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8

그러나 그는

시편 59:1~17

밤이었다.

사울이 보낸 자들이 집을 에워쌌다. 문밖에 발소리가 있었다. 아침이 되면 죽는다. 다윗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 밤, 그는 하나님께 말을 걸었다.

어둠 속에 무언가 있었다.

소리는 들렸다. 그러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방향인지, 언제 움직일지 알 수 없었다. 정면에서 오는 위협은 그나마 견딜 수 있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어둠은 보이지 않았다. 있다는 것만 알았다. 어둠이 무서운 것은 어둠 자체가 아니다.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그의 재산도 지위도 아니었다. "내 혼을 잡으려"(3절) 했다. 그의 존재 자체였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다.

그들의 입이었다. 말이 샘처럼 솟구쳐 나왔다. 한 번 터지는 것이 아니었다. 멈추지 않았다. 마르지 않았다. 쉬지 않았다. "그들의 입술에는 칼들이 있어"(7절) 흘러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칼이었다.

다윗을 역적으로 만든 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끝없이 솟구쳐 나오는 언어였다.

억울했다. 죄가 없었다. "주여, 이것은 나의 범죄 때문도 아니요 나의 죄 때문도 아니로소이다"(3절). 그런데 말들이 그를 덮고 있었다. 말로 만들어진 감옥이었다.

그들의 선언이 있었다. "누가 들으리요?"(7절)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는 확신이었다. 이 한 마디가 가장 깊은 어둠을 열었다.

하나님이 주무시는 것 같았다.

다윗은 외쳤다. "깨셔서 나를 도우시고 바라보소서"(4절). 다시 외쳤다. "깨소서"(5절). 같은 말을 두 번, 다른 강도로 외쳤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계신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도해도 하늘이 닫힌 것 같았다. 부르짖어도 메아리만 돌아왔다.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자였다.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택하셨다. 그런데 지금 원수들이 그의 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극한으로 벌어졌다.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 같은 결이었다.

밤이 되면 그들이 돌아왔다. "저녁에 돌아와서 개처럼 짖으며 도시를 두루 다니"(6절)었다. 바다가 거세게 요동치는 소리, 창자가 뒤틀리는 소리. 그 소리가 밤 전체를 진동시켰다.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이 포위망을 좁혀가는 움직임이었다. 이 장면이 6절에 있고 14절에 다시 있었다. 똑같은 문장이었다. 어젯밤도 그랬고 오늘 밤도 그랬다. 밤이 계속되었다.

보이지 않는 공포, 멈추지 않는 말의 칼날, 밤마다 반복되는 울부짖음, 그리고 침묵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다윗의 밤이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다윗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는.(16절)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설 자리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 말이 왔다.

"오직 나는 주의 권능을 노래하며 참으로 아침에 주의 긍휼을 크게 노래하리니"(16절).

노래하리라. 아직 오지 않은 일이다. 아침은 오지 않았다. 개들은 여전히 짖고 있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아침의 노래를 불렀다. 아침이 와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었다. 노래하면서 아침을 향해 걷는 것이었다.

그가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10절). 느낌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언약으로 불렀다. 지금 당신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약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그 언약을 근거로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보다 앞서 가시리니"(10절). 예카드메니(יְקַדְּמֵנִי) — 앞서 오다, 먼저 도착하다. 단순한 동행이 아니다. 내가 가기도 전에 하나님이 먼저 그곳에 가 계신다는 뜻이다. 도망쳐야 할 그 길 위에, 아직 가보지 않은 내일에, 하나님이 이미 거기 계셨다. 다윗이 담대했던 것은 자신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이미 그 길 위에 계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밤도 이렇게 온다.

"내 혼을 잡으려고 숨어서 기다리는"(3절) 공포로, "입술에는 칼들이 있어"(7절) 멈추지 않고 솟구치는 말의 칼날로, 깨소서 깨소서 외쳐도 돌아오는 침묵으로. "누가 들으리요"(7절), 그 질문이 우리 안에서 울릴 때, 다윗이 선 자리가 우리의 자리가 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침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걸어 들어갈 그 어둠 속에 하나님이 먼저 가 계신다.

다윗의 노래는 맞았다. 아침은 왔다.

지금 밤이라면,

그러나 나는.

묵상을 돕는 질문들

지금 당신의 삶에 보이지는 않지만 있다는 것만 느껴지는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내면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다윗을 덮은 것은 무기가 아니라 말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을 덮고 있는 말이 있습니까? 사람의 말입니까, 아니면 당신 자신의 말입니까?

다윗은 "깨소서"를 두 번 외쳤습니다. 부르짖어도 하늘이 닫힌 것 같았던 때가 있습니까? 그때 당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었습니까?

다윗은 아침이 오기 전에 아침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 노래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 "그러나 나는"이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 밤 안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