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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6:7~13

본문: 마가복음 6:7~13

 

예수님은 곧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실 것입니다. 이 시기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일은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킨 후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면서 제자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말씀을 공부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처음부터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교육법이요, 훈련법입니다. 시청각 교육으로 먼저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시범이 고향에서 배척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교육은 끝났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실습을 할 차례입니다. 이제까지 머리로 보고 배웠던 것을 실제로 해보면서 배워야 할 차례입니다. 그 첫 훈련이 전도 훈련입니다. 예수님은 이 전도 훈련에서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자들에게 제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 훈련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첫째는 동역 훈련입니다. 둘째는 물질 훈련입니다. 셋째는 교회 개척 훈련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시간 전도 훈련을 통해 제자들을 훈련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의 제자훈련 I                           

I. 동역훈련(v7)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단어는 “부르다”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나 훈련시키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부르신 자들을 훈련시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 훈련 보내실 때, 마귀들을 제압할 권능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9장 1절에서는 권능과 권의를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권능은 능력입니다. 힘입니다. 권위는 자격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적인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았습니다. .

 

제자들이 이런 능력 외에도 병을 고치는 능력과 자격도 부여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6:13절에 보면 기름을 발라 병자들을 고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고친다는 헬라어 단어는 “테라페우오”인데, 이는 영어 “therapy”의 근원이 되는 단어입니다. 이는 주로 질병을 치유와 관계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관습상 병 치료를 위해서 기름을 발랐습니다. 이는 야고보서 5:14절에서 확일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는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보다는 관습을 따라 기름을 바르고, 간절히 기도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능력을 통해 병을 고쳤음을 문맥상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9:2절에서 ‘치료하다’는 그리스어 단어는 “이아오마이”입니다. 이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이 치료는 사람들의 눈을 확 사로잡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제자들은 병을 고칠 뿐만 아니라, 또한 걷지 못하는 자나, 눈 먼 자와 같은 자들을 초자연적인 능력, 신적인 능력으로 고쳤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주신 후에, 둘씩 짝지어 전도 여행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둘씩 보내셨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후에, 선교 보고를 하게 됩니다. 유대인의 관습상 최소 두 증인이 필요합니다. 또한 한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여행 중 여러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하며, 임무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서로 출신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데 예수님의 의도가 더 있지 않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앞으로 사람들과 동역하여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혼자서는 결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가장 최소 단위의 동역 훈련을 시켜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강 조합은 아마 마태와 열렬당원 시몬일 것입니다. 이는 마치 독립투사와 일제 앞잡이의 조합과 같습니다. 나다나엘은 신중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무화과나무에서 생각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자입니다.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자입니다. 이들인 예수님이 주신 권위와 능력을 따라 일 할 때, 서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사사건건 부딪혔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의도입니다. 계속 부딪히면서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 여행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 도망갈 수 없는, 회피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들의 선택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주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의논하며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마태와 시몬, 나다나엘과 베드로가 한 조였는지를 확인해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의 훈련이었기 때문에, 서로 맞지 않는 최강의 조합들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목회 현장에서 목사님들이 가장 어렵다고 토로하는 것은 설교 준비도 아니며, 전도도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인간관계라고 말합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로 자라 온 출신배경이 다르고, 학력도 다르며, 기질도 다릅니다. 이들이 예수님 안에서 함께 생활할 때, 수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많아집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동역하는 자세입니다. 나를 죽이고, 상대방의 의견을 따라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죽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자세를 요구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교회 생활을 할 때, 나를 죽인 사람들이 바르게 예수님 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그런 상황 속으로 밀어 넣어 훈련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도저히 영접할 수 없는 사람과 짝지어 훈련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아마 그 자리는 인격과 인격이 부딪히고, 혈기와 혈기가 부딪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것 훈련입니다. 훈련은 끝이 있습니다. 훈련이 끝나면 예수님은 새로운 일에 우리를 쓰실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를 가진다면, 오늘 나에게 주어진 동역의 훈련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II. 하나님 신뢰훈련(v8)

8절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이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한 개 외에는 짐 보따리나 빵이나 돈주머니의 돈이나 아무것도 취하지 말게 하시며” 누가복음 9:3 “그들에게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취하지 말라, 지팡이들이나 짐 보따리나 빵이나 돈도 취하지 말고 덧옷도 두 벌 취하지 말라.”

 

제자들이 얼마의 시간 동안, 어느 지역을 전도 여행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이 전도 여행 후에 사분영주 헤롯이 크게 놀랐다는 사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사분영주 헤롯의 영토 안에서 행하여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분영주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 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 헤롯 대왕이 죽은 후에,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주로 갈릴리 지역을 다니며 전도했을 것입니다. 갈릴리 지역은 고라신, 가버나움, 가나, 나인 등 주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곳들입니다. 제자들도 친숙했을 것이고, 사람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 호의적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훈련 장소에 대한 배려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짐 보따리를 가지고 가지 말도록 명령했습니다. 여기에 주목할 단어는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훈련의 엄격함이 드러나 있습니다. 짐 보따리는 주로 서민들이 들에 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보따리에는 일상적인 물품과 함께 돈이나 식량들을 넣었습니다. 요즘 우리도 여행을 가면 ”backpack“을 매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보따리 안에 빵을 넣어 가지고 가지 말도록 한 것 같습니다. 또한 돈을 넣는 전대도 가지고 가지 말도록 명령합니다. 빵이 없으면 사 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예 빵에 대한 철벽 방어를 하고 계십니다.

빵 뿐만 아니라 겉옷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걸쳤던 겉옷은 밤에 갑자기 기온이 떨어질 때, 덥고 자는 이불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만약 겉옷이 두 벌이면 한 벌은 세탁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한 벌이면 불편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마가복음은 지팡이를 하나만 가지고 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지팡이들을 아예 취하지 말도록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지팡이는 여행에 필요한 지팡이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 지팡이들은 싸움을 위한 도구들을 의미합니다. 위험의 순간에 자기를 지켜줄 무기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의식주에 대해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주셨습니다. 이는 보기에는 너무도 심한 명령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공급하심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심을 믿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한 달 이상 이런 훈련을 받았을 리 없습니다. 짧게는 3~4일, 길어야 일 주일 정도 될 것입니다. 6개조가 훈련하기 때문에 갈릴리 전 지역보다는 자기 조가 가야할 지역이 정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식량은 필요합니다. 여분의 겉옷도 필요하고, 자기를 지킬 무기도 필요합니다. 여행을 수월하게 할 지팡이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엄격하게 통제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에게 공급하게 지켜주실 이는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기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두려움이 많습니다. 성경에서 계속적으로 이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보호하심에 대한 신뢰는 주의 종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3년 동안 까마귀를 통해 이 문제를 훈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6:33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오늘 우리가 이 훈련을 받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주님만을 신뢰하며 가야 할 상황에 처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주의 종은 반드시 이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훈련을 마치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쓰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제자는 항상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야 합니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누가복음 22:35~36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수탉이 울기 전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을 말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짐 보따리와 신도 없이 보냈을 때에 너희에게 무슨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하시니 그들이 이르되, 없었나이다, 하매 그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이제 돈주머니가 있는 자는 그것을 취할 것이요, 짐 보따리도 그리하고 칼이 없는 자는 자기 옷을 팔아 하나를 살지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킨 목적은 주의 종은 어떠한 상황에도 부족함이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후에 예수님은 반대로 이제 돈주머니와 칼을 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죽으심 이후에는 더 혹독한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돈주머니와 칼이 필요함을 아셨습니다.

 

주의 종은 언제가 한 번은 이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훈련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더라”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면, 이 훈련은 끝나는 것입니다. 이 후에는 이런 믿음을 기초로, 지혜로운 삶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주가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계획하고 준비하고, 오히려 있는 돈을 계획적으로 잘 이용하며, 미리 위험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피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III. 교회 개척 훈련(v11~13)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교회 개척 훈련을 시켰습니다. 오늘날이야 이런 훈련이 너무도 쉽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보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릅니다. 이런 교회 시대에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이 훈련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10:11~15절을 보시겠습니다. 11절을 보면 어느 마을로 들어가던지 합당한 자를 알아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한 합당한 자는 누구입니까?

 

유대 관습에 의하면, 낯선 자가 마을에 오면, 마음 전체가 이 낯선 자를 보호하고, 주거를 제공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한 집에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전체의 집에서 돌아가면서 이 의무를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낯선 이가 집을 옮기며, 다양한 집의 주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자랑하기 위해서 합니다. 어떤 이는 싫지마는 해야 되니까, 마지못해 이 의무를 감당합니다. 그런 중에 어떤 이는 기쁨으로 이 일을 감당합니다. 이런 자가 합당한 자입니다. 특별히 누가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온 것을 전하였습니다. 사람들 중에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제자들이 전한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집 주인은 합당한 자입니다. 예수님을 집과 집을 옮기면서 이런 사람을 잘 관찰하고 찾아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계속 머물러야 합니다. 이는 더 좋은 곳을 찾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마을에서 더 좋은 집 주인과, 더 좋은 집이 나타날지라도 결코 거처를 옮겨서는 안 됩니다. 인간적으로는 그렇고 싶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회 개척은 아닙니다. 좀 불편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계속 그 곳에서 우거해야 합니다. 그 곳에서 말씀을 잃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합당한 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자들이 빈 화평이 되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진리처럼 보이지만 진리가 아닌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처럼 보이지만 기독교가 아닌 것이 있습니다. 잘 구별되지 않지만, 시간이 가면 그 열매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성경적 분리를 해야 합니다. 비록 일순간의 손해를 볼지언정,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 제자들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나중에 딴 소리 하는 사람의 집에는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성도는 분명한 영적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진리 안에서 사랑입니다. 진리 밖에서 사랑을 찾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을 찾아야지,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과 사랑과 화평은 논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 훈련을 배웠습니다. 전도 훈련을 통해 동역과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를 신뢰하는 것과 교회를 개척하는 훈련을 배웠습니다. 이 훈련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일차적으로 적요될 수 있습니다. 또한 풀타임 사역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 가운데 부딪히는 인간관계의 문제, 물질 문제와 직장 문제, 자연 재해 등의 위험함에 노출에 처한 성도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 생활 내에서 이단에 대한 바른 대처에 대해서도 이 예수님의 제자 훈련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제자는 훈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훈련이 없이는 제자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훈련을 기쁨으로 받고, 성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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