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1장 앞부분에서
성도들의 고난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성도의 삶과 악인의 삶은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모두 증거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11절에 이르면 바울은 논증을 멈추고 기도로 들어갑니다.
성도의 삶을 증거라고 말해 놓고,
그 삶을 성도들의 능력이나 결단에 맡겨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단순한 경건한 마무리가 아닙니다.
앞서 말한 모든 내용을 신학적으로 정리하는 결론이며,
하나님의 사역과 우리의 사역의 관계를 분명히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지점이
신앙에서 가장 쉽게 무너지는 자리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론
1.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이러므로”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모든 내용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성도의 고난이 헛되지 않다는 사실,
그 삶이 장차 있을 심판에서 증거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더 강한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합니다.
바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잘 견디는 교회일수록
자기 의로 기울 위험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다 보면
쉽게 책임을 내려놓을 위험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의 삶을 강조한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삶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2. “너희를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시고”
바울의 기도는 성도의 현재 상태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부르심”에서 출발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충분히 칭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자라고 있었고,
환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너희는 이미 부르심에 합당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는 성도의 삶이
이미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도 계속 다루고 계시는 과정임을 전제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성도가 가장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바울은 성도의 삶을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로 말합니다.
이는 실제 삶에서 드러나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성도의 능력이나 열심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제거하는 순간,
선은 자기 의가 되고,
믿음의 역사는 종교적 성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가르침이 아니라
기도로 말합니다.
4.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문장은 이 기도의 중심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선을 기뻐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실제로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성도를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동시에 성도를 주인으로 세우지도 않습니다.
이 긴장을 놓치는 순간
신앙은 반드시 왜곡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명령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연약한 교회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잘하고 있는 교회를 지키기 위한 기도입니다.
5. “이는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바울은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모든 선과 모든 믿음의 역사의 목적은
성도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광을 받는 데 있습니다.
성도의 삶이 증거가 되는 이유는
성도가 중심에 서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기 위함입니다.
6.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광을 받을 때,
성도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광은 성취의 보상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주어지는 결과입니다.
성도는 자기 영광을 추구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성도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결론
사도 바울은 이 균형이
신앙에서 가장 쉽게 무너지는 지점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설명으로 성도를 설득하지 않고,
기도로 성도를 지켜 줍니다.
성도의 삶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결코 주인이 아닙니다.
이 긴장을 놓치면
신앙은 자기 의가 되거나,
무책임한 신앙이 됩니다.
그러나 이 긴장을 붙들 때
성도는 약해지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까지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한 기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기를.”
이것이 데살로니가후서 1장 11–12절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신앙의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