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교회
교회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건물일 것입니다. 주일 오전일 것입니다. 혹은 우리 교단, 우리 교파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교회는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손에 잡히는 것들입니다. 내가 속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64문은 그 그림을 흔듭니다. 무형교회 — 보이지 않는 교회.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흩어진 자들을 모으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요한복음이 이렇게 말합니다.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요 11:52)
그 민족만이 아닙니다. 흩어진 자들 전체입니다. 지역도, 민족도, 시대도 넘어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처음부터 이 거대한 모음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직접 말씀하십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6)
한 목자입니다. 한 무리입니다. 울타리 안의 양만이 아닙니다. 아직 들어오지 않은 양들까지 이미 그분의 것입니다. 교회의 경계는 우리가 그을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 시간을 넘어서
바울은 그 범위를 더 크게 펼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0)
하늘과 땅입니다. 64문의 언어로 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입니다. 이미 죽은 성도들, 지금 살아있는 성도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성도들 — 이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됩니다.
이것이 무형교회의 규모입니다.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재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교회는 존재합니다.
머리는 하나, 그러므로 몸도 하나
그렇다면 이 거대한 교회를 하나로 묶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단입니까. 신조입니까. 제도입니까.
바울이 답합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2-23)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하나입니다. 머리가 하나이므로 몸도 하나입니다. 이 교회를 하나로 묶는 것은 제도가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어떤 구조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그래서 무형교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머리는 보입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 교회입니다.
당신은 이미 이 안에 있습니다
64문은 묻지 않습니다. 선언합니다.
"택함받은 사람들의 전체."
택함은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에 속한 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고백하는 당신은 — 이미 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입니다. 바울과 함께입니다. 순교자들과 함께입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아 아직 이름도 없는 성도들과 함께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하나로.
당신은 이미 거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