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마가복음을 잘 끝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는 예수님의 생애를 처음부터 공부하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에서 공부한 부분은 그대로 두고, 다른 복음서에 있는 내용을 시간 순으로 함께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사 복음서의 풍성한 내용을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합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에 대한 족보가 세 개가 나옵니다. 요한복음과 누가복음,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복음서에는 저작 의도와 수신자에 따라 족보의 강조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는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위해 쓰여 졌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복음서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만민의 왕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왕이신 예수님
Point I 유대인의 왕
사복음서의 서로 다른 강조점
복음서에서는 각각의 강조점이 있습니다. 이 강조점이 예수님에 대한 한 면을 비춰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족보는 첫 사람 아담까지 올라갑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로마인들에게 쓰여 진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보다는 예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4복음서가 서로 다른 면을 강조하지만 각각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서를 읽을 때 이런 복음서의 강조점을 잘 이해할 때 말씀이 주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를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왕가의 혈통
그러면 어떤 점에서 예수님은 왕이십니까? 예수님은 왕가의 계보를 따라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철저한 왕의 계보를 따라 족보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족보는 혈통적 족보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솔로몬과 나단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과 나단 모두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왕자들입니다. 역대상 3:5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동일하나 솔로몬과 나단에서 분리되어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3:31절에는 다윗의 아들로서 나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솔로몬이 나오고 있습니다. 솔로몬으로부터의 왕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은 왕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begot vs born
족보를 보면 우리말 ‘낳고‘를 영어 ’beget’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6절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다’라고 할 때는 ‘born’이란 단어를 단어하고 있습니다. ‘born’은 육체적으로 ‘낳다‘입니다. 그러면 ’beget’은 무엇입니까? 어떤 일이나 임무, 신분의 상태를 대신하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계속해서 ‘beget’ 의 과거형 ‘begot를 사용하다 마지막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born’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에서의 ‘낳다’는 말은 혈통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신 어떤 권리를 장자로서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왕가를 위는 왕위 계승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분적으로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를 두 가지 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다윗과 나단의 차이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낳다‘의 영어 표현 ’begot’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마태는 신분적으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 되심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Point II 만왕의 왕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시지만 또한 만왕의 왕이십니다. 마태는 이를 족보에서 분명히 밝혀 두고 있습니다. 그 근거 구절은 v1과 v17절입니다. 두 구절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그리스도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
구약에는 많은 언약이 나옵니다. 이 언약들은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두 종류의 언약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한 종류는 은혜, 또는 약속 언약입니다. 이는 무조건적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약속을 성취해 가시는 언약입니다. 이는 창세기 15장 햇불 언약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15:9~17절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 이삭의 탄생을 의심하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을 체결하시는 방법이 특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암송아지와 암염소와 숫양을 취해 둘로 나누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v12절에서 아브라함이 깊은 잠에 빠지자 하나님께서 v17절에 그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이 언약의 배경은 아브라함 시대의 정치적 언약 체결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큰 세력을 가진 왕이 있습니다. 작은 나라의 왕들은 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러면 이 충성의 표시로 언약식이 거행됩니다. 먼저 짐승들을 잡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둘로 쪼깨고 언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이 그 사이를 지나갑니다. 이는 언약을 깨뜨리면 둘로 쪼개진 동물들과 같이 그런 벌을 받겠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세력이 큰 왕이 쪼개진 동물들 사이로 지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가야 할 언약 대상자들은 힘이 약한 왕들입니다. 충성을 맹세한 왕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자신이 충성할 맹세한 왕에게 불평이나 험담이나 반란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들과 그의 가족들 신하들은 마땅히 둘로 쪼개져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잠들게 하신 후 몸소 그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그 언약을 이루시겠다는 말입니다. 만약 어기면 하나님께서 마땅히 쪼개지는 형벌을 받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맺은 이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관계없습니다. 조건적이지도 않습니다. 이는 일방적 은혜요 약속입니다. 이 언약은 이 땅에 있지 않고 천상의 가나안 근거를 둔 언약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언약입니다.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 언약과 그리스도 예수에 의한 언약의 성취적인 면에서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언약은 이 땅에 근거를 둔 언약이 아닙니다. 이는 조건적이지 않습니다. 이 언약은 우리의 영적인 구원과 관련된 언약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해 취해 이루어 가시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 안에서 믿음으로 온 만민이 구원을 얻습니다.
네 여인을 족보에 기록한 마태의 의도
특별히 마태의 족보에는 누가복음의 족보와는 다른 이방의 네 여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 다말입니다.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그는 자신의 기업을 이을 아들을 낳기 위해서 자신의 시아버지를 속여 베레스를 낳습니다. 둘째 라합입니다. 라합은 이방의 기생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리고 공격 때 살아남은 이방여인이었는데 예수님의 왕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셋째는 룻입니다. 룻 또한 모압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가 보아스와 결혼해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입니다. 마태는 솔로몬의 어머니나 다윗의 아내라고 기록하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야는 헷 족속입니다. 그는 이방인입니다. 그러므로 바세바 또한 이방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다말은 비정상적으로 아들을 낳았고 라합은 기생이며 바세바는 다윗이 죄 가운데 취한 아내입니다. 이 여성들을 족복에 넣은 마태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는 아브라함 다윗의 언약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 어떠한 죄인이라도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Point III 완전한 왕
이제 마태는 예수님을 완전한 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점에서 완전한 왕이 되십니까?
인쿠르즈구조
마태복음 V1절은 우리말 성경이 아닌 영어성경 흠정역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다윗, 아브라함으로 순서로 쓰여져 있습니다. V17절에는 아브라함, 다윗, 예수님 순서로 쓰여져 있습니다. 마태는 족보의 시작과 끝을 아브라함, 다윗, 예수님이 대칭되도록 하여 족보를 싸고 있습니다. 이를 성경의 인쿠르즈구조라고 부릅니다. 안으로 싸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태는 이 구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완전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4의 수가 세 번 강조
마태는 V17절에서 14의 수를 세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7은 완전수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두 번 곱하면 14가 됩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두 번 확보되는 결과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마태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까지 14대를 맞추기 위해 역대상 3장에 나타나 있는 왕의 족보의 세 왕, 즉 아하시아, 요아스, 아마샤등을 빼버렸다. 또한 마태복음 1장 11절에서 여호야김을 빼고 마태는 모든 대수가 14대씩 세 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족보를 세어보면 모두 41대 밖에 안 되는데 마태는 42대로 계산하여 말하고 있다. 계산의 밝은 세리 출신인 마태가 산수 계산을 못해서였을까? 그러나 족보를 자세히 보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14대요"(마1:17)라고 설명하여 다윗의 이름을 두 번씩 계산하여 42대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마태가 강조한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영원한 왕인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다윗은 불완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왕이 되심을 마태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약 및 결론
마태복음의 족보의 강조점은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의 구원의 왕이 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완전한 왕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구한 왕이었습니다. 자신의 뜻을 따라 백성들을 통치한 왕들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전히 허물과 죄를 남긴 불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그 백성들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허물과 죄도 없는 완전한 왕이 되십니다.
오늘 이 왕이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또한 이 땅에 재림하셔서 그 백성들을 다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