후에,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글로 남겨야 합니다. 사복음서에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한 장을 할애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성을 들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왜 예수님의 신성을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까? 요한복음 6: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너희가 기적들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요 빵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로다.” 예수님의 신성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이익 때문에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따르게 됩니다.

요한복음 6:42 “이르되,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우리가 아는데 어찌 그가 말하기를,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하느냐? 하니” 6:52절에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자기들끼리 다투며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하매”

요한복음 6:66 “그때부터 그분의 제자들 중에 많은 사람이 돌아가고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의 신성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생각이 불가능합니다. 결국에는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을 믿는 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도 떠나려고 하느냐?“ 라고 질문하셨을 때, 요한복음 6:68~69절에 ”주여 영생의 말씀들이 주께 있사온대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확신하나이다, 하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신성을 깨달은 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믿음을 가르쳤고, 복음서에 기록하였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길고 치열했던 싸움 중의 하나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부정이었습니다. 요한 일서에는 영지주의자들에 의한 예수님의 신성이 부정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후에도 많은 기독교 이단들이 일어나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공격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은 0% 인성과 100% 신성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100% 인성과 0%의 신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를 대체해 타협의 자세를 가지는 자들도 있었는데, 50%의 인성과 50%신성을 주장하거나 40%의 인성과 60%의 신성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이슬람교 등은 대표적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 중의 한 분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할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백성의 죄를 십자가에서 사하여 주신 것을 부인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단지 우리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심부름꾼에 불과합니까? 아니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 중의 한 명, 선지자들 중의 한 명으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과 같은 본질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진 분이십니다. 또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런 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보며 바른 기독교의 가르침 위에 설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182 [마가복음 6장] 예수님의 제자훈련 I 전도훈련 마가복음 6:7~13 박정일 302
» [마가복음 6장] 예수님의 제자훈련 II 예수님의 신성을 깨닫는 훈련 마가복음 6:30~44 박정일 251
180 [마가복음 6장] 환란 가운데 있는 성도의 믿음의 자태 마가복음 6:45~52 박정일 304
179 [마가복음 7장] 참 된 경건 마가복음 7:1~22 박정일 391
178 [마가복음 7장] 큰 믿음 마가복음 7:24~30 박정일 313
177 [마가복음 8장]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 마가복음 8:1~9 박정일 306
176 [마가복음 8장] 시대를 분별하는 신앙 마가복음 8:10~13 박정일 336
175 [마가복음 8장] 보고 듣고 깨닫는 자가 되라 마가복음 8:14~21 박정일 331
174 [마가복음 8장]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 마가복음 8:27~30 박정일 236
173 [마가복음 8장] 제자의 삶 마가복음 8:34 박정일 259
172 [마가복음 9장] 더 확실한 체험 마가복음 9:2~8 박정일 261
171 [[마가복음 9장] 믿음의 능력을 행하는 방법 마가복음 9:14~29 박정일 259
170 [[마가복음 9장] 큰 자는 섬기는 자 마가복음 9:33~37 박정일 349
169 [[마가복음 9장] 성숙하게 동역하는 제자의 삶 마가복음 9:38~50 박정일 288
168 [마가복음 10장]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마가복음 10:1-12 박정일 2017-04-16 673
167 [마가복음 10장] 예수님이 가르치신 "구원론" 마가복음 10:17~31 박정일 2017-04-23 356
166 [마가복음 10장] 섬김에 대한 가르침 마가복음 10:35~45 박정일 2017-04-30 931
165 [마가복음 10장] 영적인 눈을 떠라 file 마가복음 10:46~52 박정일 2017-05-07 492
164 [마가복음 11장] 겸손하신 메시아, 영광의 메시아 마가복음 11:1~10 박정일 2017-05-14 295
163 [마가복음 11장] 잎만 무성한 교회 마가복음 11:12~14 박정일 2017-05-21 33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