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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5:1~20

본문: 마가복음 5:1~20

 

우리는 자연과 영적 세계와 질병과 사망을 다스리시는 능력의 예수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마가는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자연을 다스리시는 능력의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의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의 자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영적인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에 대해 배워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에 대해 반응하는 믿음의 자태를 배워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과 믿음의 자태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

v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은 풍랑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을 경험한 후, 가다랴 사람들의 지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가다랴 지역이 어디인가는 여러 주장들이 있습니다. 먼저 가다랴 지명을 가진 곳은 갈릴리 호수에서 동남쪽으로 30마일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과연 예수님께서 그 곳까지 갔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다른 주장은 가다랴은 호수 근처의 작은 마을이라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마태는 같은 사건을 기록한 8:28절에서 게르게스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가능성은 “거라사”라는 지명이 갈릴리 동쪽 해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 즉 “케르사”(Kersa)와 동일 지역이라는 생각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40km 높이 정도의 절벽과 옛 무덤들이 있다고 합니다. 마가는 이 지역을 가다랴 지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내린 게르게스 지역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포함한 지명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쨌든 이 지방은 로마인들에 의해 10개의 도시가 세워진 “데가볼리”(20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 분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함께 살았던 곳이었음이 분명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배에 내리실 때, 부정한 영 들린 사람이 즉시 무덤들에서 나와 예수님 일행을 만났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뭍으로 나아갈 때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은 마귀 들린 두 사람이 무덤에서 나오다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실제로 부정한 영 들린 두 사람이 예수님 일행이 무덤을 지나가실 때, 마주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시간적으로는 어둠이 여전히 지면을 덮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은 날이 저물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갔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무덤들은 우리와는 달리 석회암을 파서 동굴을 만들고 거기에 시체를 안치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거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악한 영에 사로잡혀 사는 자는 두 명이었지만, 그 중에 한 명이 대표로 기술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의 삶을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을 종합해 보면 이들은 오래 동안 마귀들에 들려 옷도 입지 아니하고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동굴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가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발에 족새를 채우고 사슬로 그를 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번번히 사슬을 끊고 족쇄를 산산조각 내었습니다. 늘 밤낮으로 산이나 무덤에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베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고립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자신들의 몸을 상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마귀에 의해 인격이 사로잡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이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으로는 간절히 정상적인 삶을 살기를 희망하지만, 자신의 간절한 소원과는 다르게 자신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속의 죄는 우리의 소원과는 다르게 우리 삶을 인도해 갑니다. 이를 바울이 로마서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14~26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율법은 영적이나 나는 육신적이어서 죄 아래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인정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 즉 그것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내가 미워하는 것 즉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그런즉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율법에 동의하노니 그런즉 이제 그것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지는 내가 찾지 못하노라.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원치 아니하는 악을 곧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이제 내개 원치 아니하는 악을 곧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이제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노니 곧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들 안에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악한 영, 마귀들에 사로잡힌 자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는 삶을 사는 것과 같이, 죄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자라는 점에서 동일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경배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여, 내가 간청하건대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6절에서 예수님을 경배했다는 표현은 예수님 앞에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 마귀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을 가진 자로서 경배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지적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말은 히브리어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내 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하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괴롭게 하다“의 의미는 고문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8절에서 예수님께서 악한 영들에게 나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악한 영들은 돼지들에게로 들어가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이상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악한 영들 또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고문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께 악한 영들은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물질 세상뿐만 아니라 영적 세계도 창조하신 주이십니다. 이 주님께서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악한 영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의 주이십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본 사람들의 믿음의 자태

(1) 예수님이 떠나기를 구하는 사람들

돼지를 치던 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즉시 도망쳐서 마을과 그 주변에 있는 촌으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와서 예수님과 귀신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 단정히 옷을 입고 앉아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전에 그 사람이 쇠사슬로도 묶어놓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체로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휘두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 단정한 옷차림으로 주님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광경에 심히 놀라고 또 두려워했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명백한 큰 차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지역의 주민들은 다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입지 않으려고 예수님께 그곳을 떠나달라고 요청했습니다(16-17).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또 주님을 알만한 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인 손실뿐이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가서 내가 만난 주를 만나보라고 외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변화된 여인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 그들과 머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여자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 때문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직접 그분의 말을 들었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신 줄 알기 때문이라, 하였더라.”

 

이 세상에는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변화된 사람을 보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사람과 여전히 물질 세상에만 관심이 있는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증거는 분명합니다. 그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자의 삶의 완전한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마귀에 고생하다 풀려난 사람의 변화된 삶을 보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손해와 앞으로의 손해를 생각한다면 이 세상의 가치관에 매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 돈이 제일의 가치관임을 보여줍니다.

 

불신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나타난 사람들의 변화를 믿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 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관이 순식간에 버려지고 바뀌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이런 기적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가 그동안 쌓아 올린 인간적인 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이런 영적인 변화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평가할 뿐입니다. 이것이 불신자의 자태입니다.

 

(2) 예수님의 만난 자의 믿음의 자태

첫째,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결단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자 마귀 드렸던 사람이 예수님께 간구하여 자기도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것이 마귀 들린 자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나던 일들에 대해 생각했고, 예수님이 어떤 분임을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의 마음에 예수님을 따라고자 하는 믿음의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둘째,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

이에 대해 예수님은 가족과 친지들에게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가족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귀 들린 자에 대해 가족보다도 더 마음을 쓰고 안타까워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런 가족들에게 온전한 모습을 나타나 자체가 큰 위로입니다. 그 자체의 변화된 모습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자의 가장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구원 받은 자의 자연스런 믿음의 행동입니다.

 

이 광인은 예수님을 떠나 데가볼리 전 지역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간증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전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존재인 마귀들을 다스리고 통제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바른 믿음의 자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면서, 이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가족과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우리를 사탄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의 자태입니다.

 

이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의 자태는 먼저 과거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어떤 자였던가를 깊이 돌아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있을 때의 가치관과 삶을 버리고, 복음 안에서 바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은 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며, 가족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서 삶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나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가족과 세상을 향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신성, 영적 세계를 경험하고 아는 자의 바른 믿음의 자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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