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용감히
1. 서두 — 역사적 상황
여러분, 시편 60편에는 제목이 있습니다. 길어서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만, 오늘은 이 제목이 출발점입니다.
"다윗이 아람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울 때에 요압이 돌아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을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이니 이로 인해 교훈을 주기 위하여 지은 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다윗은 북쪽 전선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틈을 타 에돔이 남쪽을 기습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요압이 급파되어 만 이천 명을 쳐서 반격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에돔의 요새는 아직 건재합니다.
다윗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시를 씁니다.
2. 1절 — 믿었는데 왜입니까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내던져 흩으시고 우리를 기뻐하지 아니하셨사오나 오 친히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오소서."
히브리어 זְנַחְתָּנוּ(제나흐타누), "내던지셨다." 혐오하여 내팽개치다, 관계가 끊긴 것 같은 감각입니다. 그리고 "돌아오소서"의 히브리어 שׁוּב(슈브)는 선지서에서 회개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시기를 간구하는 데 그 동사를 쓴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절박한 언어인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단순한 낙심이 아닐 수 있습니다. 성경은 직접 말하지 않지만, 북쪽 전선에 주력을 집중한 사이 남부가 뚫렸다는 상황을 생각하면, 다윗이 느낀 당혹감은 단순한 군사적 패배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겨둔 자리에서 기습을 당한 것 같은 느낌, 그것이 1절의 언어 뒤에 있습니다.
성경은 그 피해 규모를 수치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2절과 3절의 언어가 그 무게를 전합니다.
"땅을 떨게 하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땅이 흔들리나이다."
"우리로 하여금 놀라게 하는 포도즙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나라의 기반이 흔들렸습니다. 단순한 국경 충돌이 아닙니다.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만큼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다윗은 피해 규모를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충격 속에 있는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진짜 고통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왔는가.
그런데 보십시오. 다윗은 이 고백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말을 걸고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내던지셨습니다(זְנַחְתָּנוּ, 제나흐타누)"라고 말하는 그 입이, 동시에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오소서(שׁוּבָה לָּנוּ, 슈바 라누)"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떠나신 것 같은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말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느낌이 좋을 때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떠나신 것 같은 바로 그 자리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3. 11–12절 — 헛됨과 용기 사이
본문 11절과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의 도움은 헛되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감히 행하리니."
이 두 문장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11절은 한계의 고백입니다. 요압이 만 이천 명을 쳤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그대로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의 끝에 다윗은 서 있습니다. 9절에서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나를 저 견고한 도시 안으로 데려갈까? 누가 나를 에돔 안으로 인도할까?"
많은 학자들은 이 "견고한 도시"를 후대의 페트라로 알려진 셀라와 연결해 이해합니다. 페트라는 붉은 사암 절벽을 깎아 만든 도시입니다. 들어가는 입구가 좁은 협곡 하나뿐입니다. 군대가 아무리 많아도 정면 공격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오바댜는 이 요새에 기댄 에돔의 교만을 이렇게 말합니다.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가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곳.
히브리어 מִי(미), "누가." 이 질문은 답을 기대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히브리어에서 מִי로 시작하는 물음은 종종 "아무도 없다"는 탄식이 질문의 형식을 빌린 것입니다. 전사 다윗이 스스로를 이끌림을 기다리는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11절 "사람의 도움은 헛되나이다"의 실제 무게입니다.
그런데 12절은 전혀 다른 언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감히 행하리니." 수동적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 전진입니다.
어떻게 이 반전이 가능합니까?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바뀌었습니다.
4. 동인 — 무엇이 이 반전을 만들었는가
12절 첫 단어입니다.
בֵּאלֹהִים(베엘로힘).
"하나님을 의지하여"로 번역되지만 원문은 더 깊습니다. 전치사 בְּ(베)는 "안에서", "안으로"입니다. 다윗이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자리를 옮긴 것입니다.
하나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6절에서 8절이 답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 속에서 이르시되… 내가 에돔 위로 내 신을 던지리라."
히브리어 דִּבֶּר(디베르), 완료형입니다.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정복 때, 발람의 예언 때 이미 선포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에돔은 이미 정복된 땅입니다. 그 난공불락의 요새가 하나님의 눈에는 이미 무너진 것입니다.
다윗은 그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안으로 자신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오 하나님이여, 우리를 내던지신 주께서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9절의 מִי(미)와 10절의 הֲלֹא(할로). 이것이 이 시의 핵심입니다. מִי(미)는 "아무도 없다"는 탄식이고, הֲלֹא(할로)는 긍정의 답을 기대하는 반문입니다. "당신이 아니시겠습니까?" 같은 절망이, 같은 입에서, 방향만 바뀐 것입니다.
문제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요새는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누가?"라고 묻던 입술이 "주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전환입니다.
절망에서 용기로의 전환은 감정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붙든 것입니다.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 안으로 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시 전쟁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안으로 들어간 자는 밖으로 나갑니다. 하나님 안에서 담대히 현실로 걸어 들어갑니다.
5. 결론 — 이미 하신 말씀
여러분, 다윗이 한 것을 정확하게 짚어보겠습니다.
그는 새로운 계시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을 지금 이 자리로 끌어왔습니다. 오래전에 선포된 그 말씀을, 난공불락의 요새 앞 이 막막한 자리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현실보다 더 실재하는 것으로 붙들었습니다.
여러분 앞에도 그 요새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뚫릴 것 같지 않은 그 상황. 오래 기도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그 문제. 그 앞에서 우리도 묻습니다. "누가 나를 데려갈까?" 그 질문을 들고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그리고 이미 기록된 말씀을 그 자리로 끌어오십시오.
새로운 음성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신 말씀을 지금 여기로 가져오는 것, 그 말씀 안으로 나 자신을 가져다 놓는 것 — 이것이 믿음의 실제 동작입니다.
이 시편에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이 시를 쓴 것은 전쟁이 끝나기 전이었습니다. 요새는 아직 그대로였고, 에돔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1장에 기록된 결과는 이렇습니다. 요압은 에돔에 육 개월을 머물렀고, 에돔 전역을 점령했습니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그 요새가 결국 무너진 것입니다.
시편 60편은 그 승리가 오기 전에 쓰인 믿음의 고백입니다. 결과를 보고 나서 부른 노래가 아닙니다. 아직 결과가 오지 않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보다 더 실재하는 것으로 붙든 사람의 노래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용감히 행할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을 믿고 내린 결정인데 오히려 일이 틀어진 경험이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께 말을 걸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까?
2. 내 앞에 있는 요새는 무엇입니까? 아무리 봐도 뚫릴 것 같지 않은 그 상황, 오래 기도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그 문제를 지금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3. 나는 지금 막막한 현실 앞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까?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요새를 바라보는 자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입니까?
4. 시편 60편은 승리가 오기 전에 쓰인 믿음의 고백입니다. 나는 결과가 보일 때만 하나님을 신뢰합니까, 아니면 아직 결과가 오지 않은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들 수 있습니까?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보다 더 실재하는 것으로 붙들어야 할 영역은 어디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