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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2:13~17
성경본문내용 킹제임스흠정역(그리스도 주 안에서)
13.그분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그분께로 모여드니 그분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그분께서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금 받는 곳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그분을 따르니라.
15.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 앞에 앉으실 때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앉으니 이는 많은 사람들이 거기 있었고 그들이 그분을 따랐기 때문이더라.
16.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그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하매
17.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본문: 마가복음 2:13~17

 

지난 시간에는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또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를 용서할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내면을 꿰뚫어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어떠한 죄도 용서해주십니다. 진정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로 불러주십니다. 오늘 저는 마태의 내면의 변화를 따라가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마태와 같은 자를 부르신 예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깊이 돌아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의 부르심의 은혜

PART I 내면의 절망으로 무기력함(v13~14a)

가버나움 세관의 지정학적 위치

가버나움 세관은 지정학적으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을 연결하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또한 지중해에서 배로 온 물건이 가버나움을 거쳐 시리아로 들어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짐은 철저히 조사되었고, 2~12%의 관세가 부과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갈릴리 어부들로부터도 세금을 징수하였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도 아마 세금을 마태에게 징수 당했을 것입니다.

마태의 세리로서의 직위

마태는 세관에 앉아서 세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마태 혼자 앉아서 일하고 있었는지 혹은 다른 동료들도 거기에 함께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대체로 다른 동료들도 같이 일하고 있었음 직합니다. 당시의 제도로 보아서 세리는 한 가지 지위가 아니었는데, 마태가 그때 어떤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당시에는 로마 정부에 미리 얼마를 거두어 바치기로 약속을 하고 세금을 직접 거두어 그 약속한 금액을 상납하고 나머지는 자기가 먹는 세금 도급업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태가 살고 있는 이 가버나움은 헤롯 안디바스가 로마의 임명을 받은 영주로서 권세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세금을 받는 일이 대체로 로마가 임명한 영주의 관할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마태는 로마의 관리라기보다는 헤롯 안디바스의 관리였을 것입니다. 이 제도에는 또한 세리장이라는 것이 있고 그 아래에 여러 사람의 세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때의 세리라는 말은 적어도 도급으로 세금을 거두는 일을 맡은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그런 사람 아래에는 지시를 받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태의 인품이나 그 후의 생활이나 그의 사상 등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서 그는 단순한 작업 지시를 받아 일하는 직위에 있던 자였기보다는 상당한 직위에 있던 자였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세리가 되기 받은 교육과 훈련

만약 마태가 세리였다면 그는 유대인들의 언어인 아람어 외에도 그 시대에 문화 용어로서 퍼져 처져 있던 헬라 말을 알았을 것입니다. 또한 로마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려해볼 때, 라틴어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세리로서 문서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데 특수한 훈련을 받았을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경멸받던 직업 세리

대부분의 세리들은 정직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정한 금액을 바친 후 그 이상으로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가능하면 더 많은 돈을 사람들로부터 긁어모았습니다. 권력을 배경으로 군사의 힘을 빌려 강제징수하고, 사람들을 협박하고, 감언이설로 속여 돈을 빼앗았습니다. 높은 세금 수탈에 서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동안 세리들은 점점 부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에 봉사하는 직업 때문에도 미움을 받는 세리들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더러운 사람들로 보였고, 외국 정부와 야합하는 공모자로 간주되었습니다.

세리들은 이방인이나 창기와 한 통속으로 취급되었습니다.(마 18:17/21:31). "세리와 죄인"은 최하층 사람의 통칭이었습니다(마9:9).

더구나 이들은 재판정에서 증언할 자격도 없었으며, 일반 죄인을 조롱할 자격도 없었고, 회당에 들어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리의 돈은 연보로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사회적인 문둥병자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그가 부를 누리고 있었지만, 사회적 종교적으로는 그는 버림을 받은 자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 마태가 이러한 대우를 받는 세리의 직업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그는 동족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친구들은 세리와 창기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도 그는 구원 받지 못할 자였습니다. 이 사실이 그를 깊은 절망으로 몰아갔을 수 있습니다. 마태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임을 누구보다도 깊이 생각하고 깨달아서 마태복음을 쓴 것이 결코 우연히 아닐 것입니다.

 

PART II 내면의 소원이 불타오름(14b)

세리 마태 속에서 타올랐던 소원

v14절에는 흥미롭게도 그리스어 두 가지 시제가 혼용해서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나가시다가“,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따르라‘ ’하시니‘는 다 현재시제로 쓰여 있습니다. 이는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았다’, ‘일어나’, ‘따르니라’는 다른 시제로 다른 시제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그리스어 시제는 그 시기를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사실이 이미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시기는 불분명하여 시간을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사실이 이전에 이미 일어났다는 것을 말할 때 쓰는 시제입니다.

 

이 두 가지 시제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단 한 번 보고 부르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계속 보고 계셨습니다. 세리 마태 역시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서 설교하신 내용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깊이 생각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부르시기 전에 이미 일어나 있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도 불러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이 그의 내면에 불타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태의 내면을 보고 알고 계셨습니다. 한 번도 본 것이 아니라, 계속 보고 알고 계셨습니다. 비록 동족에게도 조롱받고 멸시 받는 세리이지만, 예수님과 같은 저런 분의 제자가 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예수님께 알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세리 마태가 이런 마음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요? 세리 마태의 근무지였던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지역에서 예수님은 많은 설교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멀리 외국에까지 퍼져나갔습니다. 당연히 세리 마태도 예수님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듣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지를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실 때, 단 한 번, 기이한 능력으로 사람을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는, 여러 번 그에게 나타나시고, 설교를 들을 기회를 주시고, 그들의 마음속에 소원을 일으키셨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만 봐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동생 안드레를 통해 이미 소개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 주시므로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물을 씻는 동안 설교를 듣게 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게 하시고 말씀의 능력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예수님께 나아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세리 마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를 한 번 보시고, 그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여러 말씀과 행하시는 일들이 듣고 보게 하심으로 그의 마음에 소원을 불러일으키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내면의 소원이 결여된 기계적 부르심이 아닙니다. 이는 스스로의 내면에 충만한 소원 가운데 부르시는 인격적인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으로 이를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부르시고자 작정하신 영혼을 오래 보고 계십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 사람들과 상황들을 통해 마음속에 소원을 불러일으키십니다. 우리 속에 타오르는 소원을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인격적 부르심입니다. 우리의 자발적 소원을 기뻐 받으십니다. 결코 기계적인, 강요된 부르심이 아닙니다. 이런 소원이 마태의 내면에 타 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태의 내면에 타오르는 소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침내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이는 마태에게 임한 부르심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PART III 내면의 기쁨으로 잔치함 (15~17)

세리 마태는 예수님의 인격적 만남과 부르심을 통해 그의 내면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하였습니다. 이 잔치에 많은 세리들과 창기들이 참여하였습니다. 마태의 내면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는 안정적이고, 쾌락을 따라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입을 가져오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날마다 잔치하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원했습니다. 그이 친구들, 세리와 창기들을 불러 함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 잔치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밀착해서 관찰하여 예수님의 동향을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눈앞에서 예수님이 세리와 창기들과 먹고 마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하지는 못하고, 제자들에게 투덜거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말을 바로 직접 들었던 마태는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9:13 “오직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호세아 6:6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은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이 구절을 생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무엇입니까?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에 대한 답을 하신 것입니다. 직접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는 마음으로 그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으로부터 회개의 심정이 충만한 자들입니다. 비록 그들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구원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은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거룩한 모양으로 하나님을 섬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 자들은 스스로를 의로운 자라고 여깁니다. 스스로를 건강한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는 예수님을 만난 참 된 기쁨이 없습니다. 세리 마태의 잔치하는 내면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상에서 마태의 내면의 변화를 따라 가며 그에게 임한 예수님의 부르심의 은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 과거 우리는 어떤 자였는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마태와 같이 이 세상의 현실에 매여 어찌할 줄 모르고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었지만, 그러한 능력이 없음에 울던 자였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의 상처 있는 내면을 치료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명인의 삶을 살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나에게 임한 이 귀한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도 마태처럼 마음에 기쁨으로 잔치하게 됩니다. 이 내면에 잔치하는 기쁨으로 한 주간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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