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주님을 부인하는 자

by 박정일 posted Dec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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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유다서: 4
성경본문내용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 들어온 어떤 자들이 있기 때문이라. 그들은 이 정죄를 받도록 옛적부터 미리 정해진 자들이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중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라.
강설날짜 2025-12-23

1. 파레이세뒤산(παρεισέδυσαν): 

유다서 4절이 경고하는 위협은 공동체 외부의 적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시작됩니다. 헬라어 ‘파레이세뒤산’은 밖에서 성벽을 허물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이미 신뢰를 얻어 곁에 있던 자들이 슬며시 경계선을 넘어 중심부로 파고드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들은 같은 예배의 자리에서 같은 신앙 언어를 사용하며 우리와 함께 걸어왔기에, 그들의 왜곡된 가르침은 정면 공격이 아니라 “조금 더 자유로운 이해”나 “새로운 강조점”이라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검증이 끝난 자리, 즉 의심받지 않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가장 무서운 파괴력입니다. 밖에서 오는 왜곡은 즉시 거부할 수 있지만, 곁에서 건네는 미묘한 이동은 공동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신앙의 궤도를 이탈시킵니다.

 

2. 아세베이스(ἀσεβεῖς): 

변질의 두 번째 단계는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의 무게감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아세베이스’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인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운 주권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이기는 동력이 아니라, 죄를 지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하는 ‘색욕거리(ἀσέλγεια)’, 즉 죄의 면허증으로 전락합니다. 은혜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하나님을 내 욕망을 지지해 주는 가벼운 조력자로 만드는 것이 불경건의 본질입니다.

 

3. 아르누메노이(ἀρνούμενοι): 

유다서 4절의 결론인 ‘부인하다’는 단순히 예수를 모른다고 하는 지식적 부정이 아닙니다. 이는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면서도, 의지적으로는 그분의 주권을 따르지 않겠다는 지속적인 거절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이 ‘부인’의 양상을 두 가지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폭로합니다.

  • 행위로 하는 부인 (디도서 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입술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공언하지만, 실제 삶의 선택과 위기의 순간에는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내 이익과 주님의 주권이 충돌할 때 하나님을 무시하는 선택 자체가 가장 노골적인 부인입니다.

  • 능력에 대한 부인 (디모데후서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예배의 형식이나 직분 같은 종교적 외형(모양)은 완벽하게 유지합니다. 그러나 죄를 끊어내고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성령의 실질적인 통제력(능력)은 철저히 거부합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 곧 예수를 부인하는 실체입니다.

 

결론

결국 유다서 4절이 말하는 배교자는 십자가를 대적하는 자가 아니라, 십자가를 장식품으로 걸어두고 그 아래서 자기 자신이 왕 노릇 하는 자입니다. 예수를 '구원자(Savior)'로는 이용하되, 내 삶의 핸들을 쥐는 '주인(Lord)'으로는 거부하는 모든 태도가 바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배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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