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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6:1~6

마가복음 6:1~6

 

마가복음 6:1~8:26절까지의 말씀은 제자 훈련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사역의 끝을 향해 달려가시고 계셨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시급한 일은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둘씩 짝지어 제자들을 전도 여행을 보내셨습니다. 여러 기적의 사건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의 논쟁을 통해 말씀과 기적을 통해 자신이 누구신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 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베드로에게 신앙 고백을 받으시고, 제자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향에서 배척받으셨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기 전에 고향을 방문하셨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한 특별한 메시지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복음을 전할 때, 배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이상하거나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은, 예수님 또한 고향에서 배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 사건을 통해 예수님 제자 또한 이를 감당해야 함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복음을 전하다 배척 받을 때

I.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v1~2절)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자신의 고향 나사렛으로 향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상업이 발달한 부유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나사렛은 가버나움에서 남서쪽으로 67km 떨어진 내륙 산간 지방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해발 375m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입니다. 요한복음 1:46절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니 빌립이 그에게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구절을 볼 때, 상당히 무시 받던 시골 촌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거리상으로 가까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의 소문들은 충분히 나사렛에도 전하여졌으리라 추측이 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회당에서 구약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자는 특별한 교육을 받을 자라야 가능합니다. 율법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객관적인 자격을 갖추어 구약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늘 구약 성경을 가르치셨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아무런 공식적인 자격이 없는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아마도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보증 때문일 것이라 추정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민족을 구할 자로서 확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유대 지역의 회당에서는 예수님이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지역은 유대 지역과는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 지역의 사람들이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경멸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기적들이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 행하여졌습니다. 이런 기적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율법을 가르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회당에 들어가시자, 회당장이 예수님께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서로 어디에서 이런 것들을 얻었느냐?”, “그가 받은 지혜가 어떠하기에 그가 자기 손으로 이런 능력 있는 일들을 행하느냐?”라고 반문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읽으신 책은 이사야서 49:8~9절입니다.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며 포로 된 자들에게 구출을, 눈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자유롭게 하며 주의 받아 주시는 해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은 그 민족의 포로 된 자들을 구출해 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종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셔서 그 백성을 구출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의 받아 주시는 해”는 이제 그 때가 임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인용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야임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4:21절에서 바로 하나님의 때에, 보내실 메시야가 바로 자심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시되, 이 성경 기록이 이 날 너희 귀에 성취되었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 땅에 그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 됨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자신을 통해 마음이 상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들을 고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능력으로 증거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으로 인해 영적인 나라가 이미 임하셨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복음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셨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II.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마가복음 3~4)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을 들은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무시함이 가득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마리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보통 유대인의 관습상 요셉의 아들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아마 요셉이 일찍 죽어서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도 거의 받아들일 수 없는 설명입니다. 요셉의 죽었다고 할지라도, 요셉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예의가 맞습니다.

둘째, 그들은 목수라는 직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목수는 당시 서민들이 가진 평범한 직업입니다. 사람들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말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무시가 들어납니다.

셋째, 격언을 사용하여 증거를 대라고 요구합니다. 누가복음 4:23절에서 그들은 “너 자신을 고치라”라는 격언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공격하였습니다. 이 격언은 당시 그들에게 흔한 격언이었습니다. 자신도 병들어 있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고칠 수 있느냐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을 고치려면 그에 합당한 능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여기서도 보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야 믿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올림픽에 금메달 따거나, 축구나 야구 등 여러 스포츠에서 우승하면 고향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습니다. 나라의 위상, 고향을 위상을 들어낸 영웅으로 간주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영웅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온 유대와 갈릴리 지방을 넘어 이방의 여러 지역까지 널리 퍼졌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나사렛의 영웅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굉장히 무시하는 어투로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하반절에 “실족”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는 굉장히 화가 났다는 표현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 굉장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향이며, 예수님의 부모를 알고 있으며, 예수님의 직업과 형제 자매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해, 예수님에 관해 about Jesus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They didn’t know Jesus.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에 약속된 기적들을 행하시므로, 스스로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가 되심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관으로 예수님을 대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얄팍한 지식으로 예수님을 평가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메시야라고 하자, 그들은 화를 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반응에 대해 대언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족과 자기 집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엘리야 시대의 이방 땅 시돈의 사렙다 과부의 예를 들어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였습니다. 또한 시라아 사람 나아만의 예를 들어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시돈의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을 예를 든 의도는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시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행하였음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민족입니다. 율법을 받은 민족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민족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도 더 못한 믿음을 가지고 계심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말에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극한 분노가 치솟아 올랐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 이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만큼 극한 분노를 느꼈을까요? 과거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이스라엘은 북방 민족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시리아에 가까운 이 지역은 특별히 반란을 우려하여 여러 이방 민족의 이주가 이루어졌고, 결혼정책으로 인해 혼혈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은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로부터 600년이 지난 후에, 마키아 왕조 때에 이 지역은 다시 수복이 되었고, 이 지역에 유대 민족주의를 회복하고자 대대적인 이주 정책이 펼쳐졌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출신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도 이 시기에 나사렛으로 이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제 더 이 지역은 이방의 갈릴리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유대 민족주의가 짙은 지역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로마를 상대로 한 민족 봉기의 선두에 이 지역이 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지역은 높은 수준의 종교적, 학문적 사고를 가진 자들이 많이 이주하였습니다. 그들은 높은 도덕심과 종교적 자부심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대 지역의 로마에 아부하며 권력을 통해 온갖 치부를 일삼던 자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볼 때, 예수님은 이방인과 자신들을 비교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그들은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III.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반응(v5~6)

예수님은 그 지역에서 어떤 능력 있는 일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이상히 여기시고 마음들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sign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임을 믿게 하는 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이 메시야임을 가르치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 이상 예수님이 메시야됨을 나타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참으로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충분했습니다. 가버나움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본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증언으로도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 이상 복음을 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다른 마을들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 여행 보내실 때 마가복음 6:11절에서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너희 마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희가 거기서 떠날 때에 너희 발밑의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을 대적할 증거로 삼으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을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과 물리적으로 다투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들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복음은 누구에게나 구원에 이르게 할 정도로 충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다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누구나 믿고 구원에 이르기에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믿고 구원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음을 듣고 영접하지만, 믿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무시하고, 화를 냅니다. 핍박하기도 하며 죽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미리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시기 전, 이를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마을들을 가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이 시간, 복음을 전하다 고향에서 배척 받은 예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 사실이 오늘 복음을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배척 받을 때 어떻게 행해야 하는 지에 교훈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배척 받더라도 이를 이상히 여기지 않고,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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