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왜 교회는 더 혼란스러워지는가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능력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능력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능력이 진리의 기준처럼 오해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무엇이 일어났는가?”
“얼마나 강력한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따르는가?”
그러나 바울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을 대신하려 하는가?”
1. 능력은 중립적이지 않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은 말합니다.
“그 사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함께 온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능력 자체가 선의 증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불법의 사람은 아무 능력도 없는 허상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실제 권능과 표적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그 능력은
창조의 능력이 아니라
차용된 능력입니다.
사탄은 힘을 공급할 수는 있어도
진리를 공급할 수는 없습니다.
2. 거짓 이적은 ‘가짜’가 아니라 ‘방향이 틀린 이적이다’
바울은 그것을 “거짓 이적들”이라 부릅니다.
거짓이라는 말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놀라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그 이적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려보내지 않고,
사람을 어떤 존재에게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참된 표적은
언제나 말씀 앞으로 이끌지만,
거짓 이적은
말씀 없이도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3. 불법의 핵심은 힘이 아니라 ‘대체’다
불법의 사람은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경배를 말합니다.
거룩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것이 불법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대적하는 자”라 부르면서 동시에
“자기를 높이는 자”라 부릅니다.
그는 싸워서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앉으려 합니다.
4. 왜 어떤 사람들은 속고, 어떤 사람들은 서 있는가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불의의 모든 속임수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모두가 속는 것은 아닙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 속임수가 작동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분명해집니다.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속임수의 반대말은 지식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 능력을 진리로 착각하게 됩니다.
5. 능력이 기준이 된 시대, 교회는 무엇으로 서는가
바울이 이 모든 말씀을 준 이유는
종말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능력의 시대에
교회가 붙들어야 할 것은 능력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사도적 복음입니다.
이미 주어진 진리입니다.
결론: 능력을 해석하는 교회가 아니라, 진리로 분별하는 교회
마지막 때의 시험은
능력이 없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능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높이는가, 대체하는가?”
능력이 진리처럼 보이는 시대에
말씀을 진리로 붙드는 교회만이
끝까지 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