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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13:24-37
성경본문내용 24.그러나 그 날들에 그 환난 뒤에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고
25.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가지고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그들이 보리라.
27.또 그때에 그가 자기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의 선택 받은 자들을 땅의 맨 끝 지역에서 하늘의 맨 끝 지역까지 사방에서 함께 모으리라.
28.이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것의 가지가 아직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나니
29.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가 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 그때가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을 아느니라.
30.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리라.
31.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아들]도 알지 못하며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너희는 주의하라. 깨어 기도하라. 그때가 언제인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
34.사람의 [아들]은 마치 자기 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할 때에 자기 종들에게 권위를 주어 각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는 어떤 사람과 같나니
35.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어느 때에 올는지 저물 때일지, 한밤중일지, 닭 울 때일지,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


36.그가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이르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17-08-20

마가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종말론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전 파괴를 예언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그 때가 언제이며, 그에 앞서 어떤 표적들이 있는 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전 파괴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세상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성전 파괴를 통해 세상 종말을 말씀하셨습니다. 성전 파괴와 같은 성격이지만, 앞으로 있을 전무후무한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전 파괴 때에 일어난 여러 표적들과 같은 성격의 표적들이 이 세상의 종말에도 일어남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 파괴를 앞두고 로마의 공격 소문들과, 각종 유행병들, 자연이변, 제자들과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직 예루살렘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종말의 때에는,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각종 유행병, 자연이변,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핍박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여러 시간에 걸쳐 배웠습니다.

 

오늘은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에 성도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종말의 때, 성도의 책임

 

26-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성도의 휴거가 일어납니다. 휴거란 채어 올라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나면 세상의 맨 끝 지역에서 하늘의 맨 끝 지역까지 사방에서 성도들에서 성도를 모읍니다. 이는 이미 복음이 이 세상 끝까지 전하여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때에 성도들은 공중으로 올라가 오시는 예수님을 마중합니다.

 

PART I “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v26-30)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 성도의 책임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무화과나무와 이스라엘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비유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 주제만을 도출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한 이 비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아직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과 같이, 종말의 징조들을 보고 종말의 때를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종말에 있을 표적들에 배웠습니다. 전쟁의 소문과 각종 전염병들의 창궐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미혹, 성도들에 대해 핍박과 환란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표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고통의 시작이지 끝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표적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이후로 역사상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표적은 맞지만, 이것들만으로 종말의 표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렸습니다. 좀 더 분명한 표적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적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의 유사합니다. 큰 상처 가운데 다시 일어납니다. 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이 자는 정치와 종교를 장악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큰 세력을 얻고, 그의 다스림 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종교를 강요할 것입니다. 그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할 것입니다.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핍박을 가할 것입니다. 이 핍박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날 핍박입니다. 이런 자가 아직은 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 출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날 기상이변입니다. 지금도 여러 기상이변으로 이해 전 세계가 고통을 당합니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므로 인해 여러 기상 이변으로 인해 전 세계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기상이변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해와 달에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이로 인해 지구는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한 기상 재앙을 경험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국지적으로 일어나는 표적들을 보고 그 때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다른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런 환란이 임하였을 때,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탈출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사는 성도들 또한 종말의 표적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하나의 표적은 교회의 배교입니다. 르네상스 이후로 학문의 중심은 사람으로 옮겨갔습니다. 성경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겸손한 태도가 아닌, 사람이 성경 위에서 성경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성경에 대한 고등 비평이 가해졌습니다. 성경이 성령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이 사람의 창작물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역사적인 관점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학문이 일어납니다.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을 문법적, 기술의 상이성, 어투 등을 비교하는 형태 비평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성경을 기록하다 보니 성경에 여러 오류들이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보전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들을 배격하는 주장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발상이 독일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런 인본주의적, 비성경적, 비신앙적 생각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만 믿겠다는 생각이 자유주의 신학의 기초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무오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기적,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니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맞서 이런 다섯 가지의 근본주의들을 수호하겠다는 주장이 일어났지만, 1930년대에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에 패배하였습니다.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대립 속에 양자의 중간에 위치한 복음주의란 세력이 출현하였습니다. 이들은 두 세력의 중간 지대에서 타협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서 중간은 없습니다. 곧 이들은 자유적인 생각들에 오염되어 갔습니다. 복음주의적인 교회 속에서 은사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보다는 건강과 부를 위한 설교가 유행하였습니다. 어떻게 교회를 수적으로, 양적으로 성장시킬까에 초점을 맞추어 세상의 경영 기술, 마케팅이 교회 내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에큐메니컬 운동이라는 세계 종교 통합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빌리 그래함이라는 한 때 유명했던 부흥사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유명한 신학교 교수, 목사들이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대놓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 도도히 흘러가는 기독교의 배교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배교는 세상의 종말의 한 표적이 됩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리라.” 시대의 표적들을 살펴 그 때를 아는 것이 성도의 책임입니다. 예수님 부활 이후, 아마도 제자들은 성도들에게 이를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잘  살피고, 마음에 새긴 자들은 예루살렘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세상의 뉴스를 보면서, 종말의 때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PART II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v31)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예수님은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누가복음 19:43-44

“43.날들이 네게 이르리니 그때에 네 원수들이 네 주위에 도랑을 파고 너를 둘러싸서 사면으로 가두며 44.또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땅에 쓰러뜨리고 네 안에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를 돌아보는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로마군은 난공불락의 요새 예루살렘 성을 쉽게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을 에워싸고 압박하며 고사 작전을 폈다. 물줄기를 끊고, 식량보급로를 차단했다. 로마군은 성벽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 질렀습니다. 성전이 불에 탐으로 인해 금으로 입혔던 것이 녹아 내려 벽과 바닥에 스며들었고, 군인들이 그 금을 긁어내고자 말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 파괴가 자행되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성전 파괴에서 성취되었다면, 세상의 종말의 때에도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자꾸 자기 생각을 넣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종말 예언은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지만, 이는 다 성취될 것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요한계시록 3:10) 또한 환란의 때에 성도를 보호해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또한 믿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종말의 때에, 성도의 태도입니다.

 

PART III 깨어 있으라”(v32-37)

32-37절까지는 예수님의 오시는 때를 아무도 모른다는 주제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확실하지는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모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라는 표현을 세 번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강조입니다. 종말의 때에,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의 의미

성경이 깨어 있으라라고 할 때믄 첫째, 세상 죄에서 돌이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따라 살면서, 죄가 주는 잠시의 기쁨에 만족하지 말고, 영원한 삶을 동경하므로 자신의 행위를 지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종말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종말과 관련되어 깨어 있으라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 개인적으로 자신의 소명을 바르게 깨닫고, 이를 행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수준에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나 개인만 잘 먹고 잘 사면되지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바르게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할 때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이 삶을 살아갈 때, 그 삶이 세상의 빛이 됩니다. 하나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빛으로 빛나는 삶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바르게 깨닫지 못할 때, 이는 깨어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25장이 종말론에 관한 말씀입니다. 24장은 마가복음 13장의 내용과 같습니다. 그러나 25장에서 세 가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는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들은 종말과 관련 된 비유들입니다. 그 중에서 열 처녀 비유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열 처녀가 신랑을 기다리며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였습니다. 다섯 처녀는 지혜롭게 등불과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미련하게 표현된 다섯 처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신랑이 올 때, 미련한 다섯 처녀의 기름이 부족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의 등불이 꺼졌으니 우리에게 너희 기름을 나누어 주라, 하거늘

9.지혜로운 자들이 응답하여 이르되, 그리할 수 없노라. 우리와 너희가 함께 쓰기에 부족할까 염려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매“(마태복음 25:8-9)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열 처녀 모두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련하게 표현 된 다섯 처녀는 그 일에 소홀하였습니다. 기름을 나누어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자신의 사명을 생각하면서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항상 자신의 사명을 생각하면서, 이를 어떻게 이루어 갈까를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깨어 있는 모습입니다.

 

달란트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의 종류는 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칭찬 받은 종들은 주님께 받은 달란트로 열심히 이득을 남겼습니다. 이는 자신의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악한 종은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사명을 알면서도,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습니까? 자신의 사명을 알고 행하는 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개인에게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교회에도 적용이 됩니다. 이 시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시대마다 영적인 도전을 받았습니다. 기독교 초기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해, 또한 16세기는 구원론에 대해 도전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때에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교회를 사용하셔서 이런 영적인 도전에 승리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배교의 시대입니다. 교회가 영적인 배교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가는 시대입니다. 무엇이 바른 교리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 시대에 교회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신부로서의 거룩함과 순결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깨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13장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종말론을 배웠습니다. 특별히, 종말의 때에 성도의 책임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종말의 때를 살지 못하고 죽으면 어떠한가?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대 환란의 때를 경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가르침을 주신 후로 벌써 2천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에 수 많은 성도들이 종말의 가르침을 따라 살다 주님께로 갔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상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히브리서 11:6) 우리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우리의 삶에 대해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종말 신앙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환란을 겪지 않는 것도 축복입니다. 그러나 더 축복은 종말의 때에, 바른 신앙의 자세로 산 것에 대해 보상을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종말의 때에 성도의 책임을 배웠습니다.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는 종말의 표적들을 잘 관찰하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어야 합니다. 그 일들이 다 성취될 것을 확고하게 믿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이 시대에 주신 사명을 알고,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의 책임입니다. 이런 책임을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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