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17~31
우리는 지난 시간에 부활절을 기념하여 욥의 부활 신앙을 배웠습니다. 욥은 구약 시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부활 신앙은 신약 시대 우리와 동일한 부활 신앙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부활 신앙을 통해 위로와 유익을 가졌던 욥을 배웠습니다. 이 욥의 부활 신앙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역사하는 신앙이 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영생입니다. 이 영생은 뒤에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구원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영생과 구원은 같은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영생을 주제로 예수님과 부자 청년, 예수님과 제자들의 두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에서는 구원은 행위로 얻어질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대화에서는 구원은 은혜로 얻어진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이 두 대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구원론’을 가르치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과의 대화를 제자들은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더 깊이 있는 구원에 대한 가르침으로 인도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구원의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구원론”
PART I 구원론의 핵심은 예수님(v17~18)
예수님께 나온 부자 청년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 나왔습니다. “달려왔다”란 표현은 “급박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젊은이는 무릎을 끓었습니다. 이는 이 사람의 “간절함”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이까? 하매” 이 사람은 영생을 얻고자 했습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알고자 했습니다. 온 인류에게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아는 것 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영생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보다 더 큰 간절함은 얻습니다.
예수님께 나온 이 사람은 마태복음 19:20절을 참조해 볼 때, 나이가 20~29세 사이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8:22절에 의하면 부자였습니다. 누가복음 18:18절에 보면 이 젊은이는 또한 “치리자”, 영어로 “ruler”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주석가들은 이 젊은이가 당시 최고 종교 회의 기구였던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부유하고 헌신된 자면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
1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한 분 곧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선함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 말의 의도는 예수님께 나온 부자 청년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온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호칭에서 잘 들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여” “teacher”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을 주시는 주로 보지 않고 종교적인 선생으로 예수님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 단계에서, 이 보다 더 상위 단계인 구원과 영생의 문제를 논할 수가 없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18절에서 부자 청년에게 되묻은 질문의 요지는 “네가 선하다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아느냐?”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해야 할 모범 질문은 “선하신 주님이시여, 내가 당신을 믿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입니다. 예수님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 형벌을 받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 안에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PART II 행위 구원론?(v19~22)
율법(계명)을 어릴 적부터 준수했다고 자부한 부자 청년
19절을 보십시오. “네가,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하는 명령들을 아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십계명의 여섯 계명을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이까?” 질문에 대한 답을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계명)을 지키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레위기 18:5 “그런즉 너희는 내 법규와 내 법도를 지킬지니 사람이 그것들을 행하면 그것들 가운데서 살리라. 나는 {주}니라.” 20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준수하였나이다” 부자 청년은 율법을 어려서부터 잘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율법(계명)을 준수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신 예수님
부자 청년의 이 대답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그를 사랑하사 그에게 이르시되,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길로 가서 네게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시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청년이 슬퍼하여 근심하며 갔습니다. 이 부자 청년이 떠나간 이유는 심히 많은 재산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과 그가 가진 소유에서 소유를 택하였습니다. 마태복음 6:24절에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이 주인을 미워하고 저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이 주인을 떠받들고 저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부자 청년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제1계명과 “어떠한 우상도 두지 말라”는 제2계명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실상은 율법(계명)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이를 부자 청년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자 청년들과 동일한 유대교적 사고에 젖어 있는 제자들
23절부터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재물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말씀하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이 말씀에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부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지에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구원, 영생을 얻기 어려운 이유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예수님 당시 낙타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동물이었습니다. 또한 바늘귀는 그들의 상식에 가장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속담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불가능”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진 소유를 신뢰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이에 제자들이 극도로 놀라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립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요?” 제자들이 극도로 놀라다는 사실이, 제자들 또한 부자 청년의 구원관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재물이 많고 부자가 되는 것을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관원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생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자신이 더 율법적인 구원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부자 청년과 제자들의 공통점은 영생과 구원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유대교적 이해를 벗어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PART III 은혜 구원론!(v29~31)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 은혜임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을 바라보시며 이르시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시니라.” 인간의 그 어떤 행위로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가능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구원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원수로 행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공로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구원 받은 자의 태도를 가르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이 말에 제자들의 태도는 예수님 안에 있음을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헛된 자부심이 일어났습니다. 부자 청년은 자신의 부를 버리지 못하여서 예수님을 따르는데 실패했지만, 자신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의 삶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28~30절에서 영생, 구원을 얻은 자의 보상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구원함을 얻은 자는 이 시대에 보상을 받습니다. 이 보상은 핍박과 함께 옵니다. 이 보상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인해 얻게 되는 영적인 축복을 의미합니다. 또한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31절에서는 제자들의 헛된 자부심에 대해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나 처음인 자로서 마지막이 되고 마지막인 자로서 처음이 될 자가 많으니라, 하시니라.” 마태는 이 말씀에 뒤에 이어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더하였습니다. 마태는 이러한 예수님의 교훈 뒤에 한 가지 교훈을 추가했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은 일꾼들을 불러서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그 일꾼들은 포도원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마침내 저녁이 되어 임금을 계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먼저 온 일꾼부터 나중에 온 일꾼까지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먼저 온 일꾼은 늦게 온 일꾼과 같은 돈을 받고 불평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고생했지만 나중에 와서 몇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과 똑같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그에게 불평하지 말고 그의 것이나 잘 챙기라고 말했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과 은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부름을 받은 자의 태도는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결코 남과 비교해서 헛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헛된 자부심은 사람을 넘어지게 할 것입니다. 처음 부르심을 받은 자가 나중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정리해보면 예수님은 부자 청년과의 대화를 통해 제자들에게 구원 받는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구원론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구원 받은 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 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바른 구원론 위에 바르게 서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구원 받은 자의 바른 태도는 오직 감사임을 알고, 늘 헛된 자부심을 경계할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