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서론
요한의 메시지는 날카롭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했습니다. 불로 태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듣는 자들이 뒤흔들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무리에게서 이 질문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이것은 단순한 윤리적 질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민낯이 드러난 자리에서 터져 나온 애통의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질문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리고 그 질문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I. 말씀은 거울이다 — 내면의 실제가 드러난다 (vv. 7–9)
요한의 첫 마디는 충격적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이것은 사람들을 모욕하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선포되는 말씀이 거울이 될 때, 우리가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가 드러납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심판은 미래가 아닙니다.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는 소속의 안전장치는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씀 앞에서 인간이 의지하는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출신, 소속, 전통 — 어느 것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우리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선포되는 말씀이 하는 첫 번째 일입니다.
II. 드러남은 애통을 낳는다 — "무엇을 하리이까" (vv. 10–14)
그런데 요한의 메시지가 무리를 그냥 무너뜨리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무리가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이 질문이 세 번 반복됩니다. 무리가, 세리들이, 군인들이 각각 묻습니다.
이 질문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자신의 실제가 드러난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말씀이 거울이 되어 내면을 비출 때, 변명이 사라지고 애통이 남습니다.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다"가 아니라,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터져 나옵니다.
요한의 답은 구체적입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눠주라. 세리는 정해진 것 외에 거두지 말라. 군인은 강탈하지 말라. 이것은 도덕적 개선 목록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이 바뀐 자의 열매입니다. 회개의 증거입니다.
III. 애통의 끝은 그리스도다 — 성령이 이끄신다 (vv. 15–17)
그런데 요한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군중이 요한을 그리스도로 의심하던 바로 그 순간, 요한은 선언합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질문의 진짜 답은, 요한의 도덕적 지침에 있지 않습니다. 오실 그분 — 예수 그리스도 — 에게 있습니다. 요한은 그 질문을 받아서 그리스도께로 넘깁니다.
말씀이 우리의 실제를 드러낼 때, 우리는 상한 마음으로 돌이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바로 그 상한 마음을 통로 삼아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심판의 선포가 복음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결론
말씀은 거울입니다. 우리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헤롯처럼 그 음성을 가두어 버리거나, 무리처럼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묻거나.
그 질문이 나온다면, 그것은 이미 성령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오늘 말씀이 당신 안에 무엇을 드러냈습니까. 그 드러남 앞에서 당신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상한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오는 자를, 성령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