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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열왕기하 3:1-27
성경본문내용 1.이제 유다 왕 여호사밧의 제십팔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시작하여 십이 년 동안 통치하니라.
2.그가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으나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형상을 제거하였기 때문이라.
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그 죄들에 집착하여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모압 왕 메사는 양 주인이더라. 그가 어린양 십만 마리와 숫양 십만 마리를 털과 함께 이스라엘 왕에게 바쳤으나
5.아합이 죽은 뒤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하니라.
6.바로 그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아가 온 이스라엘의 수를 세고
7.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싸우러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으며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니
8.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하매 그가 대답하되, 에돔의 광야를 지나는 길로 가리이다, 하니라.
9..이처럼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과 함께 가며 그들이 이레 길을 돌아서 이동하였는데 거기에 군대와 그들을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었으므로
10.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아 슬프다! {주}께서 이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겨주려고 함께 부르셨도다! 하니라.
11.그러나 여호사밧은 이르되, 우리가 대언자를 통해 {주}께 여쭙고자 하니 여기에 {주}의 대언자가 없느냐? 하매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거늘
12.여호사밧이 이르되,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과 함께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13.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아버지의 대언자들과 당신의 어머니의 대언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주}께서 이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겨주시려고 함께 부르셨나이다, 하매
14.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서서 섬기는 만군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앞에 있음을 고려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분명히 왕 쪽을 보지도 아니하고 왕을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5.그러나 이제 음악 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소서, 하니라. 음악 하는 자가 연주할 때에 {주}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하니
16.그가 이르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골짜기에 도랑을 많이 파라.
17.{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할 터이나 그럼에도 저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18.이것은 {주}의 눈앞에서 단지 작은 일이며 그분께서 모압 족속도 당신들의 손에 넘겨주실 터인즉
19.당신들이 성벽을 두른 모든 도시와 모든 좋은 도시를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며 모든 샘을 메우고 또 모든 좋은 땅을 돌로 망쳐 놓으리이다, 하더니
20.아침에 음식 헌물을 드릴 때에, 보라, 물이 에돔 길에서 나와 그 지역이 물로 가득하였더라.
21.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들과 싸우려 한다는 것을 온 모압 족속이 듣고 갑옷을 입을 수 있는 자로부터 나이가 그 이상 되는 자들이 다 모여 경계에 섰더라.
22.아침에 모압 족속이 일찍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피처럼 붉게 된 것을 보고
23.이르되, 이것은 피라. 분명히 그 왕들이 서로를 쳐서 죽였도다. 그러므로 이제 모압아,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이스라엘 진영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어나서 모압 족속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앞으로 가서 그들의 지역으로 들어가 모압 족속을 치고
25.도시들을 쳐부수며 또 각 사람이 모든 좋은 땅에 돌을 던져 그것을 채우고 모든 샘을 메우며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오직 길하라셋에서 그곳의 돌들만 남겼으나 돌팔매꾼들이 거기를 두루 다니며 그곳을 치니라.
26.모압 왕이 자기가 감당하기에 싸움이 너무 심한 것을 보고는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 칠백 명을 거느리고 헤치고 나아가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능히 하지 못하더라.
27.그때에 그가 자기를 대신하여 통치할 자기의 맏아들을 취해 성벽에서 그를 번제 헌물로 드리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큰 격노가 임하므로 그들이 그에게서 떠나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갔더라.
강설날짜 2017-12-06

지난 말씀 요약

우리는 지난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권위를 확증해 주시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생들 앞에서 엘리사의 말의 권위를 세워 주셨습니다. 여리고의 물을 고쳐 주시는 사건을 통해, 백성들 앞에서 엘리사의 권위를 확증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사에게 대적하는 자들에게 권능을 나타내시므로 엘리사의 권위를 확증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택한 종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택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구약의 이스라엘은 교회입니다. 신약의 교회만 교회고 구약의 교회는 나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교회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라이면서 그 자체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는 정치와는 분리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경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왕과 나라에서 교회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 가지 교회의 모습을 살펴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용하시는 바른 교회의 모습을 엘리사를 통해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교회의 바른 자태

Part I 사이비 교회(v1-3)

여로암의 부모 아합과 이세벨

북이스라엘에 바알 신앙을 도입한 자들은 아합과 이세벨이었습니다. 아합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들 가운데서 걷는 것을 가벼운 일로 여기고 시돈 사람들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으며 또 가서 바알을 섬겨 그에게 경배하였습니다.(열왕16:31) 이세벨은 바알 제사장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바알과 함께 바알과 짝이 되는 여신 아스다롯과 아세라 신앙을 북이스라엘에 퍼트렸습니다.(왕상 18:19) 그녀의 남편 아합은 여로보암의 길도 모자라 바알 신앙을 퍼트려 북이스라엘을 신앙으로 오염시켰습니다.

 

하나님 앞에 악한 여호람

아합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이었습니다. 아합의 말년 이년 동안 아하시야는 합동 왕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합이 길리앗 라못 전투에서 죽자, 아하시야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심히도 악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책망하셨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는 무가치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아합 가계에 내려 진 저주보다 더 일찍 아하시야를 데려가셨습니다. 아합이 죽던 해에 바로,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여로람의 그의 아버지왕 어머니와 같은 악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바알 신앙을 공식적인 국교로 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신앙을 여전히 따랐습니다. 여로보암은 그의 백성이 오순절, 유월절, 장막절에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가 하나님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알 되, 잘못되게 예배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사이비 신앙입니다. 사이비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은 아주 잘못된, 뒤틀린 신앙입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신앙을 우리는 사이비 신앙이라고 합니다. 여호람의 신앙이 바로 그와 같은 신앙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사이비 교회들

오늘 이 시대에도 여호람의 북이스라엘의 교회와 같은 사이비 교회들이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다르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도 있습니다. 자신이 추종하는 교주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이단들도 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가르침을 따라가는 교회들은 사이비 교회들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거짓 가르침에 속아 숭배하는 교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Part II 부끄러운 정통 교회(v4-14)

1. 진리의 말씀에 회개하지 않는 교회

남유다 왕국은 하나님께서 다윗과의 언약을 생각하시면 특별히 남겨 둔 구약의 교회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가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난 왕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남유다 왕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왕들이 나타나 개혁정책을 펼쳤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여호사밧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칭찬 받는 많은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과 삶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신앙은 신앙이고, 삶은 삶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많은 부끄러움과 하나님의 질책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합과의 길리앗 라못 전투에 참가한 것이었습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은 사돈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는 악한 자와 멍에를 같이 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의 며느리로 인해 남유다 왕국에 엄청난 위가가 닥칠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아합과 함께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 전투에서 아합은 병사로 위장하고 여호사밧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시리아 장군들이 여호사밧를 추적하지 않아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유다로 돌아왔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북 이스라엘 여호람의 모압 침공에 동참해 줄 것을 요구받은 여호사밧 왕은 그 요구에 응하였습니다.

 

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싸우러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으며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니

 

여호사밧의 이 대답은 과거 아합에게 한 대답과 같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역대기하 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여호사밧 왕을 맞으러 나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돕고 {}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셔야 하겠나이까? 그러므로 {} 앞으로부터 진노가 왕에게 임하리이다.”

 

여호사밧은 이런 아픔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북 왕국과 함께 전쟁의 멍에를 함께 매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부끄러운 정통 교회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동성결혼에 대해 찬성합니다. 심지어 동성 결혼한 목회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이 시대에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오류를 지적하며, 기독교의 근본 교리인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기적,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않는 교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이단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이들과 타협하려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복음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이들 중에는 구원이 예수님 밖에도 있다고 주장하는 빌리 그래함 같은 유명한 부흥사도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은 오늘날 부끄러운 정통 교회입니다. 정통의 모습은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신앙은 멀어진 교회입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책망을 말씀을 듣고도, 북이스라엘과 연합을 추구했듯이,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교회 일치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날 WCC라는 교회 연합, 교회 일치 운동이 있습니다. 이런 운동에 많은 한국 교회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교회 일치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 안에서 교회 일치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인간의 이익과 목적을 따라 교회 일치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교회에도 신앙은 있습니다. 엘리사의 책망을 들어야 합니다.

러나 여호사밧은 이르되, 우리가 대언자를 통해 {}께 여쭙고자 하니 여기에 {}의 대언자가 없느냐? 하매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거늘

 

모압 공격을 떠난 왕은 세 사람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은 하나님께 불평을 하였습니다. 사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10) 이것이 그들의 신앙 수준입니다. 에돔 왕은 아예 하나님을 부르지도 못했습니다. 과거 에돔은 모압과 연합하여 남유다를 공격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에 여호사밧 왕은 에돔왕을 전쟁에 동참시켰습니다. 이는 다분히 군사적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에돔을 돌아 공격하는 길에, 에돔이 배반하여 후미를 공격당하면 진퇴양난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에돔 왕과 군사들을 동행시키므로 배반의 싹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지도 못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달랐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대언자를 찾았고, 기도하고자 했습니다. 신앙이 있는 자는 결국에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

14절을 보십시오.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서서 섬기는 만군의 {}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앞에 있음을 고려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분명히 왕 쪽을 보지도 아니하고 왕을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으로 인해 두 왕들과 군사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여호사밧이 잘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으로 인해 구원을 해주십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엘리사는 왜 이런 자들과 함께 전쟁을 하고 있냐고? 여호사밧을 책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다고 해서, 구원을 취소하는 법은 없습니다. 비록 이 땅의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멀어져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없습니다. 세상에 조롱을 받고 실패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됩니다. 참으로 이런 교회는 부끄러운 교회입니다. 정통은 정통인데 부끄러운 정통입니다.

 

Part III 바른 교회의 모습들(v15-27)

1. 순종하는 교회

모압을 공격하는 루트는 두 가지입니다. 모압은 사해 동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아래가 암몬이고 그 아래가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입니다. 북쪽 루트는 편한 길이지만, 방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남쪽 공격 루트는 남쪽을 돌아 북쪽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곳은 광야야 길입니다. 군사들과 가축들이 이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방비가 북쪽보다는 허술합니다. 여호사밧은 바로 이 점을 노려 기습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엘리사의 사역지는 북이스라엘입니다. 엘리사가 북이스라엘을 떠나 남쪽 광야 에돔 광야까지 내려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준비시켰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엘리사는 바른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철저한 순종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가 이 세상에 나타내어야 할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여,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행하는 모습이 오늘날 바른 교회의 모습입니다.

 

2. 책망하는 교회

엘리사는 세 왕 앞에 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 왕들을 책망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 요구되는 바른 모습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교회,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책망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불의에 대해 바른 말을 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공격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왕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바른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전할 때,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른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 기도하는 교회

1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제 음악 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소서, 하니라. 음악 하는 자가 연주할 때에 {}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하니

 

주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엘리사는 음악 하는 자가 연주할 때,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의 지혜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지혜와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아무리 인간적인 방법으로 철저하게 준비해도 전쟁에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교회의 승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하는 교회에게 있습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교회

그가 이르되, {}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골짜기에 도랑을 많이 파라.”

 

이 시대 바른 교회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전하는 사명이 가장 우선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택하시고 그 백성들을 말씀으로 먹이십니다. 말씀으로 다스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가 바르게 말씀을 해석해서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온 교회가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생각을 미리 정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와서 자신의 생각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본문이 말하고자 바를 연구해서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5.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

17-20

“{}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할 터이나 그럼에도 저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이것은 {}의 눈앞에서 단지 작은 일이며 그분께서 모압 족속도 당신들의 손에 넘겨주실 터인즉 당신들이 성벽을 두른 모든 도시와 모든 좋은 도시를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며 모든 샘을 메우고 또 모든 좋은 땅을 돌로 망쳐 놓으리이다, 하더니 아침에 음식 헌물을 드릴 때에, 보라, 물이 에돔 길에서 나와 그 지역이 물로 가득하였더라.

 

엘리사의 말대로 그 지역이 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 뿐만 압니다. 아침 해에 비친 물빛이 마치 핏물과 같아 보였습니다. 오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 받았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변화 된 생각이 우리 삶의 가치관을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행동이 바뀐 가치관으로 통해 표현됩니다. 여기에 변화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날마다 우리 삶에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런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거룩한 교회의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입니다.

 

요약과 결론

오늘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또한 교회라고 배웠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교회에서 사이비 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남유다 교회를 통해 부끄러운 정통 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엘리사를 통해 이 시대 바른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른 교회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말씀을 통해 시대를 책망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말씀을 바로 전하고 받는 교회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거룩한 삶을 통해 나타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열왕기하 3장의 엘리사를 통해 바른 신앙, 바른 교회의 자태를 들어낼 수 있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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