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일주일간의 행적 중 화요일에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공부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일요일 예루살렘에 영광스럽게 입성하셨습니다.
앞으로 있을 예루살렘 멸망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월요일에는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과 권위에 대해 논쟁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 지에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의 권위 거부: 역사적 사실과 경고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질문한 배경
“그분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그 안에서 파는 자들과 사는 자들을 내쫓기 시작하시며(19:45)”
구약의 유대교인은 일 년에 세번, 유월절, 칠칠절(오순절), 장막절에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월절 희생 제물로 예루살렘에 도착한 양의 숫자를 256,500 마리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양 한 마리당 10명이 나누어 먹었을 경우,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수는 대략 2백만명이 넘습니다. 요세푸스는 절기를 위하여 2,700,000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학자들은 요세푸스의 이 기록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엄청난 수의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성전을 방문한 것은 확실합니다.
당연히, 성전에서의 비즈니스는 큰 돈벌이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먼 곳에서 방문한 순례자들은 희생제물을 시세보다도 훨씬 비싸게 주고 사야했습니다. 성전세는 로마의 황제가 새겨진 로마의 은화도 아니고, 이스라엘과 중동에서 주로 쓰이던 ‘세겔’도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공식 인정 하에 두로에서 제조된 은화로만 받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대제사장들의 비호아래 환전상들이 이방인들의 뜰에서 큰 이익을 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대제상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우두머리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47). 그들의 사업이 예수님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걸린 문제에 민감합니다. 그들의 사업을 망하게 하려는 자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대제사장직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로마에 바칠 뇌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 실수를 유도하여 말꼬투리를 잡아 예수님을 죽일 명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설득력 있는 이유를 만들어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질문한 자들
그 무렵의 어느 날 그분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며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와서
수제사장들
수제자장은 한 명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수제장들은 복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리스 영향권 아래 있던 시절 대제사장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대제사장은 그리스 세력의 정치적 이해 관계에 의해 임명되었습니다. 그리스 세력에 이어 이스라엘을 통치한 로마도 같은 정책을 사용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로마에 의해 임명되었습니다. 59대 대제사장은 안나스는 그렇게 로마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입니다. 아론의 남계를 계승한 자가 아닙니다. 그는 정치 수완이 탁월한 자였습니다. 안나스는 59대 대 제사장으로 서기 6년에서 15년까지 약 9년간 대 제사장 노릇을 한 자였습니다. 그를 이어 그의 첫째 아들이 2년간, 예수님 당시 그의 사위, 가야바가 18년간 대제사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이후로도 그의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아들들이 대제사장직을 맡으며, 안나스 가문은 무려 35년간 대제상직을 수행했습니다. 수제사장이 복수로 기록된 것은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지만, 그를 막후에서 지휘하고 있는 자는 안나스였기때문입니다.
서기관들
서기관들은 성경을 필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서기관들은 경건주의 자들, 바리새파였습니다. 이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성경을 모세오경만 인정했던 수제사장들을 지지하는 사두개파와 대립하였습니다.
대산헤드린
산헤드린은 유대인들의 자치기구였습니다. 로마는 피정복민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했습니다. 다만 사형권만은 로마에 의해 집행되었습니다. 지역마다 23인을 중심으로 한 산헤드린공회가 있어 지역의 현안들을 처리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대산헤드린 공회가 있었는데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은 1인의 대제사장(의장)과. 제사장 계층의 사두개파 24명, 백성(각 지파)의 대표자들(장로들) 24인,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 22명, 총 70명의 공회원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종교 재판을 주관하며, 성전의 치안을 유지하는 문제들을 비롯해 종교문제, 세금문제, 민사형사 사건의 재판, 국정 일반에 관한 관건들을 의논하고 판결했습니다.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들을 행하느냐?”
이런 일들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사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슨 권위로 백성들의 찬양을 받으며 입성한지에 대해 따져 물어보고 있습니다. 또한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자들을 내쫓은 지에 대해 따져 물어보고 있습니다. 또한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는 지에 따져 물어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들은 정치적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에 있어서만큼은 한 몸처럼 움직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언급하신 이유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부터 왔느냐, 사람들에게서 났느냐? 하시매(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했습니다(요 1:29).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고 불로 세례를 준다고 말했습니다(마3:11). 예수님을 주라 부르며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마 3:1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메시아로 인정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신 대언자로 인정하면 자동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할 것입니다. 그들은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말 실수를 유도해서 자신을 죽일 명분을 쌓고자 했던 자들의 계략을 물리치셨습니다.
권위를 물었던 자들의 당혹감
예수님의 권위를 물었던 자들은 사실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이요 백성의 치리자들 중의 한 명이던 니고데모는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요3:2). 그들은 예수님이 마귀를 내어쫓아내자 바알세붑을 능력을 통해 그 일을 했한다고 하던 자들이었습니다(막3:22). 성전 안에서 눈먼 자들과 다리 저는 자들이 고침을 받자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자들이었습니다(마 21:14~15). 권위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서 나옵니다(고전4:19).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익히 보아 알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꼬투리를 잡고자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적인 능력을 보고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함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권위의 부정은 징계와 심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부정한 결과는 40년 뒤 예루살렘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2000년 동안 나라 잃은 백성으로 세계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백성의 슬픔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그 백성을 바로 인도해야 합니다. 만일 지도자가 이러한 사명을 잃고, 길을 잃으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해 파멸해 이르는 것과 같습니다(마 15:14). 소경 된 지도자들로 인해 백성마저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이 시대는 예수님의 그 어느 때보다 부인하는 시대임을 알아야 함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때는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과 다시 오심의 때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마지막 때 중에서도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우리는 마지막 때 중에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의 말세의 징조 중에는 많은 거짓 메시아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많은 거짓 선생들이 거짓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대적하는 세력이 일어납니다(요일2:22). 그리고 이 때에 우리는 그것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성경이 말하는 바른 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재림의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거짓 가르침을 분별해서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할 심판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그 분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들에게 임할 상급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출발은 작아 보이지만 그 끝은 정말 엄청난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종교적 고찰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행위가 단순한 개인적 견해의 차이를 넘어서 전반적인 사회와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선택은 우리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세계에도 깊은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