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찬송,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
서론
지난 시간 우리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난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천사는 태어나실 분의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 그 이름의 뜻은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원이라는 렌즈 안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은 단순히 개인의 위로가 아닙니다. 야곱과 같이 허물 많은 죄인을 향한 구원이며, 예수님 자신이 단번에 제물이 되심으로 이루신 완전한 구원이며, 왕좌에 앉으신 성자 하나님이 끝까지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흔들림 없는 구원입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들은 마리아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겠습니다.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는 서둘러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집 문을 들어서는 순간 엘리사벳이 외칩니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어찌 이런 일이 내게 있는가!"
그 한 마디에 마리아의 입이 열립니다.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리아의 찬송입니다.
이 찬송은 짧지만 깊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비천함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찬양이 진행될수록 시야가 넓어집니다. 자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연결되고, 그 역사는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리아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언약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오늘 우리는 이 찬송을 따라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아브라함 언약이 무엇이며 왜 일방적 은혜인지 보겠습니다.
둘째, 그 언약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긍휼하심과 능하심이라는 세 기둥 위에서 어떻게 수천 년을 버텨왔는지 보겠습니다.
셋째, 그 언약이 마리아의 태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먼저 맹세하셨다_ 아브라함 언약은 일방적 은혜 언약
마리아의 찬송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 혼이 주를 크게 높이고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마리아는 하나님을 "내 구원자"라고 부릅니다.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은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자신도 구원이 필요한 연약한 죄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4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에 관심을 두셨기 때문이라."
이 낮은 처지는 단순한 겸손이 아닙니다.
세상이 보지 않는 자리입니다. 아무 힘도 없고, 아무 자격도 없고, 아무 영향력도 없는 자리입니다.
마리아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자리를 보셨습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시선이 세상이 외면한 자리 위에 머물렀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제 창세기 15장으로 가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자고 하십니다. 짐승들을 쪼개어 마주 놓게 하십니다.
당시 언약을 맺을 때는 두 당사자가 함께 그 사이를 지나갑니다. "내가 이 약속을 어기면 이 짐승처럼 되겠다." 그런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5장을 보면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은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의 모습으로 그 사이를 지나가십니다.
왜입니까?
언약의 책임을 하나님 혼자 지시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실패해도, 이스라엘이 실패해도, 언약의 최종 책임은 하나님이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방적 은혜 언약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결국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하나님이 하신 맹세를 하나님 자신이 이루십니다. 인간이 언약을 깨뜨린 결과를 하나님이 직접 담당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찢기심으로 창세기 15장의 맹세가 갈보리에서 성취됩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내 구원자"라고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신다_ 언약을 지탱하는 하나님의 속성들;거룩하심, 긍휼하심, 그리고 능하심
마리아의 시선은 이제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능하신 분께서 큰일들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분의 이름이 거룩하시며 그분의 긍휼하심이 대대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이르나니."
마리아는 세 가지를 노래합니다. 거룩하심. 긍휼하심. 능하심.
먼저 거룩하심입니다.
거룩하심은 하나님이 우리와 전혀 다르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약속을 바꾸고, 손해가 되면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실 수도 없습니다. 그 거룩하심에서 공의가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을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 가지 질문의 반복입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실 것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진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지 않으셨습니다. 긍휼이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은 바알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 번이 아닙니다.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를 계속 보내셨습니다. 언약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서 성전이 불탔습니다. 백성이 사슬에 묶여 끌려갔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70년 후 하나님은 세계 최강의 제국을 움직이셔서 자기 백성을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세 번 모두 같은 답입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입니까? 거룩하심이 언약을 타협하지 못하게 했고, 긍휼하심이 언약을 포기하지 못하게 했으며, 능하심이 언약을 반드시 완성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 언약은 수천 년을 버텼습니다.
3. 드디어 그분이 오셨다_아브라암의 성취로 오신 예수님
마리아의 찬송은 마지막에 결정적인 전환을 맞습니다.
처음에는 "내 구원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노래합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긍휼을 기억하사 자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마리아는 깨닫기 시작합니다. 내 태 안의 이 아이는 단순히 나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55절에서 그 이유를 밝힙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영원히 말씀하신 것과 같도다."
답은 하나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홀로 맹세하신 언약, 수천 년 동안 거룩하심과 긍휼하심과 능하심으로 붙드신 언약, 그 언약이 이제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말합니다.
"씨라 하였으니 곧 그리스도라."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그 씨가 지금 마리아의 태 안에 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여인의 태 안에 찬송의 성취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입니다.
적용_마리아의 찬송이 나의 찬송이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습니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자리, 자격 없는 자리, 죄와 허물 가운데 있는 자리입니다.
오래 기도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자리. 다시 같은 죄를 지은 자리. 이제는 하나님도 나를 쓰시지 않겠다 싶은 자리. 마리아가 서 있던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셨습니다.
구원도 설명할 수 없고, 부르심도 설명할 수 없고, 사용하심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로만 설명됩니다.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자격을 먼저 보지 않으십니다. 언약을 보십니다.
창세기 15장의 깊은 밤, 혼자 지나가신 하나님. 수천 년 동안 거룩하심과 긍휼하심과 능하심으로 언약을 붙드신 하나님. 그 아들을 보내심으로 언약을 완성하신 하나님. 그 완성이 십자가였습니다. 하나님이 혼자 지나가신 그 밤의 맹세가 갈보리에서 피로 이행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마리아의 찬송의 마지막 단어는 "영원히"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시작된 언약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영원한 언약 안에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찬송은 나의 찬송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