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는 영생으로,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으로
1. 본문 읽기
(1) 작정의 목적
By the decree of God, for the manifestation of his glory,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그분의 영광의 나타남을 위하여,
(2) 일부는 영생으로 예정되고
some men and angels are predestinated unto everlasting life,
일부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되었고,
(3) 일부는 영원한 사망으로 예정되었다
and others foreordained to everlasting death.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으로 미리 정해졌다.
2. 추출되는 교리들
가. 선택과 유기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신앙고백서는 하나님의 작정이 선택(Election)과 유기(Reprobation)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고 선언합니다. 일부는 영생으로(predestinated unto everlasting life),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으로(foreordained to everlasting death) 작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단어의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생으로의 작정에는 "predestinated"(예정되었다)를, 영원한 사망으로의 작정에는 "foreordained"(미리 정해졌다)를 각각 다른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의도적인 교리적 구별인지에 대해 개혁파 신학자들 사이에도 견해가 조금 나뉘지만, 최소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전체 문맥(특히 3장 7절)을 고려하면 선택과 유기를 완전히 대칭적인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방향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 "영원한 사망"(everlasting death)의 의미
"영원한 사망"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이나 소멸, 혹은 비존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개혁파 전통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 최후 심판 이후의 영원한 형벌을 의미합니다. 즉 영원한 사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있는 영원한 상태입니다. 이는 마태복음 25:46 —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 에서 "영벌"(영원한 형벌)과 "영생"이 대칭적으로 제시되는 것과 일치합니다.
다. 작정의 목적 —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남
"for the manifestation of his glory"(그분의 영광의 나타남을 위하여)는 선택과 유기 모두를 포괄하는 목적을 제시합니다. 구원받는 자들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영광이, 유기된 자들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로마서 9:22-23 —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 가 이 교리의 직접적인 성경적 근거입니다.
라. 천사들도 작정의 대상이다
"some men and angels"(일부 사람들과 천사들)는 주목할 만한 표현입니다. 예정 교리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일부 천사들은 타락하지 않고 거룩하게 보존되도록 작정되었고(디모데전서 5:21의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다른 천사들은 타락하여 영원한 심판 아래 놓이도록 작정되었습니다(유다서 6 —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이는 예정 교리가 단지 인간 구원론의 부속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 계획 전체를 포괄하는 교리임을 보여줍니다.
마. 선택과 유기의 비대칭성 — 유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작정 안에 함께 있지만,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개혁파 정통신학은 유기를 두 측면으로 설명합니다.
소극적 측면(preterition, 간과하심) —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지 않고 지나치심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그들을 죄 가운데 밀어 넣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선택의 은혜 가운데 포함시키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적극적 측면(condemnation, 정죄하심) — 하나님이 그들의 죄에 대하여 공의롭게 정죄하시기로 작정하심입니다. 멸망의 원인은 하나님의 작정이 아니라 죄인 자신의 죄입니다.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해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은혜의 행위이고, 유기는 죄인을 그 죄에 따라 공의롭게 다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입니다. 이 둘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 한쪽에서는 은혜의 영광을, 다른 쪽에서는 공의의 영광을 — 나타냅니다.
바. 이 교리 앞에서의 바른 태도
칼빈은 예정 교리를 "무서운 작정"(decretum horribil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이 교리가 사악하거나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이성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고 두려운 심판의 신비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교리 앞에서 바른 태도는 두 가지입니다.
택함받은 자에게는 깊은 감사와 겸손 —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예정론은 교만을 낳기 위한 교리가 아니라 감사, 겸손, 경배, 복음 전도의 열심을 낳기 위한 교리입니다.
동시에 유기된 자를 향한 연민과 복음 전도의 열심 — 누가 택함받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고, 하나님은 복음 선포를 통해 택하신 자들을 불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예정 교리는 전도를 포기하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전도의 확신을 주는 토대입니다 —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반드시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