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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10:35~45
성경본문내용 킹제임스흠정역(그리스도 예수안에)
35.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무엇을 원하든지 선생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해 주시기 원하옵나이다, 하매
36.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하시니
37.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의 영광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편에 앉게 허락하옵소서, 하거늘
38.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시니
39.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할 수 있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참으로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고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침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오른편과 내 왼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니라. 다만 누구를 위해 그것이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그것을 받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41.열 제자가 그것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하거늘
42.예수님께서 그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방인들을 다스린다 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하고 그들의 큰 자들이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끼리는 그리하지 말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가장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할지니라.
45.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17-04-30

마가복음 10:35~45

 

지난 말씀 요약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 나온 부자 청년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구원론에 대해 배웠습니다. 예수님께 나온 부자 청년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말을 들들은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제자들 역시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죄인도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서론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섬김을 가르쳐 주시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 째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에 제자들은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반응은 그러할지라도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결코 실패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수 있지만 부활하셔서 이 땅에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제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왕국이 건설될 때,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제자들이 이들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섬김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섬기에 대해 배우고 은혜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섬김”에 대한 가르침

Point I 보상이 있는 섬김(v35~41)

영광을 구하는 두 제자

예수님의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자신들의 부탁을 들어 줄 것을 청원하였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은(20:20) 이들의 어머니가 직접 부탁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살로메로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언니가 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다른 제자들보다 이 점에서 있어 확실한 우위에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 있어 최대의 경쟁자는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주님” 되심을 고백한 제자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변화된 모습을 본 제자였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요구 사항이 무엇입니까? 37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선생님의 영광” 가운데서 좌우편 자리를 요구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주의 왕국”(마태복음 20:22)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요구한 것은 예수님께서 세우 실 나라에 서열 1, 2위 자리를 달라고 한 것입니다.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이들의 요구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시니” 예수님의 잔은 고난의 잔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모진 고난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자체가 예수님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십자가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셔야 했습니다. 이 죽음은 오직 이 땅에 오신 죄 없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만 가능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둘째, 자신들의 십자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39절에 보십시오. 그들이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다는 것은 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위해 죽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실제로 야고보는 제자들 중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죄수들을 가두어 놓는 밧모섬에서 늙어서까지 모진 고난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을 집필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를 이들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이 대답하는 순간에는 그들의 운명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단지 예수님께서 건설한 메시아 왕국을 위해 앞장서서 나가 싸울 자신이 있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광 가운데 그들은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에 앉을 것을 생각할 때, 그 정도의 희생을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영광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는 사람이 요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0절을 보십시오. “내 오른편과 내 왼편에 안즌 것은 내가 줄 것인 아니니라. 다만 누구를 위해 그것이 예비되었는지 그들이 그것을 받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좌우편 자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받을 보상에 대해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보상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잔을 마시고, 예수님의 세례에 동참한 뒤에 얻어 질 수 있는 것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좌우편 자리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잔을 마시고 예수님의 세례를 받은 자들을 위해 좌우편 자리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저와 여러분을 영광스럽게 대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좌우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주시고 대우해 주시며, 우리의 모든 고난에 대해 보상에 주시는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지금 수고와 고난과 섬김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 때, 우리에게 큰 위로가 임할 것입니다.

 

두 제자에 대한 다른 제자들의 반응

41절을 보십시오. “열 제자가 그것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하거늘” 이를 볼 때, 다른 제자들도 두 제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이 건설할 메시아 왕국에서 저마다의 지분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섬김, 계산된 섬김, 보상이 먼저 주장되는 섬기는 예수님이 보실 때 진정한 섬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정한 섬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Point II 뒤집혀진 섬김(v42~44)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

4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방인들을 다스린다 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하고 그들의 큰 자들이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통치와 그들이 요구하는 섬김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 전후의 정치적 현실을 통해 제자들은 이방인들의 왕들이 그들에게 어떤 삶을 요구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왕은 헬라 문화를 피식민지에 전파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복지에 알렉산드리아 도시들을 건설하였습니다. 알렉산더 왕이 32세의 나이에 열병에 죽자 네 명의 장군들이 대 제국을 나누어 통치하였습니다. 이집트와 시리아에 자리 잡은 두 명의 장군이 세운 나라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습니다. 헬라 문화를 강요하였습니다. 반대하는 세력들을 죽이고 노예로 잡아갔습니다. 레슬링 경기를 위해 젊은이들은 나체로 경기를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할례를 받은 사실이 알려질 때, 유대 젊은이들은 심한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또한 시리아를 다스리고 있던 왕국이 침공하여 헬라화를 강요하며 성전에 돼지피를 뿌렸습니다. 성스러운 신전을 모욕한 것입니다. 독립 투쟁을 통해 70년간의 자유롭게 살았지만 다시 외세의 침략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로마의 세력권 안에 들어갔습니다. 로마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잡아 십자가에 죽여 매달아 두었습니다. 로마에서 요구하는 살인적인 세금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빈곤해졌습니다. 제자들은 이방 나라의 왕들이 그들에게 어떤 삶을 강요하는 지, 어떤 복종을 요구하는 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힘없는 나라 백성의 설움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섬김은 “복종”이었습니다. 종과 같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의 개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는 섬김

그러나 예수님의 섬김에 대한 가르침은 다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과 다른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혁명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과 다른 뒤집어진 가르침이었습니다. 43~44절을 보십시오. “너희끼리는 그리하지 말지니 너희 가군데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가장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지니라” 세상 어디에도 이런 가르침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만이 이런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 시대 세상이 요구하는 가르침이 반대됩니다. 이는 자신이 가진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낮아지는 것입니다. 아마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섬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런 섬김을 요구하셨습니다.

 

섬김의 삶의 실제

43절과 44절은 같은 의미를 가진 평행 구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하신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부분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두 단어입니다.

 

첫째, 섬기는 자

“섬기는 자”는 그리스어로 “디아코노스”입니다. 이 말이 영어로 “디콘” 집사라는 의미로 번역되었습니다. 집사는 교회의 일을 섬기는 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부실 때에 한 성령 안에서 부르셨습니다.(엡4:4)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은혜를 주셨습니다.(엡4:7) 그러므로 성도들은 각자에게 있는 은사를 따라 일하면 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의 생각을 버리고 자신이 교회의 일원으로서 교회의 덕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자신의 작은 노력과 헌신이 쓰임 받을 수 있으면 섬기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둘째, 종

예수님은 섬기는 자의 삶을 살 때, 종의 자세로 섬겨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바라지 않습니다. 종이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 일들을 했다고 해서 결코 마음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단어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사실은 마음에 어두운 마음이 있을 때,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억지로 섬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무리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섬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작은 것을 찾아 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섬기는 삶입니다.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섬기는 살을 우리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삶에는 의로운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이고, 주님께서 자신의 할 바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령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성령님의 선물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하는 섬김은 세상의 섬김과는 다른 섬김입니다.

 

 

Point III 섬김의 본이 있는 섬김(v45)

45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이 문장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섬기야 할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섬기는 자로, 종으로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까? 이는 우리 주님께서 먼저 그런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당연히 예수님의 삶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본이 되는 삶을 사셨습니까?

첫째, “사람의 아들“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과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신 사람이라는 인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신성이 강조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둘째, “대속물

대속물의 개념은 재산이나 신분적인 상태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대가를 지불하고 재산을 복원해 주거나 자유를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물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과거 죄의 종, 죽음의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우리의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분의 흘린 피로써 우리를 사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7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에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여 오셨습니다. 냄새 나는 죄인들을 끝까지 섬겨 주셨습니다.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빌립보서 2:5~11절)

빌립보서 2:5~11절을 이 사실을 보다 더 선명하게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섬김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가르침은 첫째, 보상이 있는 섬김이었습니다. 둘째, 세상과 다른 뒤집어진 섬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 자신이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섬김이 우리 삶에 적용될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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