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통과한 고난은 신앙의 심화를 가져온다
다윗은 지금 사면이 막힌 자리에 있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쳤다가 오히려 블레셋 땅 가드에서 붙잡혔습니다. 원수들은 날마다 삼키려 하고 그를 학대합니다. 그의 말을 왜곡하고, 함께 모여 매복하며, 그의 발걸음을 감시합니다. 생명을 노리는 위협입니다. 도망칠 곳도, 호소할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시편 56편의 배경입니다.
두려움이 심화의 출발점이다
다윗은 두려움을 숨기지 않습니다. 3절의 두려움을 뜻하는 이라(אִירָא)는 단순한 심리적 불안이 아닙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공포, 생존 본능이 작동하는 수준의 두려움입니다. 다윗은 그 공포를 억누르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져옵니다. 두려움이 하나님을 향할 때, 그것은 이미 경외의 첫 움직임입니다. "내가 무서워할 때에 주를 신뢰하리이다."
여기서 신뢰로 번역된 바타흐(בטח)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난간에 온몸의 무게를 실듯,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기대는 것입니다. 다윗은 두려움 속에서도 즉시 이 신뢰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신뢰 위에서 첫 번째 찬양이 나옵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찬양하리라." 두려움이 신앙 심화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주의 보호하심을 체험하다
그러나 찬양 이후에도 고난은 계속됩니다. 원수들은 그의 말을 왜곡하고, 함께 모여 매복하며, 그의 발걸음을 적대적으로 감시합니다. 생명을 노리는 위협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고난의 한복판에서 다윗은 결정적인 것을 발견합니다.
8절입니다. "내가 떠도는 것을 주께서 세시오니 내 눈물들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원수들은 다윗의 발걸음을 적대적으로 감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방랑을 하나하나 세어 기록하십니다. 감시와 기록의 대조입니다. 원수의 눈은 해치려고 보았고, 하나님의 눈은 보존하려고 보셨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가죽 부대에 담으신다는 표현은 고대 근동에서 가장 귀한 것을 보관하는 방식입니다. 다윗의 눈물 한 방울도 하나님께는 귀한 것으로 보존됩니다.
세상이 다윗을 포위하고 감시하는 동안, 하나님은 그의 눈물을 세고 계셨습니다. 이 체험이 9절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자리잡습니다. "이것을 나는 아노니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 3절의 이라(אִירָא, 두려워하다)가 9절에서 야다티(יָדַעְתִּי, 나는 알았나이다)로 변모합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한 자가 얻는 확신입니다.
고난을 통과한 후 심화가 완성된다
10절에서 두 번째 찬양이 나옵니다. 구조는 4절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단 한 단어의 차이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4절은 엘로힘(אֱלֹהִים) 한 분만 고백했습니다. 10절은 엘로힘(אֱלֹהִים)과 함께 여호와(יהוה)를 고백합니다. 엘로힘이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나타내는 이름이라면, 여호와는 출애굽기 3장에서 계시된 언약의 이름입니다. 이스라엘과, 그리고 다윗과 개인적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고유명입니다.
4절의 다윗은 능력과 주권의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10절의 다윗은 5절부터 9절까지, 왜곡과 매복과 눈물과 방랑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그 하나님이 나와 언약을 맺으시고 내 눈물을 세시는 여호와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11절의 선언은 3절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되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집니다. "사람이 내게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3절의 이라(אִירָא)가 11절에서 로 이라(לֹא אִירָא,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로 완성됩니다. 두려움으로 시작한 시편이 담대한 선언으로 끝납니다.
심화된 신앙은 삶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시편 56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2-13절이 있습니다. "주께서 내 혼을 사망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산 자들의 빛 가운데로 다니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 발을 건지사 넘어지지 않게 하지 아니하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