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하나님의 인격성
성신님은 물론 독특한 한 인격(person)를 가지고 계십니다. 아버지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아드님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성신님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그 특색 있는 구체적인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성삼위의 도리는 물론 대단히 오묘한 도리이고 깊고 깊어서 사람이 말로 다 이야기할 수 없고 다 잘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런 신비한 사실 가운데 성삼위는 세 신이 아니고 한 하나님으로서 각각의 인격적인 활동을 하십니다. 우리가 호칭을 할 때에도 각각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아드님 되시는 하나님, 성신님 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또 개혁신학에서는 늘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성신께 대해서 가장 먼저 주의해서 생각할 것은 한 세력이라든지 한 능력의 작용이라든지 능력 현상이라든지 어떤 감화라든지 하는 그런 것보다 제일 중요하게 앞서는 것은 한 인격으로서 엄연하게 존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인격적 존재이신 아드님이나 아버님의 현저하심과 같이 성신님도 한 인격으로서 현저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성신을 의지하든지 성신님의 인도를 받는다든지 가르침을 받는다든지 심지어 성신을 받았다는 말을 쓸 때라도 그 말이 될 수 있는 대로 삼위 하나님의 한 위가 되는 성신의 인격적인 존재 사실을 모호하게 하거나 인격적인 존재이신 성신에 배치되는 용법으로 쓰지 않아야 합니다. 함부로 “성신 받았다” 하는 말을 쓰는데, 만일 어떤 인격신을 받았다는 말로 뒤집어 놓고 생각하면 주의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신을 받았다는 말이 비성경적인 말은 아니지만 그런 독특한 용법을 쓸 때는 그 독틀한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어떤 구체적인 사실을 강조하느라고 쓴 것을 그냥 보편화하고 일반화해서, 성신 받았다 성신 받았다, 하게 되면 무슨 이상한 힘을 받았다든지 어떤 신통력을 얻었다는 의미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성신님은 들어왔다 나갔다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은혜를 보존하시기 위해서 보혜사로서 한번 중생의 새로운 생명을 주시면서 그 시간에 믿는 자 안에 와 계시면 그 다음부터는 영구히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각 개인이 확신하고 있다면, 계신 성신님께 대해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또 그가 나를 어떻게 하시려고 나 같은 사람의 속에 와서 계시는지에 대하여 더 주의해서 깨닫고 그 깨들음에 의해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직 계시지 않는 양으로, 와 계십소서 한다든지 성신 받아야겠습니다. 성신 줍소서 하고 이렇게 자꾸 성경의 말뜻을 모르고 아무렇게나 원용해서 쓴다면 큰 혼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 김홍전 저, 성약 출판사] 제3강 '성신의 일반적인 역사와 특별한 역사' 부분을 요약하다.