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1

하나님은 미리 보셨기 때문에 작정하신 것이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 2절

1. 본문 읽기

(1) 하나님은 모든 가능성을 아신다

Although God knows whatsoever may or can come to pass upon all supposed conditions;

비록 하나님은 모든 가정된 조건들 위에서 일어날 수 있거나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아시지만,

(2) 그러나 작정의 근거는 예지가 아니다

yet hath he not decreed any thing because he forsaw it as future, or as that which would come to pass upon such conditions.

그러나 그분은 어떤 것을 미래의 일로 미리 보셨기 때문에, 혹은 그런 조건들 위에서 일어날 것으로 미리 보셨기 때문에 작정하신 것이 아니다.

2. 추출되는 교리들

가. 하나님의 작정은 조건적 예지에 근거하지 않는다

이 절의 핵심 논점은 분명합니다 — 하나님은 모든 가능한 조건과 결과를 아시지만, 그 앎 때문에 어떤 것을 작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당시 신앙고백서가 직접 겨냥한 대상은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조건적 예정론, 그리고 예지 예정론이었습니다.

이 원리는 후대에 16세기 예수회 신학자 루이스 데 몰리나(Luis de Molina)가 제안한 "중간 지식"(scientia media) 이론과도 긴장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몰리니즘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 "하나님은 어떤 자유 행위자가 특정 조건 아래 놓였을 때 무엇을 자유롭게 선택할지를 미리 아신다. 하나님은 이 지식을 토대로 작정하신다." 우리 삶의 예를 들면, "하나님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복음을 듣게 될 환경에 놓이면 믿을 것을 미리 아셨고, 그래서 나를 그 환경에 두셔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는 식입니다. 개혁주의는 이러한 설명이 하나님의 작정을 피조물의 가상적 자유선택에 일정 부분 의존하게 만든다고 비판합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에베소서 1:4 —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는 택하심이 어떤 조건이나 예지된 선택에 근거하지 않고 창세 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1:5 —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다" — 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어떤 조건 이전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보조적 예시입니다.

나. 예지 예정(Prescient Predestination)에 대한 배격

예지 예정은 더 일상적으로 많이 듣는 설명입니다 — "하나님이 누가 믿을 것인지를 미리 아셨기 때문에, 그 믿음을 보시고 구원을 예정하셨다"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고전적 아르미니우스주의에서 전통적으로 제시되는 예정 이해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높은 곳에서 시간의 흐름 전체를 내려다보시듯, 내가 언젠가 복음을 듣고 믿을 것을 미리 보셨다. 그 믿음을 조건으로 삼아 나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 이 논리에서는 하나님이 먼저 "믿는 자를 구원하겠다"는 원칙을 세우시고, 내가 그 조건을 충족할 것을 미리 보셨기 때문에 나를 택하신 것이 됩니다. 개혁주의는 이 설명이 하나님의 선택을 인간의 예지된 믿음에 조건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선택의 궁극적 근거를 하나님의 뜻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믿음 안에서 찾게 만든다고 봅니다.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내 마음을 여셨고, 그래서 내가 믿게 된 것입니다. 믿음은 택하심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이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열매이자 증거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합니다. 로마서 9:11-12 — "그 자녀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 는 야곱을 택하신 것이 야곱의 어떤 예지된 행위나 믿음에 근거하지 않았음을 명시합니다. 디모데후서 1:9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 도 구원의 근거가 우리의 행위나 예지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뜻과 은혜임을 분명히 합니다.

다. 그렇다면 작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절은 작정의 근거가 무엇이 아닌지(예지, 조건적 예지)를 말하지만, 그렇다면 작정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 답은 1절로 돌아가면 나옵니다 — "by the most wise and holy counsel of his own will"(자신의 뜻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에 의해). 하나님의 작정의 근거는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뜻입니다. 미래를 미리 보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선하시고 지혜로우신 뜻에 의해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1 —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 이 이 교리의 성경적 근거입니다.

라. 이것이 실천적으로 의미하는 것 — "은혜로만"(Sola Gratia)의 기초

이 교리는 얼핏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집니다. 만약 하나님이 "내가 믿을 것을 미리 보셨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면, 하나님은 내 선택을 보고 그것에 반응하신 분이 됩니다. 개혁주의는 이 설명이 하나님의 선택을 인간의 예지된 믿음에 조건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선택의 궁극적 근거를 하나님의 뜻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믿음 안에서 찾게 만든다고 봅니다.

신앙고백서는 이것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것은 내가 믿을 것을 미리 보셨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은혜와 뜻에 의한 것입니다. 개혁파 정통신학은 예정론을 단순한 형이상학적 체계가 아니라, 구원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 은혜의 절대적 우선성을 지키기 위한 교리로 이해했습니다. 이것이 개혁신학이 말하는 "은혜로만"(sola gratia)의 신학적 기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